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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벽 May 14. 2024

무색무취

2024.5.13.

무색무취. 지난 4월의 어느 날 문득, 어느 시점부터 지금의 내가 무색 무취한 존재로 느껴졌다. 아무런 색도 없고, 아무런 향취도 없이 공백의 공간으로 존재하는 무언가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 되어야 할지, 어떤 존재로 있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첫걸음조차 내딛지 못했던 또 다른 여름의 어느 날을 떠올렸다.


지금은 어딘지도 모르는 공간을 무한히 걷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지지도 못한 채, 그렇다고 해서 나만의 무언가도 아닌 채,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되어 가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나는 이다지도 나란 존재 자체가 공(空)하다고 느껴지는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줄곧 '생산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 하고,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선택하는 사람의 감정과 욕구에 부합해야 한다. 그리고 원활하게 소비할 수 있도록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공급해야 하기에 최상의 것이기보다는 최선의 것이 되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내가 만든 것에 내가 담기지 않는 것은 비루한 일이다. 나는 어쩌면 나 하나 담지도 못하면서 세상을 담으려고 하지 않았는지 반문해 보기도 한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고, 내가 좋다고 느끼는 대로 표현하고,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것이 우선인 건 아닐까. 세상에 다가가는 건 그다음 문제가 아닐까.


한편, '소비자'로서 나는, SNS에 올라오는 콘텐츠가 재미없다. 연출된 솔직함과 가공된 진실에 질렸다. 액면 그대로가 아닌 것들을 걸러 받아들이는 것이 피곤하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시시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저마다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고 해서 길가의 돌을 하나하나 유심히 보지 않는, 그런 무심함으로 흘려 보게 됐다.


그러다가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대한 나의 원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거나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이 있기에 읽었고, 쓸 수 있는 것이 있기에 썼다. 빈 공간을 내가 쓴 것으로 채우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그저 좋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에 흔들리면서 지난 한 달가량을 보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생각에 흔들리면서 오히려 조금씩이지만 점점 더 나아졌다. 흔들리는 것이 균형을 잃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이 됐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반드시 안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움트기 위해서는 흔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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