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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드르의 한별 Mar 27. 2024

프랑스 북부 사투리 슈티 Ch'ti

현지인과 친해지고 싶을 때 유용한 표현 몇 가지를 배워보자

출처 : Allociné


'알로, 슈티 Bienvenue chez les Ch'tis'라는 영화를 본 적 있는가? 2008년에 개봉해서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프랑스 영화로, 노르 지역의 아르망티에르 Armentières 출신 코미디언인 다니 분 Dany Boon이 감독하고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 다니 분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경험한 프랑스 북부 사람에 대한 편견을 유머와 따뜻한 시선으로 다루며, 프랑스 인들이 가지고 있던 노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영화 초반에 원치 않게 노르 지역의 소도시 베르그 Bergues로 전근을 온 주인공 필립은 현지인들의 억센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 신경질을 내곤 한다. 이 프랑스 북부 지역어를 슈티 Ch'ti 혹은 슈티미 Ch'timi라 부른다. 본래 피카르디 지역어만을 일컫는 명칭이었으나, 1차 세계대전 중 참호의 군인들이 피카르디와 노르-파 드 칼레 지방을 혼동해 사용하기 시작한 후로 세 지역의 사투리를 통칭하는 단어가 됐다.

외지인과 이민자, 그리고 청년 인구 비율이 높은 대학도시 릴에서는 평소에 이 사투리를 듣기 어렵다. 그래도 이 글에서는 프랑스어를 배우고 계시거나 사용하시는 분들을 위해 내가 직접 들어봤거나 사용하는 보편적 문장과 단어 몇 가지를 알려드리고자 한다.


0. 기본적 발음

스S와 스C가 슈SH로 발음된다. 간혹 트T소리도 슈로 치환이 된다.
    예) 세 C'est  ➠ 쉐 Ch'é, 플라스 place ➠ 플라쉬 plash


아A 소리가 독특하게 Ô (열린 오) 소리가 된다. 우리나라의 '어'에서 목을 더 울리는 느낌으로 톤을 낮춰 발음한다. 몇몇 슈CH 소리가 크K 소리로 치환된다.
    예) 쉬앵 chien (개)➠ 끼앙 kien, 샤 chat (고양이) ➠ 꺼 kât

이 외에도 앙AN/AM, 옹ON/OM, 앙EM/EN이 앵IN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
    예) 몽 mon ➠ 맹 min,     Mon petit poussin ➠ min p'tit pouchin 내 작은 병아리

오아르 oir가 오왜르 oèr로 발음된다.
    예) 보아르 boire 마시다 ➠ 보애-르 boèr, 크롸르 croire 믿다 ➠ 크뤠-르 croère


이 외에도 T가 TCH로 발음되는 등 많은 규칙이 있지만, 보편적으론 표준 프랑스어보다 더 이 빠진 소리를 많이 내고, 모든 단어를 웅얼거리거나 흘리듯 발음하면 제법 슈티 느낌을 낼 수 있다.


    
본격적 슈티 따라잡기

Il pleut ➠ Il drahce  일 드라쉬
단순한 '비오다 pleuvoir'는 잊어라! 드라쉐 dracher는 비가 폭풍우처럼 세차게 올 때 쓰는 말이다. 비가 지나치게 길게 올 때도 쓸 수 있다. 겨울 내내 비가 오는 북부에서 쓰기 딱 좋은 단어로, 이 단어만 알더라도 현지인들의 놀란 표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어를 쓰는 벨기에 브뤼셀 지역과 왈로니 지역에서도 사용 가능하다.

Je ne sais pas ➠ Ch'é pô 쉐 뽀/뻐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하셨다면 '쥬 느 쎄 빠'가 '모르겠다'는 말이라는 것을 아실 것이다. 위에 설명한 몇가지 규칙을 적용해보면, 부정문의 ne가 일상어에선 탈락하고, je sais 가 합쳐지며 '쉐'처럼 발음된다. 거기에 A 소리가 열린 O로 변해서 '쉐 뻐'로 줄어든다.

Je te tiens au courant/jus ➠ Je te dis quoi 쥬 뜨 디 꽈
se dire quoi 는 아마 북부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사투리 문장일 것이다. Se tenir au courant/jus는 새로운 일이 생겼을 때 상대방에게 소식을 전한다는 뜻으로, 다음 경우에 쓸 수 있다.

   A : Tu sais à quelle heure tu finis demain ?  너 내일 언제 끝날지 알아?
   B : Pas encore, je te tiens au courant. 아직. 알게 되면 연락할게.


이게 보편적 프랑스어 대화라면, 북부에서는 저 답변을 완전히 짧게 줄여서
   B : Pas encore, je te dis quoi. 아직. 그거 (원하는 정보를 알게되면) 말해줄게.
라고 하는 것이다. 얼마나 근사한 절약인가. 다른 지역에서 쓰면 정말로 못알아 들으니 조심하자.


Biloute 빌루뜨

 남성기를 지칭하는 말로, 우리말의 '불알친구'라는 말처럼 친한 사이에 애칭으로 쓰인다. 슈티를 설명할 때 꼭 나오는 유명한 단어이긴 하나, 개인적으론 한번도 실사용하는 이를 본 적이 없다. 파 드 칼레 쪽에서 더 자주 쓰는 듯 하다.


