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학원의 의미는 본인이 찾아라.
그레이스 때 인천은 자유학기제를 실시했다. 1학년 1학기에 시험을 보고 2학기에 자유학기제를 운영한 후 2학년때 다시 시험을 보기 시작한.
전북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 시골에 있다가 6학년 때 인천송도로 올라오며 완전 쫄았던 것도 잠시, 1년 만에 차도녀로 완전 적응하고 국제도시도 별거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레이스는 중학교 첫 시험에서 전교1등을 빡! 찍어서 선생님들의 주목을 쫙! 받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첫 수학시험에서 두 개나 틀렸다. 시간도 부족하여 찍은 문제도 몇 있었던 듯 하다. 집에 와서 너무 속상해 찔끔찔끔 울며 '백 점 맞아 선생님들이 모두 내 이름을 알게 되길 바랬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그제야 내 딸을 알게 되었다. 겸손하고 조용한 척 새침을 떨지만 사실은 돋보이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욕망이 강한 아이였다.
난감했다. 대체 수학 백 점을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수학교사는 수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게 목표인 사람이지 내가 낸 수학시험을 백 점 맞을 수 있도록 아이를 훈련시켜본 적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해요'가 아니라 '수학 시험을 잘 보려면 어떻게 해야해요'라고 물어본다면 '열심히?'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레이스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했음에도 백 점을 못 받았으니 무엇이 더 필요한지 알아내야했고 그래서 수학학원을 가보기로 했다. 원래는 세 군데 상담을 가려고 했는데 학교 앞 학원에서 테스트 보고 상담하고 나니 더 이상 돌아다닐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그냥 여기 다녀라.
첫 주를 보내며 '학교 끝나고 학원 시간까지 애매하게 남는 시간이 버려진다', '학원 갔다오면 피곤해서 더 이상 공부를 못한다' 등등 자지레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하는 그레이스. 두 번째 주에는 '학원이 의미가 없다'며 안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들어보니 이유는 이랬다.
'내가 풀 줄 알아서 풀어간 문제를 선생님이 풀어주시는 걸 또 봐야하는데 그게 무슨 시간낭비에요? 내가 못 풀어 별표 쳐 간 문제라도 그걸 내가 고민해서 풀어야지 선생님이 홀딱 풀어줘버리면 그 문제는 더이상 고민도 못하고 버려지는 문제잖아요.'
수학 문제집을 푸는 것은 문제를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틀린 문제를 통해 내가 부족한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알아내기 위함이고, 그 문제를 혼자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문제풀이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적이므로 빨리 해답지를 보면 안된다
고 어릴때부터 누누이 얘기했고, 혹시 아이가 모르는 문제를 가져와도 곧장 풀어주지 않고 사고를 유도할 수 있는 질문을 살살 하고는 돌려보내곤 했던게 나였다. 어느 날은 퇴근 후 너무 피곤해 그냥 풀어줘버렸더니 아이가 왕 울음을 터뜨려서 당황하기도 했다. '힌트만 줘야지 엄마가 다 풀어버리면 어떡해. 내가 못 풀거라고 생각하는거야?'하며.
내가 이렇게 키웠으니 할 말이 있나.
한 달치 학원비 냈으니 조금 더 다니자. 시험 준비는 어떻게 하는지 한 달만 더 다니자 어르고 달래 겨우 두 달 다니고 수학학원은 바이바이했다.
'기본유형은 툭 치면 나올 정도록 완전히 익히기 위해 문제집을 한 두 권 더 풀며 연습해야했는데 내 문제풀이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었고, 시험 전에는 온 동네 기출을 다 모아 시간 재며 시험 문제 푸는 연습을 해야 시험때 시간이 부족하지 않다'는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고, 이제 자기 혼자 하겠다고 했다. 이 두 달이 그레이스 인생에 있어 유일한 수학학원 수강 경험이다.
학원을 안 다니면 자기주도학습, 다니면 수동적인 학습이 아니다. 학원을 다녀도 도움을 받더라도 문제풀이는 본인의 힘으로 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분위기여야한다. 둘째 셋째를 수학학원에 보내며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엄마로서 학원선생님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을 배워나가야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수학공부의 목적과 옳은 방법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며, 조급함으로 아이를 다그치는 것을 지양하는 것이 엄마로서는 가장 힘들다.
학원은 학생 본인에게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계속 물어야한다. 학원 선생님의 강의스타일이 어떤지, 학원 시스템이 너에게 도움이 되는지, 너는 학원을 통해 어떤 도움을 받고 싶은 것인지를. 선생을 향해 평가질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본인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다니는 학원이 그 부족함을 채워주는지를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메타인지이고, 그것이 자기주도학습이다.
더불어 부모는 아이의 판단을 존중하고 믿어주는 용기도 있어야한다. 당장 학원을 그만두는것이 두려워도 아이가 필요없다고 하면 혼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한다. 그렇게 해봐야 아이도 엄마도 학원을 고를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 모든 성장과 배움에는 시행착오가 있다. 자녀의 교육문제에 있어서는 어떠한 시행착오도 허락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도리어 독이 될 수 있다. 인생은 생각보다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다지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시행착오를 겪으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즐거움과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