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마트직원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다.
무지한 사람이라도 한 군데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보고 들은 것을 통해 지식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내가 마트에서 일한 경우가 그렇다.
이민 와서 개인 비즈니스를 한 다음 아주 늦은 나이에 마트에서 일하게 되었다.
마트에서 일한 지 5년이 되다 보니 제품이나 고객에 얽힌 얘기들도 많다.
한국에서는 금융업에 종사했고 이민 와서는 호텔업을 했었기에 마트 일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굳이 공통점이 있다면 <고객>이라는 말과 <서비스>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는 것.
그렇지만 마트에서 팔려고 내놓는 상품이나 제품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었으니 생소할 수밖에 없다.
처음엔 마트에서 나이 많은 나를 뽑아줄까 조마조마했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내 자존심을 걱정해야 했다.
"당신 대단해"라는 지인의 말은 칭찬인지,
"당신이 왜 여기서 일해?"라는 뜻인지 아리송했다.
사실 마트에 일하기 전까지만 해도 집안 살림을 도와주거나 요리를 해 본 적도 없기에 마트의 식료품들이 생소해 난감했을 뿐이다.
매장입구에 들어서면 과일과 야채가 전시되어 있어 고객들이 마트의 분위기를 한껏 더 느끼게 만든다.
예를 들면 복숭아는 백도, 천도, 도넛 복숭아...
사과는 후지, 앰브로시아, 엔비, 갈라...
배는 한국배, 중국배, 화산배, 원황배...
수박은 일반, 블랙수박, 유미수박..
멜론은 한국참외, 하미멜론, 허니듀, 캔달로프..
고추는 풋고추, 아삭이, 할리피뇨, 청양고추..
고구마는 한국, 서양, 보라색, 얌...
양배추는 일반, 타이완...
파는 쪽파, 한국대파, 중국대파...
버섯은 새송이, 팽이, 해물.. 등등.
사시사철 계절별로 수많은 종류의 야채 과일들이 매장을 들어왔다 나가며 시간의 흐름도 알려준다.
그러기에 신입 직원이 수많은 종류를 색깔이나 크기, 모양등으로 식별하고 종목 코드번호까지 암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캐셔들은 고객이 체크 아웃을 할 때 이 종목을 정확히 식별하고 코드번호를 적용해서 무게를 재고 가격을 계산해야 된다.
종류를 식별하지 못하면 코드번호가 틀려 가격오류가 생기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오류가 발생되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신입직원이 제품을 구분하고 익히는 일은 상당히 긴장되고 도전적일 수밖에.
고객이 볼 때는 마트일이 단순해 보일지 몰라도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듯하다.
내가 마트에서 처음 일을 배울 때 똑같은 시련을 겪었다.
계산이 잘못된 경우 고객은 커스터머 서비스(CS;customer service)에 와서 항의하고 리펀드를 받는다. 고객은 돈과 시간을 버리는 상황이기에 십중팔구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손님에게 욕을 먹고 최종적으로 매니저에게도 주의를 받는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제품지식을 익히고 고객을 응대하면서 커스터머 서비스 업무의 내공이 쌓인다.
과일 야채와 달리 공산품의 경우는 바코드가 등록되고 스캐닝으로 가격 계산되어 애로사항이 많지 않은 편이다.
그 대신 특정제품을 찾아 달라거나 설명해 달라는 요청이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면 쉘브에도 진간장, 국간장, 양조간장. 조선간장으로 표기되어 있다.
남자인 내게 외계언어로 된 것 같은 화장품 판매코너는 또 어떤가!
젊은 가정주부도 스마트 폰 검색보다는 직원의 답변을 듣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볼 때 직원은 전문가다.
살림을 해보지 않은 남자 고객들은 처음부터 다짜고짜 찾아달라는 경우도 많다. 그분들은 보통 다른 것은 관심 없고 집에서 지정받은 주문 미션만 수행하고 재빨리 사라진다.
특히 현지인이 와서 특정 제품을 찾아달라거나, 두 제품의 미묘한 차이를 비교해 달라거나 요리법을 알려 달라고 할 때는 곤욕스럽기도 하다.
영어도 딸리고 요리법도 딸리니 설명이 어렵다.
그들은 벌써 영화나 드라마에 익숙한 K Food나 스낵 때문에 이들 제품을 찾고 맛을 보려는 시도가 진심으로 보인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동서양 구분 없이 사람의 입맛과 소비욕구는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다.
취향과 입맛이 다르므로 브랜드별로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마케팅 전략을 세워도 먹혀들어간다.
이런 제품이 팔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있다. 그래도 누군가는 찾으러 오는 사람이 있으니 신기할 뿐이다.
고객이 체크아웃할 때 보면 내가 매장에서 본 적도 없는 물건, 아니 그들이 볼 때는 보물 같은 것 들을 용케도 잘 찾아오기도 한다.
이렇게 제품을 익히고 , 찾아주고, 계산해 주고, 고객 서비스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무지했던 나도 내공이 쌓여 슬기로운 마트 직원이 되어간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에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