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네 집> 전몽각 작가 사진집
어제 책 사러갔다가 같이 샀어요. 그제 생일이었으니까.
막 출근한 시간, K 선배는 얇은 종이 포장지 중간에 엄지척 스티커를 붙인 선물을 내 책상에 얹어주었다. 책 선물같아 기분좋게 포장지를 벗기니 손바닥만한 사진집이 나왔다. 아마추어 사진가가 가족의 모습을 꾸준히 찍어 남긴 <윤미네 집>, 전몽각 작가의 사진집이었다.
생각지 못한 선배의 선물이라 놀랐다. 그런데 그 선물이 내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하고 열망하는 '사진'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에 더 감동을 받았다. 그 사진집을 열어본 이후엔, 하마터면 선배에게 보내는 문자에 '사랑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을 뻔 했다. 어쩜 사진집을 여는 설명글부터 구절구절 아름다웠던 거다.
1964년 12월말, 출산 사흘 뒤 병원에서 막 돌아와 이불을 친친 감고 누운 산모와 갓난애가 카메라에 잡혔다. 신비스러운 혈육을 처음 대한 애 아빠는 그날로 아이의 모든 것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이십육 년 대장정에 오른다. 탄생에서 결혼까지, 수시로 들이대는 카메라 앞에 윤미의 나날이 시시콜콜 발가 벗겨진다.
'윤미네'는 그렇게 고유명사였다가 보통명사가 되었다. 전윤미라는 한 인간의 성장과정을 뼈대로 한 가족사가 그 시대를 함께 살아 온 한국사회의 평균 가정 일상사로 오버랩되었다.
회사 옆자리 사람들이 다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나는 그자리에서 책을 천천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진이 있는 페이지로 넘어가기도 전, 책을 여는 앞머리 설명글만으로 울컥 눈물이 찔금거렸다. 사진집 앞머리엔 으레 작가의 삶이나 작품 철학이 나올 것이었으나, 이 책의 앞머리에는 사진을 좋아하였던 이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였을 이야기가 나왔다. 1960년대에 사진이란 집 한 채에 비할만큼 비싼 취미였던데다가, 이 아버지는 아이가 아파 병원으로 달려갈 때에도 카메라를 들이댔으니 엄마는 얼마나 어처구니 없었을 것이냐는 것이었다. 이 아버지는 심지어 윤미 손을 잡고 들어갈 결혼식에서도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고자 한다.
"윤미를 데리고 들어갈 때도 광각렌즈를 끼운 카메라를 한 손에 들고 노파인딩으로 찍으면 될 것 같았다. 많은 손님들 앞에서 그러지 말라고 아내가 기어이 반대를 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강운구 사우에게 부탁을 했다"
이 구절을 읽고 나는 웃음이 터졌다. 머릿말에서는 전몽각 작가가 얼마나 오래간 하나의 주제로 열정을 가지고 있었는지가 읽혔다. 그러니 이 사진집이 숭고하게도 느껴졌다.
취업한지 막 1년이 되던 때, 나는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뭘 하려고 해도 흥이 나지를 않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잠자기만 바빴다. 나는 '취미를 직업에 빼앗겼기 때문이려나' '나는 원래 사회생활엔 재능이 없나' 조악한 추측들로 원인을 가늠해보곤 했지만 영 빠져나올 방법은 없었다.
겨울이 오자 급기야 나는 눈물병에 걸렸다. 출근하는 길에 눈물이 나고, 퇴근하는 길에도 눈물이 나고 옆자리 과장님이 건넨 "얼굴이 안 좋아보여요"말에도 눈물이 터져 화장실에서 울고 돌아와야 했다. 우울증 자가진단 테스트를 해보았을 땐 '극심한 우울증' 진단도 받았다. 너 이렇게 살면 안된다고 온 몸이 경고음을 삐뽀삐뽀 울리니 도망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빠진 것이 사진이었다.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원인은 수 만 가지가 있었겠지만, 그렇게 도망친 '사진이라는 취미'가 참 마음에 들긴 하다. 누군가가 평생을 열정을 갖고 열망하였던 것이기도 하고, 공학적이고도 미학적이고도 감성적인 것,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것, 직업으로도 취미로도 손색 없는 것, 아무리 공부하고 연습하고 파도 파도 끝이 없는 것! 그리고 사진은 세상을 반영하면서도 개인의 사유나 삶을 드러내는, 문학적인 예술이라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렇게 푹 빠져있는 것에 직장 선배가 사진집이라는 선물로 사진의 매력을 더 열어보여주며 내가 열망하는 것에 응원을 전하는 것 같으니 더 감동을 받았을 따름이었다.
(전몽각 사진집을 읽더니 문체가 90년대 문체가 되어버렸소)
나는 요즘 필름카메라 취미 생활에 한창이다.
기념이 아닌 기억하기 위해, 사진으로 사랑하는 것들을 기록하는 것은 추억을 조금씩 쌓아가는 길이다. 1일, 1년, 10년, 20년, 30년의 시간을 입고 많은 것을 잃어버린 후, 빈손이라 여기며 손을 펴보았을 때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선물을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밥을 먹듯, 생활하듯 기록하는 것은 성실히 사랑하는 삶의 방법이며, 매 순간 사라지는 생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는 삶의 방식이다.
-볼드저널 <윤미네 집> 기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