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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완희 Jun 18. 2024

내 머리는 소중하니까요.

아름다운 나눔 실천의 '모발기부'


사진출처. 나무위키 라푼젤 (애니메이션)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디즈니 캐릭터 중 '라푼젤'을 가장 좋아했다. 금발의 긴 생머리와 뽀얀 피부, 커다란 눈을 가진 예쁜 라푼젤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푼젤이 노래를 부르면 긴 머리에서 빛이 나는 놀라운 장면을 봤으니 또 얼마나 신기했을까. 그래서인지 둘째 아이의 로망은 늘 라푼젤처럼 '긴 생머리'였다. 

어릴 때만 할 수 있다는 꼬불꼬불 할머니 파마를 아이에게 해주고 싶어서, 몇 번의 꼬드김이 있었음에도 아이는 넘어오지 않았고, 염색하는 것 또한 좋아하지 않아서 클 때까지(현재) 자연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어떤 머리스타일보다, '긴 생머리'를 좋아하는 둘째 아이에겐 심각한 고민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어렸을 때부터 지독하게 머리카락이 잘 자라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어릴 때 이유식도 정성껏 만들어 먹였고, 나름 신경을 썼는데 왜? 그토록 머리가 잘 자라지 않았던 것일까?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아이는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엄마. 미역을 먹으면 머리가 빨리 자란대요."


 찾아보니, 미역에 피토톡신이라는 것이 있어서 머리카락이 자라는데 도움이 된다고 나와있었다. 평상시에도 미역국을 좋아했지만, 그날부터 둘째 아이는 더욱 미역국을 즐겨 먹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머리카락은 더디게 자랐다. 

태어난 지 100일쯤 머리숱도 많아지고, 더 굵은 머리카락으로 자라라고, 미용실에서 빡빡머리로 한 이후에, 다섯 살이 되어 유치원에 입학하며 끝부분만 살짝 정리를 하였고 그 이후론 한 번도 머리카락을 자른 적이 없는데, 머리숱도 없고 머리카락이 5년 동안 어깨까지만 자랐다고 생각하니..


다섯 살 때, 둘째 아이의 모습


 그때부터 열심히 머리를 길렀다. 그로부터 4년 후, 9살이 되었을 때 아이는 이렇게 변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의 대 낮에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녔고,  긴 머리를 더욱 길게 보이려 머리를 높게 묶어 찰랑거리며 다녔던 둘째였다.

 

 그런데, 그해 겨울 내가 둘째 아이에게 '모발기부'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둘째 아이는 모발기부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껏 어떻게 기른 머린데, 그것도 25cm를 보내야 해서 기본 30cm 정도를 잘라야 한다는 것에 안될 것 같다고,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는 아이에게 아직까지 그 마음이 변함없는지 다시 물었다. 아이는 살짝 고민이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안될 것 같다고 얘기했다. 나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혹시나 생각이 바뀌면 얘기해 달라고 했다.


[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둘째 아이의 일기 ]


제목: 나의 머리카락

나는 12월 4일 토요일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25cm~30cm로 잘랐다. 그래서 그 머리를 소아암 환자들에게 기부를 하려고 한다. 나는 원래 아기 때부터 머리가 천천히 기르는 편이었다. 그래서 100일 때(내가 100일째 되던 날)는 머리를 빡빡이로(대머리)했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는 머리가 거의 턱까지 길이였다. 그래서 유치원에서 딱 한 번만 잘랐고, 그리고 나머지는 앞머리를 엄마께서 잘라주셨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는 머리를 안 자르고, 계속 기르고 있었다. 그랬는데, 엄마가 기부를 하는 것을 추천하셨다. 하지만 나는 머리카락을 소중히 여기고 있어서 고민했다. 그런데 '기부를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소아암 아이들이 가발로 만들어 잘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원래 오늘 나랑 엄마가 같이 우체국에 가서 붙이려고 했는데, 우리 학교에 오늘 확진자가 생겨서 엄마가 아침 일찍 가서 붙였다. 다음에도 아니 앞으로도 다른 주변사람을 도와줄 거다.


2021년 12월 4일 아이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고, 소아암 환자들에게 기부할 소중한 머리카락을 잘랐다.



 3년 후 2024년 5월 10일, 아이가 5학년이 되어 두 번째 모발기부가 이루어졌다. 


 

 아이의 12년 인생 중, 미용실을 '네 번째'로 방문한 흔하지 않은 손님이었다. 미용실 원장님께서는 30분에 걸쳐 머리를 자르고 드라이를 아주 정성껏 해주셨다.


 머리를 자르는 동안, 사각사각 가위소리에 신기해하던 표정을 짓고 새어 나오는 웃음과 미소를 참으며 나를 바라보던 둘째 아이. 그런 둘째 아이를 보며 나는 마음이 울컥해졌다. 100일 된 둘째 아이를 데리고 빡빡머리를 하러 갔었던 그때가 갑자기 떠오르며 코 끝이 살짝 시렸다. 언제 저렇게 컸는지.. 

건강하고 예쁘게 잘 커준 아이가 너무 고마웠다.


 머리를 자르고 우린 함께 우체국으로 가서 '어머나 운동본부'에 택배를 보냈다. 아이는 우체국을 나오며 우체국 복도에 세워져 있던 아주 커다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달라진 모습에 어색해하며 머리를 이리저리 손질했지만, 표정은 굉장히 밝았다. 


"엄마. 짧은 머리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2021년 12월 4일

2024년 5월 10일 


두 번의 모발기부를 통해, 엄마는 나예가 기특하고 대견했어. 힘들고 어려운 친구를 돕는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거든. 하지만 나예로 인해 머리카락보다, '소중한 마음'을 서로 나눴다는 부분이 엄마는 더욱 가치로운 것 같아. 지금처럼 '나눔'에 관심을 가지고, 마음속에 의식하며 우리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자. 





[어. 머. 나 운동]

어린 암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 운동

머리카락 기부 | 대한민국사회공헌재단 | 국제협력개발협회 (kwith.org)


[절차]

기부해 주실 머리 길이는 25cm 이상입니다.

머리카락을 묶는 고무줄 위로 자릅니다.

서류봉투나 작은 상자에 머리카락을 포장합니다.

어머나 운동본부에 머리카락을 등기나 택배로 보내주세요.

홈페이지에서 보내주신 운송장을 신청서에 기입하여 신청서를 작성해 주세요.

홈페이지에서 머리카락 기부증서를 출력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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