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랑드르의 한별 Mar 16. 2024

릴에 오기 전에 고려할 몇 가지

릴에서 살아볼까 고민하는 분들께

이전 글 : https://brunch.co.kr/@f4efdc2e7aae4ab/2 


저번엔 내가 생각하는 거주지로서의 릴의 장점을 다뤘다. 하지만 아무리 애정으로 포장해도 감출 수 없는 문제점은 분명 어느 도시에나 존재한다. 릴 메트로폴리스에서의 머물기를 고려하고 계신 분들을 위해 릴에서의 삶을 고달프게 만드는 요소 여섯 가지를 짚어 보겠다.


1. 높은 물가

릴은 상대적으로 물가가 높은 도시다. 파리나 리옹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외식을 할 때나 주차를 할 때에도 항상 기대하는 것 보다 1, 2유로 이상은 지불해야 한다. 특히 집세는 몇 년 전부터 끊임 없이 오르는 중이다. 월세만으로 따졌을 때 릴 도시 내에서는 평방 미터 당 14,7 유로로, 노르 지역의 평균 월세가 11유로 전후인 것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내 주변과 스스로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학생이 15m² 정도의 스튜디오(원룸)을 렌트하려면 공과금을 제하고도 최소 350-400유로를 월세로 내야 한다. 매입 가격은 훨씬 심각해서 아파트 1m²당 3770 유로 정도라 한다.


(참고 기사 :

https://actu.fr/economie/immobilier-nord-dans-quelles-villes-les-loyers-sont-ils-les-plus-chers_56252471.html )


이런 연유로 릴 도심에서 거주하는 사람은 계속 줄고, 도시 곳곳에 SDF (Sans domicile fixe, 주거 부정자), 노숙인구가 매해 늘고 있다. 수입이 낮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아 집세가 낮은 릴 서쪽이나 릴 동쪽의 주변 도시나 외곽의 시골을 찾게 된다. 그로 인해 도드라지는 또다른 사회적 문제가 바로 다음의 사안이다.


2. 자치구에 따른 지역 불균형

국립 통계 경제 연구소 INSEE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릴은 리모쥬, 루앙, 아비뇽과 함께 지역 불균형이 가장 두드러지는 도시이다. 릴은 구에 따라 사회적 위치나 경제적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세입자의 수입에 따른 거주 지역 분리가 심각하다. 19세기부터 공장주나 부르주아 계급의 사택이 자리잡았던 보방-에스케름 Vauban-Esquermes 구나 생 모리스 펠보아장 Saint-Maurice-Pellevoisin 구, 원래는 노동자 구역이었으나 1990년대에 진행한 구도심 재생 프로젝트 이후로 집세가 훌쩍 뛴 릴 상트르 Lille-Centre 구의 거주민의 삶은 집세가 상대적으로 낮아 이민자 인구 비율이 높은 피브 Fives 구나 릴 쉬드 Lille-Sud 구의 거주민의 삶과 거의 극과 극에 놓여있다.


이 문제는 릴 메트로폴리스 전반에 걸친 심각한 사안으로, 교육 방식이나 문화 생활 수준 역시 확연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한 구에서 다른 구로 갈 때 생활 양상 자체가 변하는 걸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저소득층이 밀집된 지역엔 청결이나 소음, 치안 문제가 자주 대두된다. 하지만 생활 방식에 따라 이런 지역이 활기차고 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특정 구에 찍힌 부정적 낙인에는 저소득 노동자와 이민자를 향한 차별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선 직접 그 구를 방분해서 분위기를 느껴 보는 것이 좋다.


Insee 통계 분석 자료 :

https://www.insee.fr/fr/statistiques/7661482



3. 파리아닌, 지방이라는 곳의 한계


한국의 지방에서 나고 자랐으며 지금도 파리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뼛속까지 지방민인 나도 지방 도시의 불편함을 자주 느낀다.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카페, 버블티 열풍, 그리고 가장 최근의 한류 등, 어떤 트랜드가 생기면 릴은 파리보다 항상 2년 늦게 그 트랜드를 들여온다. 분명 수도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곳인데도 유행에 덜 민감한 것이 신기하다. 나처럼 최근에 인기있는 것에 무딘 사람이라면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는 문제다.

