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1
생각이 많은 이유는 생존을 위한 안전장치가 켜져 있기 때문이다. 이 안전장치는 미래의 위기를 피하려고 우리를 걱정 속에 가둔다. 그래서 걱정 속에 갇힌 우리는 현재에 살지 못하고 미래에서만 헤매게 된다.
나는 우뇌형 인간인가 보다. 예민하고 관찰력이 뛰어나 공감 능력과 상상력이 좋은 편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솟구치는 생각 때문에 정신적 과잉 상태가 되어 고통스럽다. 잠깐 한눈팔면 뇌에는 쓸데없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머릿속을 지배한다. 그러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생각들을 정리하느라 얼이 빠진다. 낮에는 정보에 노출되어 그렇다 쳐도 밤이 되면 뇌가 쉬어야 한다. 그러나 생각은 멈추질 않는다. 어렵게 잠이 들어도 어느 순간 꿈속에서 끝없이 샘솟는 생각들을 정리하느라 바쁘다. 간혹 처리하기 힘든 일이 생기면 꿈속에서도 괴로워한다. 그리고 끝내 그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나의 의식은 꿈 밖으로 뛰쳐나와 잠을 깨운다.
사람 중 15~30%는 우뇌형 인간이라고 한다. 우뇌형 인간은 마음의 변화에 섬세하게 반응하여 좌뇌형 인간보다 감정적인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다. 흔히 우뇌는 감정을 담당하고 좌뇌는 이성을 담당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뇌를 10~20%밖에 활용하지 못하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좌뇌와 우뇌가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살아남기 위해 진화했을 것이다. 그리고 뇌에 생존을 위한 안전장치가 전해졌을 것이다. 지금 인간은 수많은 동물 중에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다른 동물보다 더 발달한 뇌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 옛날에 인간은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동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그들의 움직임이나 소리에 민감했을 것이다. 자연의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각(味覺)과 후각(嗅覺)이 발달해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오감(五感)이 만든 경험은 기억으로 저장되어 생존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기억은 고스란히 유전자에 담겨 후손들에게 전달되었고 뇌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유전자를 품은 뇌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과민 반응하여 걱정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걱정으로 들어가 미래의 위기를 해결하려고 애쓴다. 따라서 수만 년 동안 축적된 기억을 가진 뇌는 살아남기 위해 쉬지 않고 생각한다.
다행인 것은 생각을 줄일 방법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방법은 외부 환경에 둔감(鈍感)하기 위해 크게 기뻐하지도 않고 크게 슬퍼하지도 않는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가 아닌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이 들면서 선택한 가장 큰 변화는 만나는 사람을 줄이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어떻게 영업 직원으로 살아왔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나의 기(氣)가 수많은 고객에게 빨렸는데도 그 젊은 날을 무탈하게 보냈다. 그러나 지금 나의 정신은 많은 사람의 생각을 공유하기에는 너무 낡은 것 같다. 자칫 많은 사람의 생각에 휘둘려 정신줄이 끊어질까 봐 두렵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외로움보다 자유의 행복이 더 커진다. 외로움은 충만한 자유와 같은 선상에 있고 그 위치만 반대일 뿐이다. 외로움은 외부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홀로된 쓸쓸한 감정이라면 자유는 스스로 선택한 혼자만의 고독이다. 외로움과 자유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생각과 걱정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뇌는 언제든지 생각을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생각은 걱정을 만들어 미래의 위기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안전장치가 의지와 상관없이 아무 때나 켜진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려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이 잠식되지 않으려면 생각을 끄는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