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97년 겨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먼지 Feb 29. 2024

여수의 밤

에세이

멀리 가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한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새로운 삶을 사는 상상을 한다. 근래 들어 드는 생각이 아니라 오랜 옛날부터 가졌던 망상이다. 나는 장수에 살았다. 차가 막힐 일이 없어 신호등도 없는 촌 동네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동네 사람이 나가거나 들어오는 일도 드물다.


전교생이 서로의 이름을 다 알고 있을 정도니 얼마나 좁은지 예상이 갈 것이다. 자신에게 역마살(驛馬煞)이 있는 거 같다던 친구는 버티지 못하고 학창 시절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더니 지금은 해외에 있다. 나는 마을을 떠도는 지박령이었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실행한 적은 별로 없다. 시험이 끝나면 한두 번 전주 객사를 가는 게 최선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여행을 가자고 했다. 통금이 심해 외박을 한 적이 손가락에 꼽히는 나였다. 친구와 꾀를 내어 부모님에겐 전주에 간다고 말하고 남원행 버스를 탔다. 


제일 가까운 기차역이 그곳에 있었다. 마음 같아선 부산이고 서울이고 떠나고 싶었지만 우리에겐 돈도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고른 곳이 여수였다. 우리가 갈 수 있었던 최대한 먼 곳이었다. 


2012 세계박람회 때 와본 덕에 거부감은 없었다. 여수는 한적했다. 여수역 바로 옆엔 스카이타워가 있다.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파이프오르간 소리에 이끌려 우리는 맨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커피를 마시다가 전망데크로 나가 유리창 없이 그 모습을 보았다. 내가 갈 수 있었던 가장 멀고, 높은 곳이었다. 


해방감과 스릴이 느껴졌다. 그 후엔 왠지 모를 무력감이 들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참을 수 없었다. 하루만의 일탈로 끝날 여행 뒤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포대기에 싸인 아기가 그 안락함에 만족하듯 다시 장수로 돌아가 드높은 산속에 갇혀 안주하며 살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여수를 놀러 온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나름 어른스럽게 입었어도 그곳에서 난 아직도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일 뿐이었다. 함께 여수에 갔던 친구는 지금 고향에서 노모를 모시며 지낸다. 여전히 유행에 민감하고 맛집 찾길 좋아하지만 전처럼 훌쩍 떠나자는 제의는 하지 않는다. 


얼마 전 여수를 다시 갔다. 전과 다르게 여수의 지리는 쉬웠고 전보다 좁아 보였다. 저녁에 부두 옆 포차에서 술을 마셨다. 젊은 행인들은 밤하늘에 터지는 불꽃을 보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전처럼 통금에 쫓기지도, 지갑 사정을 걱정하지도 않았다. 


어른이란 이런 거구나. 


만족 뒤엔 또 의문이 들었다. 내가 전보다 나아졌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저 전처럼 상황에 휘말려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술에 취한 친구가 억울해서라도 성공하자는 말을 했다. 비틀거리며 여수의 길거리를 서성였다. 전에 보지 못한 한밤중의 여수는 조용했다. 


장수의 숲은 음울한 기운을 머금어 갈 때마다 더 울창해진다. 발버둥 치던 내 기억이 장수의 아름다움을 퇴색시킨다. 여수의 바다는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겁이 난다. 여수에 몰려드는 젊은이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그들에 생기를 머금은 여수 바다는 더욱 빛날 것이다. 언젠가 다시 여수에 가겠지. 더 멀리 가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그때의 나는 또 어떤 두려움에 빠져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