 파리였다면 각 구에 하나씩은 있을 아시아 상가와 식당의 부족은 김치나 장아찌가 없으면 밥을 못 먹던 사람에겐 가혹한 일이다. 대형 아시아 마트는 릴에서 20분 떨어진 루베 Roubaix의 파리 스토어 Paris store 뿐이고, 아니면 와젬 Wazemmes 구에 있는 작고 청결도가 떨어지는 아시아 슈퍼마켓으로 가야한다. 까르푸나 오샹같이 큰 슈퍼에서는 이제 조금씩 한국 식품을 팔기는 하지만 종류가 많지 않고, 있더라도 매운 라면같은 제품만 들어온다. 프랑스를 휩쓸고 있는 한류의 열풍에도 릴에 한국 음식점을 세 군데 뿐이고, 보통 이곳의 '아시아 음식점'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퓨전 초밥집이거나 값싼 중식집이 대부분이다.


문화 생활에 있어서 딱히 불평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파리보다는 이벤트가 발생할 경우의 수가 적고 문화 상품 선택의 폭이 좁은 건 사실이다. 그래도 릴이 유명 도시라 아주 큰 콘서트면 여기까지 순회공연이 오긴 하지만, 만약 타국의 인디 밴드가 프랑스 투어를 한다 하면 무조건 파리까지 기차표를 끊어야 한다. 거기에 프랑스에서 가장 자주 이용되는 릴-파리 철도노선은 노선 길이와 운행 시간에 비해 사용료가 높아 마음 놓고 수도까지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 북부에 살며 파리 루브르를 가보지 못한 사람이 많은 이유에는 부담스러운 기차삯이 크게 작용한다. 지나치게 북부에 치우쳐 있는 릴의 위치는 이남의 다른 지역을 방문하기 어렵게 만드는 단점이 된다.



4. 도시의 청결도와 조경


인구 밀집도가 높고 많은 사람이 찾는 도시는 쉽게 지저분해지기 마련이지만, 릴 도심엔 유난히 담배꽁초, 깨진 술병, 각종 오물이 널려있다. 이렇게 쓰레기가 즐비한데도 도로변에 배치된 휴지통에 아예 쓰레기 봉투가 걸려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거기에 구도심으로 가면 어린 아이 앞니마냥 듬성듬성 빠진 포석 때문에 도로를 걸을때 위험하다.

구도심의 화려한 경관으로 사랑받는 릴이지만, 많은 주민과 관광객이 릴 도심에 녹지가 없다는 지적을 한다. 대광장 주변 구도심에만 가봐도 온통 포석이 깔린 돌길이고, 나무가 없어 여름엔 돌에 반사된 열기로 거리가 후끈하다. 오래 산책을 하고 싶으면 북서쪽의 시타델까지 가거나 아니면 인근의 빌뇌브 다스크 시의 에롱 공원으로 가야 한다. 동네 구석구석 아주 작은 공원들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녹지가 없어 삭막하다는 이미지가 있다. 고저도 없이 평평한 지역에 심지어 파리나 리옹처럼 큰 강이 중심을 지나지 않기 때문에, 배산임수가 불가능한 척박한 풍경이 연출된다.



