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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드르의 한별 Oct 20. 2024

[한 주, 한 작품] 2. 마리 마그리트 종

[1 semaine, 1 oeuvre] Marie-Marguerite

'마리 마그리트'는 요새 프랑스 아이들 사이에선 보기 힘든, 일흔 넘은 여성에게 흔히 붙는 이름이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마리 마그리트는 꽃무늬 카디건을 입고 안경을 쓴 나이 지긋한 분의 초상이 아니라, 성당의 종이다. 그것도 몇 톤은 거뜬히 나가는 가장 큰 종, 이름하야 '왕벌 bourdon'.

[한 주, 한 작품] 2. 마리 마그리트 종


루앙과 아미앙의 주교로부터 축성받는 랑쿠르 묘지의 예배당 종, 1922년, Paris, BNF, département Estampes et photographie


유럽 가톨릭 문화권에선 10세기부터 마을의 시간을 담당하는 종을 축성하는 의식이 보편화됐다. 종을 탑에 안치하기 전에 지역의 성직자 (보통 주교)가 종에게 이름을 내리고, 대모와 대부를 정하며, 성유를 바르고 성수를 뿌리는 등 보통 사람이 받는 세례식과 비슷한 절차를 거친다. 종 밑으로 향로를 넣어 향과 연기가 종을 가득 차게 하는 것도 주요 과정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축복을 한 후, 종을 타구봉으로 쳐서 소리를 울리는 것으로 축성식을 마친다.

릴 메트로폴에 속한 옛 산업도시 뚜르꼬앙의 중앙엔 성 크리스토프 성당이 근사한 종탑을 뽐내고 있다. 이 높은 종탑 안에서 무려 62개의 종으로 이루어진, 프랑스에서 다섯 번째로 큰 카리용이 15분에 한 번씩 황홀한 음률을 낸다. 카리용은 두 옥타브를 낼 수 있도록 최소 23개의 종으로 이루어진 타악기의 일종인데,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 크리스토프 성당 카리용의 대장이 바로 마리 마그리트이다.

1891년에 주조된 이 '왕벌'은 무게만 6톤이 나가며, 이름은 종 주조에 가장 큰 경제적 도움을 준 신자인 '마리 마그리트' 대모에게서 따왔다. 축성식 이후에 비좁은 종탑의 창문으로 마리 마그리트를 들여올 수가 없어서 종탑의 바닥을 일부 도려낸 후 최고층인 '종의 방'까지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종탑에 들어가 보면 각 층의 천장에 종의 모양에 따라 둥글게 잘라진 목조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거대한 종이 어떻게 악기처럼 연주가 되는 걸까? 카리용의 용도는 무엇일까? 바로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이 성당 종탑 내에 '카리용 박물관'이 마련되어 있다. 소장품의 규모는 작지만 몇 세기 전부터 이 성당의 카리용이 어떻게 발달했는지 직접 볼 수 있는, 다른 곳에선 찾기 어려운 독특한 박물관이다.


한 주 한 작품은 '프랑스 뮤제로의 산책 : 오 드 프랑스 편' 발간을 축하하며, 책에 소개된 열네 곳의 독특한 전시물 하나를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이 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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