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에 대하여 1탄
우리들의 일그러진 솔디어
나는 알파벳을 중학교 1학년때 학교에서 처음 배웠다. 아이들이 아무리 정말 그랬을까 의심스러워 하길래 그 시절의 기억을 다시 더듬어보았다. 중1 어느 여름날 월미도 부둣가에 떠있던 배이름 Angel을 '앙겔'이라고 읽어서 식구들의 비웃음을 샀던 날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아마도 그 기억은 틀림없지 싶다. 뒤이어 네 살 어린 남동생이 '에이 엔 지 이 엘, 에이엔지이엘, 에엔젤?'하고 추측해 읽어내버리는 바람에 내 체면은 회복불능이 되었다. 나는 처음부터 영어가 싫었다.
언어는 문화적 산물이다. 우리는 왜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데 미국사람들은 '맘'이라고 부르는지 논리적인 이유를 댈 수 없다. 왜 친구의 스펠링이 freind가 아니고 friend인지 설명할 수도 없다. 그냥 그렇게 되어져 버렸으니 따지지말고 받아들여야한다. 그게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되는게 더 이상한것 아닌가?
나름대로 설명해보기 위해 문법이라는 체계를 만들어 나를 도우려는 그들의 노력은 알겠으나 그 또한 예외 투성이인 법칙이니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기분만 더할 뿐이었다. 내게 영어는 마치 바닥에 크기와 색깔이 제각각인 유리구슬 한 트럭을 쏟아놓고 체계적으로 꿰어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라는 요구와 같았다. 그걸 못하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애초에 그걸 요구하는 학교의 잘못이다. 나는 그렇게 당당했으나 중고등학교 6년동안 영어시간에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수치스런 학생일 뿐이었다. 6년간 수학이 '수'가 아닌 적이 없었으나 영어는 '수'를 받아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때 나의 별명 중 '우리들의 일그러진 솔디어'가 있었다. 어느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영어책을 해석하다 낯선 단어를 만났는데 사전을 찾아보기 너무 귀찮아 쥐죽은듯 조용한 교실에서 큰소리로 '솔디어가 뭔지 아는 사람~'하고 외쳤다. 새로운 단어가 나왔는가 궁금해진 친구 몇이 내 자리로 와 보고는 기가 막혀 뒤로 넘어갔다. 내가 솔디어라고 읽은 그 단어는 soldier(솔져, 군인)이었다. 고등학생이 솔져를 모른다고? 그날부터 친구들은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우리들의 일그러진 솔디어'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던 내가 미국으로 시집간다니 솔디어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나를 걱정했겠는가. 그러나 나는 6년이라는 긴 시간을 미국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고, 수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돌아왔다. 많은 유학생들, 유학을 끝내고 미국에 자리잡은 사람들, 외교관들, 주재원들, 이민 1세대, 1.5세대, 2세대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발견했고 많은 것을 느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아이 둘을 낳았고, 남편이 학위를 마치고 미국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제안도 받았으나 우리는 한국행을 선택했다. 2008년에 귀국하여 전업주부로 8년, 직장맘으로 7년 살았다. 그동안 두 번 더 단기로 미국에서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미국과 한국에 대한 나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고, 그렇게 두 나라와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인간의 삶은 모두 고유하다. 어떤 사람도 같은 역사를 갖지 않는다. 나의 집에서 태어난 세 아이들마저도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진다. 그저 나는 나의 역사에 감사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성장하고 넓어진 것에 주목한다. 삶의 터전이나 방법을 무리하게 바꾸려고 하지 않았고 순리대로 받아들이며 그 곳에서 내게 허락된 것을 최선으로 여기고 감사하려 노력했다. 그 경험과 깨달음을 다른 이들과 나눈다면 또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조금씩 풀어놓아보려 한다. 나는 태생이 선생이니 나의 모든 경험은 결국 교육적 자산이 되었을터이다. 그렇게 교육에 대한 주제와 버무려 한타래 한타래 풀어보도록 하겠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