5. 우중충한 날씨

프랑스 북부하면 영국처럼 비가 많이 오고 우중충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사실이 아니라고 하기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비바람이 몰아쳐서 집에 칩거해 있는 상태다. 릴의 기후는 북쪽 평원의 특징을 가진 서안 해양성 기후로 분류된다. 4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는 맑은 날이 지속되지만, 초겨울부터 초봄까지는 거의 해가 뜨지 않고 비가 온다. 우리나라 여름 장마처럼 강수량이 큰 것은 아니나, 부슬비와 소나기가 번갈아가며 하루에 예닐곱 번씩 내린다고 보면 된다. 더욱이 늦가을부터는 오후 다섯시면 해가 지기 때문에, 우중충한 날씨와 햇빛 부족으로 인한 계절성 우울감에 젖기 쉽다. 높은 습도로 인해 빨래가 잘 마르지 않고, 바람이 심하게 불기 때문에 우산이 소용이 없을 때가 많다.


다행이도 겨울에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는 것이 아주 드물다. 달리 말하면 눈을 보기는 어려운 지방이란 뜻이다. 오 년 혹은 십 년에 한번씩 눈이 쌓일 정도로 온다. 그리고 온도가 그렇게 낮지 않다 하더라도 북부 평원 특유의 강풍이 비와 합쳐지면 버티기 어려운 기후 조건이 된다. 프랑스 북부의 전통 요리가 칼로리가 높은 이유 역시 춥고 긴 겨울밤을 이겨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곳의 지역색을 띈 요리가 궁금하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시길 바란다.



6. 모든 것을 부식시키는 석회수


이것이 바로 릴 지역에 살며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이다. 릴과 그 주변은 퇴적층이 주가 되는 파리 분지에 포함되며, 퇴적암인 활석과 사암이 지층의 기본이 된다. 물에 석회 함량이 높아, 그 경도가 파리의 두 배인 52,0 °f 정도이다. 설거지를 하고 곧바로 물기를 닦지 않으면 흰 반점이 생기고, 샤워기가 석회로 막혀 온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며, 세탁기를 돌리면 빨래가 뻣뻣해진다. 이 모든 불쾌한 현상이 내 일상이 되면 하루하루 짜증이 솓구친다. 피부도 한국에 있을 때보다 확연히 나빠고, 특히 머리카락이 부드러움을 잃는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급수 밸브에 대형 필터를 설치하는 것 뿐이나, 가격도 비싸고 유지도 어려워 세입자일 경우 쉽게 할 수 없는 결정이다.



Conclusion. 릴, 살기 어떤 곳인가?


이렇게 십 사년을 살며 느낀 릴의 장점과 단점 여섯 가지를 나열해 봤다. 이곳에서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날씨나 수질 등을 포함한 자연 환경이다.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수질이나 대기질, 자연조경의 문제는 삶의 질을 확연히 떨어뜨릴 수 있다. 노력한다 해도 바꿀 수 없는 대자연을 견디며 느끼는 무력함을 달래주는 것은 릴의 사회적 성숙함이다. 다양한 문화 활동 체험을 제안하는 수많은 기관 덕에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지키면서 직업활동을 할 수 있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에 일어난 수많은 노동 투쟁으로 다져진 사회 보장 제도가 아직까지는 안정적으로 지켜지고 있기에 경계의 정도를 조금 낮추고 살 수 있다.


다른 프랑스의 대도시에 비하자면 릴은 아주 멀끔하고 화려한 도시도 아니고, 오히려 노숙인이나 비행 청소년, 밀거래 상 등 우리 사회의 매정함으로 고통받는 이의 삶을 노골적으로 옅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 나라에서 소수자이며 경제적 약자인 나는 그 정직함에 오히려 안도한다. 가난과 불평등은 이 사회의 현실이며, 만약 도시가 이런 불합리함을 감추고 아름답기만 하다면 나는 그것을 기만으로 간주하고 경계할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출신의 이민자가 가져온 다양성과, 이곳 주민의 관심어린 친절은 길고 힘들었던 정착에 도움을 많이 줬다. 만일 당신이 간헐적인 자극과 느린 리듬으로도 충족히 살아갈 수 있고, 큰 빌딩 숲과 네온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고전적인 몽상가라면 릴은 미래의 거처로 고려해 볼 만한 도시다.


작가의 이전글 릴, 거기가 어디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