그레이스가 대학에 입학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연세대학교의 신입생은 1학년 1년간 신촌캠퍼스가 아닌 송도캠퍼스에서 수업을 듣고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한다. 미국의 명문 대학들의 전통을 벤치마킹한 것 같다. 남편이 박사학위를 한 미국의 ***대학교도 명문 사립 대학교인데, 언젠가학부 졸업식 때 슬쩍 엿보니 졸업생들이 학과별로 앉아있지 않고 기숙사별로 앉아 있어서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아, 맞다.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리핀도르, 슬리데린, 래번클로, 허플푸프 기숙사별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기숙사 대항 체육대회도 하고, 만찬 때도 기숙사별로 앉았던 것 기억하실지. 그러고 보니 이 전통은 영국에서 시작된 것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인천 학생들은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이 옵션이었지만, 소속된 기숙사가 없으면 학교 생활에 재미가 없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그레이스도 기숙사에 들어갔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2킬로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반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월요일 아침에 나가 금요일 밤에 돌아올 때까지 심리적으로는 완전히 독립한 느낌이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톡 한 번이 없다.
금요일 밤이면 식구들은 우리 집 첫 대학생의 대학생활 얘기를 듣느라 다들 턱을 괴고 앉아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어느 날 그레이스의 한 마디에 헉한 일이 있었다. 그리 크지도 않은 캠퍼스 안에서 수업 시간에 맞추어 기숙사에서 강의동까지 날아가기 위해 수십대의 전동킥보드가 달리는 진풍경에 대한 얘기를 재미있게 하다가 마지막에 뭔가 억울하다는 듯 한마디 덧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못 타.'
엄마 : '왜 못 타?'
남동생 : '누나 무서워서 못타는 거지?'
여동생 : '그거 면허 있어야 되는데 언니 운전면허 아직 안 땄잖아.'
엄마 : '그렇네'
그레이스 : '면허 없는 애들도 다 탄다 뭐'
남동생 : '헬멧도 써야 하는데 아무도 안 쓰더라. 그거 헬멧 미착용도 걸려요'
엄마 : '전에 우리 학교 여학생 한 명 학교 오는 길에 킥보트 타다 돌부리에 걸려 날아가서 얼굴 쭉 찢어진 얘기 했지? 난 전동킥보드가 오토바이보다 더 위험한 거 같아'
여동생 : '맞아. 그래서 나도 절대 안 타. 전기자전거를 타면 탔지.'
그레이스 : '우리 학교 안은 안전한데...'
엄마 : '그런데 넌 안 타는 이유가...... 엄마가 타지 말라고 해서 타고 싶은데도 안 탔다고? 지금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였어?'
세상에나, 우리 딸. 차마 그렇다고 말도 못 하고 입만 삐쭉거리는 것이 헐, 그렇다는 거 아냐. 아니, 대학도 갔고 이젠 성인이고 집도 떠났는데, 본인의 판단이나 신념 때문이 아니라 정말 엄마가 타지 말라고 해서 너무너무 타고 싶은데 안 탔다고?
막내 올리비아는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자기 고집이 있고 독립적인 아이였다. 아기인데, 그래서 혼자 옷을 입지 못해 엄마가 입혀주어야 하는 아기인데, 자꾸만 '아, 내가~~ 아, 내가~~~'하며 자기가 입겠다고 고집 피우던 아이였다. 그래서 엄마표 영어도 실패했고, 엄마가 추천해 주는 재미있는 책도 절대 안 읽고,스마트폰 사용시간에 대한 엄마의 관리도 격렬하게 거부한다. 그렇게 본인의 의사가 엄마의 강요나 설득보다 늘 우위에 있어 참 맘대로 안 되는 아이이다. 자식이 셋이나 되면 하나 정도는 이런 캐릭터도 있는 거지 생각하니 그냥 보는 거지, 만약 이 아이가 첫 아이였거나 외동이었다면 난 아마 못 마땅해 죽어 버리거나 안달이 나 미쳐버렸을지 모른다. 우리 막내딸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부모로부터 독립해 있었을 거다 생각한다.
반면 그레이스는 교육적인 목적에서 어릴 때부터 의도적으로 뭐 하나 할 때마다 선택권을 주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와 훈련을 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여준 그레이스의 모범적인 생활은 성숙하고 반듯한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 것인 양 보였다. 교복 치마를 짧게 줄이거나 화장을 하는 일도 없었고 심지어 그런 행동을 하는 친구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어른들의 기준에 맞추고 칭찬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인 그냥 전형적인 범생이의 외재적 동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수능 끝나자마자 수능 공부하듯 체계적으로 화장법을 공부하고, 아직 날도 안 풀렸는데 배꼽 보이는 티셔츠와 미니스커트를 주문했다.알코올도 체계적, 단계적으로 학습 중이시다. 이런 걸 보면 그게 싫어서가 아니라 그당시 허락되지 않아서 안 했던 것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에 대한 심리적 의존이 나도 그레이스만 못지않았다. 대학에 가서도 엄마랑 같이 쇼핑을 가지 않으면 옷을 못 골랐다. 길을 가다 맘에 드는 옷을 보아도 엄마의 컨펌 없이 덜컥 사기가 쉽지 않았다. 친구들이 예쁘다고 어울리다고 해도 왠지 엄마의 의견을 들어야 할 것만 같았다. 결혼을 해서 미국에 있으면서도 아내로서의 나의 행동, 엄마로서의 나의 결정들을 거기 있지도 않은 엄마 혹은 그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늘 평가했던 거 같다.
