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직장에서 직원 상호 간 호칭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항상 고민스러운 일이다.
다양한 연령층이 일하는 우리 한인 마트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직원 입장에서 나이가 있는 나를 호칭할 때도 신경 쓰일게 뻔하다.
직원들은 나를 어떻게 부를까?
"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동요 같은 답변이 정답이다.
우리 마트 직원은 연령층이 다양하다.
우선 시니어 세대나 베이비붐 세대(1963년 이전)의 직원이 몇 명 된다.
지금은 100세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특별할 건 없다.
물론 X 세대(1964~1979년)와
M세대(1980~1994년)가 직원의 대부분을 이룬다.
Z 세대(1995~2005년)는 대학생이나 아르바이트 차원의 취업준비생으로 마트의 귀염둥이들이다.
마트 내 좁은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업무적으로 서로 교류할 일이 많다.
관리직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 직원은 시급을 받지만, 회사는 전문가 수준으로 일하기를 원한다.
급여대비 일의 강도가 워낙 높다 보니, 마트는 커리어 관리상 더 좋은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발판 역할이 되기도 한다.
적당한 기회가 되면 철새처럼 떠난다.
그나마 워킹 할러데이(working holiday)나 캐나다의 고용허가서(LMIA)로 일하는 직원이 안정적인 인력구조에 기여하고 있는 편이다.
얼굴과 이름을 익힐만하면 퇴직을 할 정도니 이직률이 높다.
이름을 잘 모르고, 세대차가 크니 호칭에도 애로사항이 많음은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X세대 직원들은 자기 엄마또래의 여직원에게 이모라 부르기도 할 정도이다.
직원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은 대개 <선생님>이나 <선배님>이다.
MZ세대 직원은 선생님, X세대 직원은 선배님이라 부른다.
그 대신 내가 다른 직원을 부를 땐 보통 **씨 또는 **님이라고 부른다.
오후 4시 이후 저녁시간이 되어가면 마트는 관리직 포함 대부분이 퇴근하고 몇 명만이 근무하게 된다.
이때 고객관리팀(커스터머 서비스)에서 근무하는 내 호칭은 더 늘어난다.
손님들은 사장님, 점장님, 매니저님이라고 편리한 대로 불러준다.
회사는 승진에 인색한 반면, 손님들이 마구 승진시켜 주는 기분이다.
하지만 아저씨로 불러주며 제품을 찾아달라는 손님들도 있다. 나도 답변할 때는 아줌마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오다 참는다.
처음엔 아저씨라는 호칭이 유쾌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개의치 않는다. 그나마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소크라테스가 나를 두고 한 말 같다.
" 너 자신을 알라!
Know yourself!
Connais-toi toi-même!"
세상 살아가면서 나를 알고 겸손해지면 마음이 편해진다.
현지 외국인이 내게 뭔가를 부탁할 때는 그냥 매니저나 보스(boss)라고 부른다.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호칭은 뭐니 뭐니 해도 동료 직원이 붙여준 <밤의 황제>이다.
저녁부터 영업 마감 때까지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일해서 좋겠다며 익살스럽게 붙여준 별명이다.
사실 직원이나 고객의 요청을 원스톱(One Stop) 방식으로 어떻게든 마무리해 주어야 하는 것이 밤의 황제의 미션이다.
한국의 회사에서도 호칭 방식이 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영진이나 임직원은 영어 이름이나 영문명의 이니셜(앞글자), 한글 이름에 '***님'을 붙여 상호 수평적 호칭을 사용한다고 한다.
일반 직원도 PM(Professional Manager)으로 통일해 프로 또는 매니저로 부른다고 한다.
그런 호칭제도가 잘 정착이 되었는지 궁금하지만, 수평적 호칭에서 조직원의 의견 수렴이 더 잘 되고 소통도 원활할 것 같다.
오히려 외국의 한인 마트가 호칭이나 의식의 변화에 둔감한 거 같다.
경영진은 이민오기 전 익숙했던 조직 문화를 지금도 한국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민자에게 한국을 떠나는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고, 그때의 기억이 한국적이라 착각하는 것은 안타까운 알이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영업마감 1,2분 전에 마트의 셔터를 내리려는 찰나.
낯익은 여자손님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잠깐만요. 한 가지만 사면 돼요, 매니저님!"
"매니저 말고. 밤의 황제...."
"아.. 네... 밤의 황제님!"
그날 이후 오늘까지 난 밤의 황제 자리를 굳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