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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멍구 Apr 05. 2017

어떤 카메라를 사야할까?

사진의 '공학'이 아닌 '미학'에 관한 이야기

패기좋게 '사진독학스터디'라는 브런치 매거진을 만들어 놓곤 글을 쉬는 4개월 동안에도, '내 월급 내가 주는 사진작가 지망생' 생활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DSRL 사진강의>라는 책과 <사진학 강의>라는 사진학과의 수업용 원론책을 읽었고, 4개의 사진전을 다녀오고 3권의 사진집을 보았다. 사진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사진은 빛을 담는 예술'이라는 말을 새삼 깨닫게 되었고, 눈 앞의 광경을 빛으로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 간 찍은 사진은 6천장 쯤 되었다. 사진 촬영까지 직접하는 '취재 기자'를 직업으로 가진 나는 차장님께 '사진 제일 잘 찍는 사람'이라는 칭찬도 들었다. 그렇지만 사진으로 자신을 포지셔닝을 하려면 '사진을 취미로 가진 사람들이나 사진 전문가 잘 찍는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들었다. 사진으로 누군가에게 인정 받는 건 쉬운 게 아녔다.


그래도 그 4개월의 시간 동안 생긴 '가장 큰 성과'라고 손꼽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함께 사진 스터디를 하고 있는 친구들, 문지와 홍학에게도 각자의 카메라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첫 카메라, 어떻게 골라야 할까?



나는 대학 2학년,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 생애 첫 카메라를 사기로 마음 먹었다.
학기중 짬짬이 알바를 하며 모은 돈으로 사는 카메라였기 때문에, 비싼 가격대의 카메라는 고려대상에도 포함되지 못하였지만, 또 짬짬이 모은 돈이라는 이유로 한 없이 신중해졌다.  


사람들이 올린 카메라 리뷰를 보고 카메라를 선택하자니, 왠지 조금 더 최신, 조금 더 기능이 많은 카메라였으면 했다. 기왕이면 화소도 높았으면 좋겠고, 4K 동영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왕이면 4K 영상 기능도 있었으면 좋겠다. 선예도라는 단어는 태어나 처음 들어보지만, 선예도도 좋은 카메라를 고르고 싶었다!


그러며 나는 달리기 예찬론자였던 한 오빠에게 "나도 달리기를 좋아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해?"하고 물었을 때를 떠올렸다. 달리기를 너무 좋아해 매일 밤 동네를 달리며 기록을 재고, 분기 별로 목표를 정해 마라톤에 참가하곤 하던 오빠였다. 어떤 취미를 온 힘과 열정을 다해 좋아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어떻게하면 달리기를 그렇게나 좋아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그 오빠는 고민도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일단 돈을 쓰고 좋은 장비를 사. 그럼 좋아져."


나는 재미를 붙이려면 '비싼 장비를 쓰라'는 조언이 영 머리에 입력되지 않아, 시간이 지난 후에 같은 질문을 또 했다. 물론 그 때의 대답도 똑같았다. "일단 장비에 돈을 투자해"


일단 장비가 받쳐줘야 그 취미의 매력을 최대치로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의아하면서도 탁월한 대답이었던 거다.




친구들도 나와 같은 고민으로

골머리를 한참 앓으며 카메라를 구입했다.

홍학은 소니 A6000,

문지는 후지 X70 이었다.


홍학은 가벼운 미러리스 카메라 중,
사진을 전공한 지인이 추천한 '가격과 무게 대비 좋은 스펙을 자랑하는 카메라'를 골랐고,

문지는 색감이 예쁘기로 유명한 후지 카메라 중,
렌즈교체는 안되지만 조리개 값 F2.8의 밝은 값을 가지고 있는 귀여운 카메라를 골랐다.




우리가 모두 각자의 카메라를 가지게 되었을 때,  

우리는 주말에 경리단길에서 만나 '첫 출사 모임'을 가졌다.


첫 출사

  

그러나 카메라만 생기면 그럴 듯한 사진을 찍고, 고르고, 엮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는 이날,

다소 시무룩해졌는지도 모른다.


문지에게 며칠 동안 새 카메라를 써본 후 어떠냐고 물었을 때, 문지가 처음 했던 말은

"근데 왜 나는 핸드폰 카메라로 찍는 게 나은 것 같지...?" 였던 것이다.



경리단길 출사를 마치고, 조리개와 셔터스피드, ISO 조작법을 알려주었다.

  

카메라를 고를 때에 각자 내세우게 되는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은 여행할 때 함께하기 쉬운 가벼운 카메라일 수도 있고,

색감을 예쁘게 담아주는 카메라가 될 수도 있고,

다양한 화각,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볼 수 있도록 기능이 많은 카메라일 수도 있다.


또한 그 기준은 내가 첫 번째 카메라를 골랐을 때 처럼, 사진 깨나 찍는 사람들이 들으면 경악할만한 기준일수도 있다.

내가 카메라를 골랐던 기준은, 카메라 디자인이 예쁠 것. (카메라가 예뻐야 자주 가지고 다니면서 찍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기준으로 카메라를 골라 첫 카메라를 맞이했지만,

여행이며 일상이며 열심히 그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스물 둘의 내가 본 세상을 열심히 담고 담았다. 그 사진들은 카알못이 저지르는 시행착오이기도 했지만 나의 습작이기도, 일기이기도 했다.


▲ 카메라에 대해서는 1도 모를 적 찍었던 사진들




지금 생각하기로는

카메라를 사는 것은 사진을 취미로 갖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너무 중요한 일이지만

어떤 카메라를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Charles H. Traub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카메라를 최고의 카메라라고 여기는 마음이다.

나도 종종 내가 찍은 사진이 예쁘지 않은 것을 두고 카메라 탓을 하고, 다른 카메라를 사볼까 기웃대기도 하지만
그렇게 장비를 추가해볼 수록 사진이란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3차원의 공간, 계속해서 변화할 뿐 아니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한대로 확장되는 세상 속에서,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보이는 작은 직사각형 공간안에 세상을 담아낸다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은 시선이어야 한다는 것을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하며 깨달았다. 미술가가 캔버스 위 텅빈 공간에 작가의 의도대로 세상을 채워나가야 한다면, 카메라를 쥔 사람은 시간과 공간으로 무한정 확장되는 장면 중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잘 잘라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 말고는 근본적으로 같다.


 그러니 잘 찍은 사진을 보며 "카메라 뭐지?" 하고 궁금해하기 보다는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찍었지?"를 먼저 궁금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카메라를 고를 때는


"어떤 카메라가 더 좋지?" 보다는

"나는 어떤 사진을 찍고 싶지?"를 먼저 생각하고

역으로 카메라를 골라나가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 된다.



△ 워너비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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