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부의 문화 전반이 그렇듯, 이곳의 향토 음식은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프랑스 북부가 다른 지역과의 가장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식문화다. 해가 빨리 지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튀김처럼 고열량의 음식을 넉넉히 먹는 편이다. 낙농업이 발달한 지역인 만큼 유제품이 들어가는 음식이 많다. 여러분이 이 지역에 놀러올 때를 대비해 에스타미네 Estaminet, 즉 향토 음식점에서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메뉴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향토 음식점에서 먹을 수 있는 메뉴
까르보나드 플라망드 carbonade flamande
Chefclub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알로, 슈티'라는 영화에서도 노르 출신 등장인물이 '여기 왔으면 까르보나드 플라망드는 먹어봐야지!'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프랑스식 장조림인 뵈프 부르기뇽 boeuf bourguignon과도 비슷한데, 부르기뇽 방식대로 포도주를 넣는 대신 맥주를 넣고 소고기를 끓이면 까르보나드 플라망드가 된다. 소스의 점도를 올리고 단짠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스페큘로스 과자를 넣기도 한다.
플라망드는 '플랑드르 지역의'라는 뜻이고, 까르보나드의 까르보 carbo는 석탄 charbon을 뜻한다. 탄광촌에서 많이 먹던 음식이라 그런 것인지, 석탄 위에서 오래 끓이는 음식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진한 소스에 절여진 고깃덩이가 석탄을 닮아서 이렇게 부르게 된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달달한 장조림같은 식감에 다진 양파와 당근 등 야채가 조금 들어가고,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다. 전통적으론 생강빵 한 조각이 올라가 있는 것이 정석이다.
폿슈블레쉬 Potjevleesch
옛 네덜란드어로 단지 pot에 담긴 고깃덩이 vlees 라는 뜻을 가진 이 요리는 소고기, 닭고기, 토끼 고기 등을 섞은 후 테린느 단지에 담아 전체를 젤라틴으로 굳히는 파테 계열 음식이다. 고기를 졸이는 과정에서 넣는 와인식초의 시큼한 맛과 젤라틴의 물컹한 식감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 감자튀김이나 샐러드를 곁들여 먹는다.
와테르조이 Waterzooï
네덜란드어로 물 water과 더미 zooï를 합친 말로, 닭고기나 흰살 생선을 야채와 감자를 넣고 푹 끓이는 겨울스튜이다. 국물에 크림이 들어간 것이 특징이고, 벨기에 헨트 지역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조리법이 어렵지 않아 집에서도 만들 수 있다.
홍합탕과 감자튀김, 물 프릿 Moules-frites
마치 덩케르크 카니발 기간에 사방에서 던지는 말린 훈제 청어처럼, 감자튀김을 곁들인 홍합탕은 릴의 가장 중요한 축제인 브라드리의 대표 메뉴다. 이 조합의 유래는 확실치가 않은데, 브뤼셀의 한 요리사가 고안해 냈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퍼져있다. 샐러리와 양파, 허브와 당근 등을 넣고 백포도주에 끓인 홍합탕은 홍합이 제철일 때에만 맛볼 수 있다.
릴 브라드리 소개 영상 : https://youtu.be/3FurIaROvXI?si=DVM2r2nmYbxXwGlF
쉬꽁 오 그라탕 Chicon au gratin
저번 글에서 쉬꽁은 꽃상추를 뜻한다고 했는데, 아주 간단히 꽃상추 위에 얇게 저민 햄을 올리고 베샤멜 소스와 치즈로 채워 만드는 그라탕이다. 이전에 말했듯이 꽃상추엔 쓴 맛이 있고 가열하면 더 강해지지만, 베샤멜 소스와 저민 햄의 부드러운 맛으로 중화가 된다.
comptoirdesflandres
웰쉬 welsh / welsch
깊지 않은 토기 그릇 안에 햄을 올린 토스트를 놓고, 그 위로 맥주로 녹인 치즈를 부어 익힌 그라탕 류의 음식이다. 영국의 웨일즈 사람을 웰쉬 Welsh라 부르는데, 이 요리가 '웰쉬 레빗'이라는 영국 음식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영국 음식이 영국 해협과 멀지 않은 프랑스 북부 항구도시에 전파되어 오늘날은 대부분의 에스타미네의 메뉴판에서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짜고 느끼한 음식이기 때문에 기름진 것을 좋아하시지 않으시다면 피하는 것이 좋다.
마루왈 maroille
노르망디의 까망베르만큼은 아니겠지만, 이 지역에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치즈가 있다. 식전 핑거푸드로도 즐겨먹는 진한 주황색에 단단한 식감과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 미몰렛 Mimollette도 있지만, 가장 유명한 북부의 치즈는 바로 마루왈이다. 숙성 기간이 상당히 길고 끈적끈적한 식감을 가진 이 치즈는 특유의 강한 향 때문에 악명이 높다. 몇 십년 전만 해도 노르에는 아침 커피에 마루왈 한 조각을 담군 후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마루왈과 비슷한 종류의 치즈인 비외 릴 Vieux-Lille은 오랫동안 숙성한 치즈의 외피를 여러번 맥주로 닦아내서 더욱 깊은 풍미가 있다.
BONUS
ça drache en Nord
바락 아 프릿 baraque à frite
매번 근사하게 식사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싶을 땐 바락 아 프릿이 해결책이다. 바락 아 프릿은 튀김집이라는 뜻으로, 건물 안에서 조리하는 프리트리 friterie와는 조금 다르게 컨테이너 박스나 이동식 푸드트럭인 경우가 많다. 이전엔 동네에 하나씩 있던 스트릿 푸드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바락 아 프릿에선 이 지역 음식의 기본인 감자튀김을 포함한 각종 튀김과 소시지를 판다. 여기까지 왔으면 감자튀김을한번 정도는 먹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튀김용으로 쓰이는 감자 종자가 따로 있어서 '겉바속촉' 텍스쳐를 잘 느낄 수 있다. 다만 옛날 방식으로 감자를 튀기는 곳에서는 소 기름 등 동물성 기름을 추가해 향을 내기 때문에 채식을 하시거나 이런 류의 음식을 피해야 하시는 분께서는 이 점을 알아두시는 것이 좋다.
소시지 중에서도 각종 고기를 섞어 만든 프라카델 fricadelle이 유명한데, 기름에 갓 튀겨 따끈할 때 먹으면 아주 맛있다. 재료는 제조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프리카델은 맛은 좋지만 안에 뭐가 들어갔는지 아무도 모른다'라는 플랑드르 속담이 있다. 속에 게살이나 치즈가 차있는 크로켓도 별미다. 바게트에 튀김, 혹은 고기를 넣어 샌드위치도 만들어주기 때문에 값싸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편하다. 재료가 무엇이 되었든, 방금 나온 튀김은 항상 고소하고 바삭하다.
이렇게 오 드 프랑스, 더 넓게 보면 벨기에에서 맛볼 수 있는 향토 음식을 알아봤다. 북부의 음식은 오늘날 지향하는 것 처럼 '건강한' 메뉴와는 거리가 멀다. 동물성 지방이나 치즈 등의 유제품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고 소금간이 센 편이기 때문에 산뜻한 지중해 음식의 맛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도 세련된 조리법보단 투박하고 정겨운 모양의 메뉴를 한 번 정도는 즐겨보서도 나쁘진 않으리라.
다음 글에서는 식사를 마치고 나서, 혹은 티타임에 안성맞춤인 향토 디저트를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