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퇴직'이라는 나비가 불러 온 나비효과2
장사는 아무나 하나?
누구나 다 알듯이 장사를 하려면 첫번째 부지런해야 한다.
가게를 정해진 시간에 열고 닫는 것은 기본이고, 장사를 안 하는 날들도 물건을 팔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가능한 가게 문을 오래 열어두어야 한다.
가게 안의 물건도 늘 품질이 좋은 물건, 유통기한이 있다면 기한을 잘 관리하며 잘 정돈된 상태로 진열해야 물건을 구매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다.
K의 남편 J가 시작한 두번째 가게인 '세계과자가게'는 가게 주변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편이고,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다보니, 오픈하면서 제법 손님이 많았다.
어린이 손님이 오면 지나가던 길에 천원, 이천원 하는 정도의 과자를 사 가지만, 어른 손님이 오면 제법 1~2만원 이상이 되는 것들이 팔리기도 하니 가게 매출은 처음 해 보는 과자가게 치고는 제법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하루 종일 카운터를 봐야 하고, 때때로 물건을 훔쳐 가는 아이들도 봐야 하다 보니 자리에 앉아 있기 보다는 서서 가게를 돌봐야 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다 보니 J는 이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물건 진열을 수시로 하다 보니 손은 아무리 닦아도 손 밑이 검게 때가 끼었고, 로션을 발라봐야 금방 또 물티슈를 꺼내 들다 보니 손바닥과 손등은 벌겋게 트고 갈라졌다.
잠시 앉아 있는 것도 어려워 허리며 발목이며 쑤시고 아픈 날들이 계속 되었다. 파스를 바르고 자도 다음 날 온 몸이 욱씬 거린다.
제일 불편한 것은 담배였다.
마음대로 피고 싶은 담배도 손님이 가게에 있을 때는 편하게 가게 밖으로 나가 필 수가 없다. 담배를 하루에 한 갑에서 한 갑 반 정도 피는데 가게에 손님이 오래도록 있는 시간대에는 참으로 갑갑하였다. 이런 때는 가게 앞에 나가 담배 한 개피를 허겁지겁 입에 물고 몇 차례 큰 숨으로 빨아 들이고 내쉬며 피었다. 카운터로 손님이 오면 채 다 피우지도 못한 꽁초를 후다닥 비벼 끄고 달려 와 계산을 했다.
가장 화가 나는 건 봉지를 달라는 손님이었다.
천원, 이천원도 안 되는 물건을 사면서 ' 봉지에 담아 주세요. ' 하는 손님의 말을 듣는 순간이면 '아니, 봉지는 누가 공짜로 가져오는 줄 아나? ' 하는 생각에 부글부글 화가 났다.
손님이 제법 있었기에 월급쟁이 정도는 벌겠지 기대했는데, 막상 매출 대비 월세며 공과금이며 이러저러한 비용을 계산해 보니, 이 과자 가게 하나로 큰 돈을 벌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졌다.
특히 몸이 너무 힘들었다. 하루 마감을 하고 집으로 돌아 갈 때면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통증과 더불어 불편한 마음을 삯히기 위해 소주 한 병과 맥주 세 병을 사서 집으로 들어갔다.
K가 해 놓은 김치찌개에 라면과 냉장고에 있는 어묵, 스팸, 계란 등을 다 때려 넣고 끓여 후루룩 한 술을 뜨니 속이 뜨끈해지며 스르륵 눈이 풀린다.
'생각보다 별로네.. 괜한 짓을 했나? 돈도 많이 못 벌고 너무 힘들어 못해 먹겠네!..'
속상한 마음에 연거푸 몇 잔을 기울이니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J는 그렇게 씻지도 않고 한 켠에 양말을 벗은 채로 TV앞에서 밥을 먹었고 그대로 누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몸이 천근만근이니 J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K가 J를 몇 번 깨워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오늘은 가게 오픈을 K가 할 수 밖에 ...
K는 전 날 팔려 비어진 진열대에 새 상품을 채우며 연신 손님 맞이를 한다.
'어서 오세요.'
처음엔 낯설었던 이 인사가 J와 교대해 가게를 보는 날들이 늘어나며 입에 착 붙는다.
오후 2시가 되도록 J는 전화가 없다. K는 '피곤하니 이해해 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더 기다려 본다.
다시 1시간이 흘러 3시가 되자 K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J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하는 J의 목소리와 함께 J가 즐겨 보는 코미디 프로그램 TV소리가 K의 귓가에 흘러 들어 온다.
'깼으면 전화를 바로 해 줘야지!' K는 서운한 마음이 든다.
" 어, 좀 있다 나갈께. 밥 먹는다. ㅋㅋ " J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재미있었는지 웃음 띤 목소리로 말을 건낸다.
"그래, 그럼 밥 잘 먹고 얼른 와 줘, 나도 점심 때가 한참 지났으니.. " K는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끊는다.
오후 5시가 되어도 J가 안 나타나자 K는 화가 치밀었다.
'퇴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구멍가게나 보는 신세가 되었구나! ' 서글프기까지 하다.
낱 개로 포장된 과자와 젤리로 주린 배를 채우자 어느덧 속이 상한 K는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어휴, 얼른 들어가라! 내가 마감하고 들어갈께'
오후 6시가 될 무렵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끔하게 J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 온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K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와 보니 아이들이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J가 시켜 주고 간 모양이다.
