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앞 의자에 앉아 정면에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이 O O (63) 수술중
전 O O (35) 회복중
송 O O (65) 수술중
한 O O (85) 준비중
아버지의 수술이 시작되었다.
불안한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앞서의 '아버지가 수술실에 들어가셨다'라는 글을 쓰는데 집중했다.
수시로 심장이 쪼글거리는 느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준비중이 '수술중'으로 바뀌고 한 시간 남짓 지나자 드디어 '회복중'으로 바뀌었다.
됐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친정에서 기다리시는 엄마와 딸아이에게, 또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언니와 남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나와 같은 심정으로 이 시간을 지냈으리라..
곧이어 엄마와 딸아이가 왔고 곧 간호사가 아버지의 성함을 호명하며 보호자를 찾는 외침이 들렸다.
'네 , 여기 있습니다!'
간호사는 나에게 수술실 안쪽 불투명한 유리 안쪽으로 들어와 대기하라고 했다.
그 안쪽 문을 들어서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5분쯤 지나자 한쪽 발에 붕대를 감고 하이얀 얼굴을 한 아버지가 침대에 누운 채 나타나셨다.
의식은 있으나, 마취때문인지 말을 하기 어려워 하셨다.
간호사는 수술 이후 밤 11시까지 고개를 절대 들지 않도록 하라고 나에게 신신당부를 하였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심한 두통을 겪게 된다고도 하였다.
엄마는 아버지의 하얀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잡아 보시며 '수고했어요' 하셨다.
곧 나와 아버지는 병동으로 이동했고, 이렇게 수술의 첫 날은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마취가 풀릴 때까지 고개를 들 수 없으니 식사도 옆으로 돌려 해야만 했다.
일반식은 할 수가 없어서 평소에 좋아하시는 소보로 빵을 사드렸는데, A4지 한 장을 볼 옆에 깔고 소보로 빵을 드셨다.
빵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아 준비한 죽을 한 술씩 호호 불어가며 아버지 입에 넣어 드렸다. 많이 시장하셨는지 '맛이 좋다'하시며 여러 번을 잘 드셨다.
카톡으로 남동생은 연신 면회가 가능한지를 묻는다.
동생의 회사는 공기업이었는데 순환근무 제도 때문에 올 해 2월에 속초로 발령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수술일인 오늘이 동생의 근무 마지막 날로 송별회가 있었고, 동생은 모레 속초로 떠나야 했다.
연신 '면회가능여부'를 묻는 동생이 안스럽다.
서른 초반까지도 직업이 운동선수이다 보니, 어려서 초등생일때부터 동생은 집이 아닌 기숙사 단체생활을 하며 자랐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더 애틋하고 절절하다..
계절이 바뀌면 부모님의 옷과, 신발, 장갑을 챙기고 집안의 커튼을 철마다 바꿔 달아 둔다.
이런 효심의 동생이 얼마나 기특한 지, 그러한 동생이 먼 곳으로 간다니 그 마음이 어림 짐작이 간다.
'아버지는 걱정마라. 수시로 사진찍고 통화 시켜 드릴께, 걱정말고 짐 잘 챙겨'
다행히 떠나기 전 면회가 되었고, 동생은 속초로 떠났다.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는 여러 개의 링거줄을 달고 며칠을 지내야 했다.
둘째 날 새벽 화장실을 다녀 오다 심상찮은 분위기로 아버지 병실에서 간호사들이 바닥을 연신 닦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 별 생각 없이 다가가는데,
아버지가 바닥에 피를 철철 흘리며 앉아 계셨다.
'악! 아버지!'
나는 기겁을 하고 달려가 아버지를 잡았다.
간호사는 링거줄이 빠져 링거 관으로 피가 나온 거니 너무 걱정말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핏줄기가 사방으로 튀어서 커튼과 침대,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으셨는지, 옷을 다 갈아 입고 다시 침대에 누워서도 가쁘게 숨을 몰아 쉬셨다.
'피가 100cc'는 빠진 것 같아. 피가 어쩜 그렇게 쎄냐"
아버지가 진정을 하시고 주무실때까지 나는 아버지쪽으로 옆으로 누워 아버지를 한동안 지켜 보았다...
아침이 밝고 곧 아침식사가 나왔다.
아버지는 식사가 맛이 없다 하시지만, 불평을 하시기보다, 미리 챙겨 온 고추장을 밥에 비벼 식사를 하셨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속이 울렁거린다' 하시더니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시는 게 아닌가?!
나는 또 겁이 나서 아버지 이마에 손을 대어 보았다. 식은 땀이 곧 줄줄 흘러 내릴 기세였다.
링거 중 무통주사의 부작용이 그렇단다.
간호사는 임시로 주사가 들어가지 않게 링거줄을 조이고 기다려 보자고 하였다.
아버지는 식사를 무른 채로 누워 심호흡을 하며 안정이 되기를 기다리셨다.
초조한 마음으로 나는 옆에서 서류봉투를 접어 연신 부채질을 해 드렸다.
20분쯤 지났을까?
곧 진정이 되신 아버지는 식사를 이어 하시고 다시 안정이 되셨다.
이렇게 이틀이 지났다.
깔끔하시기로 유명하신 아버지는 도저히 안되시겠는지 머리를 감겨달라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샤워실에 가서 아버지 목에 수건을 두르고 세수와 머리를 감겨드렸다.
머리카락이라곤 주변머리 외에는 남아 있지 않아서 거의 민머리 상태가 되신 아버지의 머리를 처음 감겨 드리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자식을 낳아 기르고 인생의 거대한 시간을 온전히 살아 오신 아버지의 신체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고 있으셨다.
체구는 점점 작아지고, 머리카락도 줄어들고,
밥을 떠서 입에 넣어 드리고, 누운 몸이 굳지 않도록 주물러 드릴 때면 목소리도 애처러운 '아이의 목소리'로 변해 있으시다.
엄마, 아버지는 나에게 언제나 변하지 않는 추상같은 존재였는데, 이렇게 변화하고 계심을 더 가까이에서 목도하고 있으니 저릿저릿한 가슴의 통증이 올라온다.
사람이 나고 자라고 어른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잘 꾸리고, 이렇게 노년이 되어 가는 과정이 한 순간의 파노라마 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나 역시 이제 50 중반을 향해 가고 있으니, 그러한 신체의 변화가 어찌 아버지, 어머니만이겠는가?!
그러니 아버지를 기쁘게, 행복하게 해드려야겠구나.
누운 아버지의 뺨을 어루만져 드리고,
굳은 어깨와 팔을 주물러 드리고,
또 아버지가 앉으신 휠체어를 조심스레 밀면서 나는 아버지와 나와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다행히 회복은 잘 되어가고 있으시다.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