8년 전 엄마가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을 때 당혹스러움과 슬픔이 몰려왔다가 물러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의 감정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건 해방감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상실감이나 그리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감정을 계속 들여다보며 서서히 깨달았다. 그건 지금까지 40여 년동안 나의 모든 결정과 행동의 순간마다 내가 의식했던 엄마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 대한 익숙지 못함 혹은 당혹스러움 같은 것이었다. 엄마가 그 모든 순간에 평가나 허가를 내린 것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심리적으로 늘 엄마의 시선을의식했던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가 사라진 것을 서서히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그 상태가 좋다거나 나쁘다는 판단과는 독립적으로 이제는 그 시선에서 자유로워졌다는 해방의 의미로 다가온 것. 내가 얼마나 심리적으로 엄마에게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깨닫는 계기가 엄마의 죽음이었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럽고 속상한 일이지만, 거꾸로 말하면 엄마가 생존해 계신 이상 내가 절대 심리적 독립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엄마에게 속해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레이스가 나와 같지않기를 바란다. 건강하게 독립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걸 돕는 게 쉽지 않다. 나는 오늘도 세 아이들 중 첫째만 유독 포용해주지 않고 높은 잣대를 들이대며 비판한다.
언젠가 그레이스가 내게 농담처럼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다.
"엄마는 왜 조슈아는 아들~이고 올리비아는 딸~이고 나만 김! *! *! 이야"
다들 경험으로 아시지 않나. 자녀에게 '**아~'라든가 '아들~'이라고 부르는 상황과, 성까지 붙여 '김! *! *!'이라고 부르는 상황의 차이를.그런 나의 양육태도가 이런 결과를 낳은 원인 중 하나였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그레이스와 나누자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었다.
자기 과의 한 여학생은 엄마가 하루 세끼 다 챙겨 먹으라고 당부하며 매 식사 때마다 인증사진을 보내라고 하셔서 하루 세 번 끼니 사진을 찍어 꼬박꼬박 엄마에게 보낸다는 것이다.집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며 더 이상 직접 챙기지 못 하는 딸의 건강을 염려하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통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스무 살 아이 얘기를 듣자니 '그런 아이이니 시키는 대로 공부도 열심히 해서 연대 치대까지 갔겠지'싶다. (남 말 하냐?)
입학한 지 두어 주 지난 어느 주말, 그레이스네 과 여자아이들 몇 명과 고대 공대 남자아이들 몇 명이 미팅을 했다. 장소는 안암과 송도의 중간인 영등포. 끝나고 지하철 타고 다시 송도로 돌아오기 위해 잡은 중간 지점이었다.
그런데 개념 없는 삼수생 남자애 하나가 자꾸 (고대 스타일로) 술을 권하고, 첫 차 타고 들어가라며 모임을 끝낼 생각을 안 하자 결국 전철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12시가 넘어 대치동에 있던 한 아버님이 영등포로 오셔서 여자아이들을 다 태우고 송도 기숙사까지 데려다주시고, 오는 차 안에서 '그러게 왜 무식한 고대 애들이랑 어울리냐'며 폭풍잔소리도 하시고, 마지막으로 우리 그레이스는 집으로 간다니 아파트 입구까지태워주시고 돌아가신 일이 있었다.내 딸도 귀하긴 한데 그 댁 따님의 귀함은 우리 딸의 세 배는 되지 싶어 '그 아이 외동이니?'하고 물었다. 어쨌든 그 아버님은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긴 하다. 커피 쿠폰이라도 보내드렸어야 했나?
이 글을 쓰는 오늘도 그레이스는 대성리로 MT를 갔다. 다음날 교양필수 중 하나인 사회참여봉사가 있어 아침 일찍 나와야 하는데 펜션에서 대성리역까지 2.3킬로밖에 안되어 택시가 안 들어올 것 같으니 엄마가 데리러 오면 안 되냐고 묻는다. 일요일 꼭두새벽에 달려도 왕복 세 시간인데 거길 데리러 오라고? 우리가 이렇게 키웠지만 우리 아이들이 이 정도이다.(결국 못 간다고, 알아서 하라고 해 놓고는 아침 일찍 걱정되어 전화를 하니 자다 받는다. 일찍 송도로 돌아오겠다는 친구들이 몇 명 있어 새벽 다섯 시에 택시 불러 같이 송도 기숙사로 곧장 왔다고. 어젯밤에 계속 잠을 설친 게 그레이스가 걱정되어서였나. 그 얘기를 듣고나서야 다시 단잠에 빠졌다.)
위험한 전동킥보드를 내 딸이 안 탄다고 안도하기에는 그 이유가 너무나 엄청나서 나는 지금도 마음이 무겁다. 20년간 나도 아이도 익숙해진 이 관계를 어떻게 바꾸어 나가야 할지 큰 부담감을 안고 고민해 보아야겠다.푸바오를 중국에 보내는 것보다 내 자녀를 나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 더 힘든 일일 것 같아 참으로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