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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란 Dec 13. 2024

3. 제발 병원에 한번 가보게 해주세요.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아이

수학학원 선생님이 우리 조슈아에 대해 '항상 숙제를 다 못 끝낸채 수업에 오고,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속도가 빨라지지 않는, 성에 차지 않는 아이'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눈치 못챈 것은 아니다. 아이도 자신이 비노골적인 구박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듯 했다. 상담할 때마다 '나아지겠죠. 그래도 안 한다는 소리는 안 하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성실하니 점점 성장할 겁니다. 역정내지 않으시고 격려 많이 해주시는 샘께 늘 감사드립니다'라며, 절대 내 아들에게 짜증이나 역정을 내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가식적인 어투로 포장하여 던지는 것에 나도 슬슬 지쳐가던 때였다.


조슈아가 '학원 진도를 헐떡대며 쫓아는 가고 있는데, 숙제에 허덕이다 보면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는 얘기를 해 왔다. '그래, 조슈아도 이제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며 누나처럼 자기주도적인 경험을 해보아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여서 학원은 그만 두기로 했다. 다시 학원을 다니더라도 그 학원은 안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겨울방학 두 달동안 누나가 다니는 독학재수학원 겨울캠프(am 8 to pm 10 동안 스스로 세운 계획에 맞추어 혼자 공부하는 관리형 독서실)에서 엉덩이힘을 기르며 고1 1학기 중간고사 범위의 기본 유형만 달달달 외우자고 했다. 그럼 3등급은 나오니 그 정도만 하자며.


12월 말부터 자기주도학습을 시작했고, 수학학원은 예정보다 조금 이른 2월 중순에 다시 나가게 되었다. 한달 반정도 혼자 공부한 부분을 다시 선생님이 봐주셨고, 일주일에 두 번 학원 강의에 참석하는 시간 외에는 독학재수학원에서 계속 문제를 익혔다. 그런데 두 주, 세 주, 네 주가 지나가는데 매주 보는 확인테스트 점수가 60점에서 전혀 오르지를 않았다. 아무리 수학 머리가 없다고 해도 두 달을 기본유형만 하는데 전혀 늘지가 않는다고? 나도 나지만 아이가 스스로에 대해 낙담하는 것이 느껴졌다. 3월초의 어느날 조심스레 얘기를 나눠보았다.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문제는 손을 못 대겠니?

"그게 아니구요, 저는 기억력에 문제가 있어요. 아무리 기본유형의 문제를 외워도 시험에 그 문제가 나오면 처음 보는 문제 같아요. 학교 시험에서도 저는 모든 문제를 처음 보는것처럼 느끼고 다 생각하며 해결해야해요. 그러니 시간이 늘 부족하죠."

대체 이건 무슨 말이야.

"너 영어는 곧잘 하잖아. 기억력의 문제라면 영어단어는 어떻게 외워."

"그래도 수학처럼 거의 반사적으로 문제를 기억해내서 빠르게 풀어야하는 문제는 없잖아요. 국어나 영어는 읽고 이해한 후 곰곰히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답을 찾으니까...

엄마, 진짜 병원 한번 가보면 안돼요? 내 뇌에 무슨 문제가 있는건지 속시원히 검사나 한번 받아보고 싶어요."

조슈아는 자신의 뇌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왔던 것이다. 친구들처럼 해내려고 기를 써보기도 하고 혼자 죽어라 외워도 보았지만 그래도 안되는 자신에 대해 절망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 그동안 내가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기를 꺼렸던 것은 고상하고 좋은 부모인 내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서였다. 아이가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문제가 있다고 병원에 데려가는 것은 정말 몰지각한 일이다. 수학을 못하는 아이도 다른 영역에서의 재능이 분명히 있다. 하늘이 주신 아이의 특성을 잘 살려 착하고 건강하게 기르면 되지 어떤 틀에 맞추기 위해 짧다고 잡아 늘리고 길다고 싹둑 잘라내는 그런 교육은 하면 안된다는 것이 부모로서, 교육자로서 나의 신념이자 믿음이었으니까.


그러나 절망하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 고상한 신념이 어쩌면 내 이기적인 아집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아이가 중학교 때, 봄이면 알러지로 눈물 콧물 흘리고 두통으로 괴로워 제대로 일상생활이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손이 닿지 않는 귓구멍, 목구멍 안까지 가렵다며 괴로워하는 아이에게 '이 계절만 지나면 돼. 질을 바꾸면 돼'하며 현미차만 끓여먹였다. 보다못한 남편이 '어차피 일 이 주만 지나면 알러지 시즌이 지나가니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면 잠깐 약을 먹여라. 일년 내내 먹는 약도 아니고 부작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아이를 고통스럽게 하느냐'고 강하게 말하기에 처방받아 알러지약을 먹였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한두시간만에 가려움과 콧물이 뚝 그치는 기적 일어났다. 지난 몇년동안 힘들어하던 아이에게 참으라며 다그치기만 하고 아이의 고통은 공감해주지 못했던 것이 무척 미안했다. 지금도 그와 비슷한  상황인 것은 아닐까.


물론 먹으면 수학성적이 쑥쑥 오르는 약이 있을리는 없다. 그러나 아이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엄마인 나는 아이의 그 고통을 공감해주지는 않고, 그저 속물적인 부모로 비치기 싫다는 자존심으로 절망과 고통속에 있는 아이를 그저 못 본 척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저 아이의 뇌 속을 찍어 수학점수가 낮은 이유를 설명해주는 검사가 있을리는 없으나, '엄마가 너의 속상함과 절망을 이해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병원에 가 보는것이 필요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 동네 정신건강의학과에 다 전화해 보고, 그 중 가장 빠르게 초진을 잡을 수 있는 병원에서 한 달 후인 4월 중순에 겨우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생전 처음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정신병원이라는 곳에 가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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