이런 날들이 점점 늘어갔다.
조금 다른 점은 J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였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점심 교대용으로 4시간 정도를 쓰더니, 나중에는 하루에 2명을 Full 로 돌리며 가게를 보게 하였다.
J는 몸이 좀 편해지니 '진작 이럴 걸!'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K는 속이 탔다.
얌전할 것 같은 아르바이트생은 가게의 비번을 알고 있으니, 가게 문을 닫고 온 때에는 몰래 친구들을 데리고 와 티 안 나게 가게 물건을 훔쳤다.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아르바이트생에게 가게를 맡기는 일이 K는 점점 불안해졌다. 이 사실을 J에게 여러 차례 말해 보아도 J는 꿈쩍하지 않는다.
또 무슨 일인지 가게를 너무 많이 비우는 것에 K는 점점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지? 밤이며 낮이며.. '
나중에 알고 보니 J는 주변 상인들과 친해져서 밤에는 근처 당구장을 다니며 새벽까지 술을 마셨고 다음 날 점심이 되도록 드르렁 코를 골며 잠을 잤다.
'편하고 좋구나. 가게는 안 보고.. 그래도 시끄러운 것보다는 낫겠지...' K는 끔찍한 밤이 오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이었다.
가게를 여느 때와 같이 비운 J에게 연락을 하자 바쁜 목소리로 J가 전화를 받는다.
'나 여기 가게를 하나 더 냈다. 있다가 올래? '
샵인샵으로 분식집과 커피를 파는 가게를 냈다는 황당한 소식에 K는 말문이 막힌다.
'무슨 돈으로? '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J는 K모르게 K의 남은 퇴직금을 믿고 월세 250만원의 가게를 턱하니 얻어 알바까지 고용해서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아니, 과자가게는 어쩌고 가게를 또 해? " 황당한 표정으로 K가 물었다.
"과자가게는 큰 돈이 안 되고 힘들기만 하다. 이건 앉아서 할 수도 있고, 물건 감시할 필요도 없고 이게 더 낫다. " J가 당당하게 말했다.
" 내 퇴직금 믿고 이러는거냐?" J가 집으로 돌아 오자 참을 수 없다는 듯 K가 물었다.
" 무슨 소리 하냐? 피곤한 사람한테.. 내가 아는 윤씨는 가게를 5개나 한다. 요즘 누가 가게 하나로 한 달을 먹고 살아? "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뻔한 J의 대답이 돌아 왔고 시끄러운 악몽의 밤이 되풀이 되었다.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이 가게가 잘 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나갔다.
J는 가게 월세를 내기 어렵다는 걸 하루 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양 쪽 가게 월세 합계가 400만원이 다 되어 가니 점점 힘이 들었다.
게다가 과자가게는 알바를 하루에 2~3명은 둬야 돌아 가니 적자가 점점 심해졌다.
K는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을 버릴 때마다 속이 까맣게 타 들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한이 넘어가는 물건들이 많이 나왔다.
" 이 일을 1년을 하게 될까? 5년을 하게 될까? " 막막하고 답답한 현실이 눈 앞에 펼쳐졌다.
무거운 가슴으로 가게를 보다가 집으로 돌아 와 보니 둘째 아들이 울고 있고, 거실 벽에는 계란 노른자와 흰자가 뒤범벅 되어 었었다.
" 왜 울고 있어? 계란을 깨트렸니? "
K가 깜짝 놀라 아들에게 묻자 아빠가 화가 나서 자신에게 계란을 던졌다고 했다.
알고 보니 여느 때처럼 라면을 끓여 계란을 넣으려던 남편이 화가 나서 아들에게 던진 것이었다.
'이 인간이 이제 완전히 돌았구나, 어떻게 계랸을 아들한테 던질 수가 있지? '
K는 화가 치밀다 못해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짐을 싸들고 아들과 서둘러 친정으로 향했다.
밤 늦게 큰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 엄마, 늦었는데 얼른 와요. 아빠가 잘못했대요. 안 그런데.." 딸이 시무룩하게 전화를 걸어 왔다.
당장 내일이면 아들이 학교를 가야 하니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다는 생각에 K는 아들만 집으로 돌려 보냈다.
'어떻게 해야 하지? ' 기막힌 현실이 K의 목을 조여 왔다.
하얗게 밤을 새우고 K는 친정 부모님과 의논 끝에 오피스텔을 얻었다.
아이들이 어리니 당장 이혼을 하는 것이 선뜻 결정하기 어려웠지만 다시는 같이 살지 않는다는 굳은 결심 하나는 분명했다.
'살 길이 막막하니 일을 해야 해! '
이어서 K는 다시 일할 자리를 알아 보러 다녔다.
퇴직한 지 1년도 안되었으니... 다행히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아 K는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K가 새로운 직장으로 다시 출근하게 된 첫 날 아침.
자신이 일할 자리에 앉아 보니 K는 갑자기 목이 메인다.
'아, 다시 돌아 왔구나! 퇴직을 안 했더라면 이보다는 나았을까?...'
K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 와 놓고는 뒤를 돌아 보는 심정이 들었다.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었는데...'
이제는 엄마 없이 지내는 아이들로 만들어 버렸으니 K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