Ça va mon petit (ma petite) ? ➠ Cha va tcho? 샤 바 쵸 ?
이건 생토메르 출신 동료 몇 명이 초등학생 학급을 맞이할 때 쓰는 것을 들었고, 친구 부모님이 쓰시는 것도 들어봤다. 쬬와 쵸 사이로 발음하는 이 단어는 '작다'란 뜻으로, 어린 아이를 부를 때 쓰인다. '잘 있었어/괜찮아, 우리 XX?' 정도의 뉘앙스로 쓸 수 있다.



Estaminet 에스타미네
벨기에와 프랑스 북부에서 에스타미네는 원래 노동자 계층을 위한 카페 및 선술집었지만, 오늘날은 옛 플랑드르 지역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토속 식당 쯤으로 여기면 된다. 옛날 분위기를 내기 위해 말린 홉의 꽃 덩굴을 천장에 걸어놓는 것 처럼 고즈넉한 인테리어 장식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하신 분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Endive ➠  chicon 쉬꽁

에스타미네에서 볼 수 있는 단어인 쉬꽁은 꽃상추의 사투리로, 쓴 맛이 강해 호불호가 갈린다. 이 지역에선 특히 샐러드에 넣거나 햄을 넣고 그라탕을 만든다.


La serpillère ➠ la wassingue 와생그
이제는 별로 쓰지 않는 말이지만 와생그는 대걸레를 말한다.

Saque eûd'din 혹은 Saque din
이번엔 피카르디 지역에서 온 사투리로, 싸→끈↘댕↗ 정도로 발음한다. 친구들과 게임을 할 때 몇번 들었던 말로, (과녁) 안으로 쏴라 (saquer dedans)! 정도로 번역되는 이 문장은 주저하지 말고 당장 행동하라는 말로, 우리 나라의 '화이팅'과 '빨리해/망설이지 마라'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Kidiklik

La ducasse / la kermesse 라 뒤카스 혹은 라 케르메스 

릴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면 가을에  뒤카스 Ducasse에 가자고 할 수 있다. 옛 플랑드르 지역의 큰 도시에서 수호성인 축제날 열리는 큰 잔치를 일컫는 단어였지만,  현재 프랑스 북부에서는 해마다 열리는 순회 유원지를 포함한 축제를 뜻한다. 케르메스 역시 비슷한 의미로, 학교 내에서 열리는 작은 잔치를 칭할 때도 쓴다. 뒤카스에 가면 각종 놀이 기구와 군것질거리, 야외 콘서트를 즐길 수 있다. 릴에서 가장 유명한 뒤카스는 시타델 주변 에스플라나드에서 봄과 여름에 열린다.


Pleurer ➠ braire 브레르
브레르 braire는 '고함지르다, 소리지르다'라는 보편적 동사이지만 프랑스 북부에선 특히 '울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미지 출처 : 직접 그

Soyeux 소유

스펠링과는 다르게 소와유가 아니라 소-유로 발음하며, 톱을 쓰는 제재공 scieur이란 단어의  변형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묘사할 때 쓰이면 '시끄럽고 귀찮게 구는' 사람을 뜻한다. 특히나 어린아이에게 하는 말이지만, 옛날에는 술집에서 너무 취해서 주변을 불편하게 만드는 고객이 있으면 주인장이 오뚝이처럼 생긴 작은 제대공 모형을 그 사람 옆에 두고 가기도 했다. 이는 당신이 분위기를 망치고 있으니 당장 조용히 하지 않으면 쫒아내겠다는 경고였다.


allumer / éteindre la lumière ➠ ouvrir / fermer la lumière 우브리르/페르메 라 뤼미에르

이  말은 내가 남쪽에서 온 친구와 이야기 하다가 사투리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문장이다. '불을 켜다/끄다'라고 하고 싶다면 우리 말처럼 '켜다 allumer' 와 '끄다 éteindre' 동사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북쪽에선 종종 열다 ouvrir/  닫다 fermer 동사를 써서 전깃불을 켜고 끔을 나타낸다.


Hein과 euh를 문장 중간에 집어넣기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가장 최강의 비기이다. 모든 문장의 마지막에 엥? 을 붙이고 중간에 생각이 안 날 때마다 '으'와 '의' 사이의 소리를 목을 울리면서 낮은 목소리로 반복하면 꽤 슈티미처럼 말할 수 있다. 다만 이곳 출신이 아닌 사람 앞에서 슈티 사투리를 쓰면 당신이 세련되지 못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슈티는 오랫동안 가난한 노동자 계급, 그 중에서도 탄광 인부나 직조 공장 노동자의 이미지를 반영했다. 프랑스에서 이 두 산업이 무너진지 오래인 오늘날에도 슈티를 쓰는 발화자에겐 투박하고 교양 없는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곤 한다.

하지만 최근엔 사투리가 중요한 문화적 재산이라고 생각해 슈티를 연구하는 사람도 늘고 있으며. 티비나 인터넷 상에서도 짧게 슈티 악센트를 쓰는 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물론 다른 사투리와 마찬가지로 세대가 지나면 지날수록 발화자가 적어지는 게 현실이고 나 역시도 전혀 제대로 된 슈티로 대화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몇 가지 표현을 알아두는 것만으로 여기서 오래 머물었던 사람과의 대화가 풍요로워진다. 애정어린 베르그 주민들의 관심과 도움 속에서 천천히 마음을 열고 사투리를 배워보려 노력하는 '알로, 슈티'의 주인공처럼, 이 지역에 오게 된 여러분께도 그런 따뜻한 만남의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슈티의 재생을 다룬 국립 시청각 연구소 INA의 영상을 올리며 글을 마친다.


Ina -  https://www.ina.fr/ina-eclaire-actu/video/s709487_001/langue-chti-la-fierte-du-nord-retrouv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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