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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멍구 Oct 03. 2022

내가 가장 두려워하고 기다려온 출산과 육아

00. 출산과 육아가 두려운 사람을 위한 이야기


  내가 얼마나 출산과 육아를 두려워했는지 이야기하는 한 가지 이야기를 펼쳐보려고 한다. 그 시작은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카톡방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휴가를 썼고, 모두가 출근한 와중 나만 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나는 곧 카톡방 화면을 보며 숨을 몰아쉬고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너도 꼭 아기를 낳게 되기를 저주한다’고. 내가 말도 안 되는 폭언을 뱉은 뒤였다.

  당시 나의 뇌는 통제 불능 상태였고, 내 시야는 눈물로 흐려져있으니, 내가 무슨 말을 쓰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폭언을 퍼붓기 전 기억나는 장면은 내가 '임신도 하기 전에 산후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라고, 제발 그만해달라고 사정하는 장면이다.





  결혼 2년 차를 막 넘긴 때였다. 분주한 결혼 준비로 회사의 매너리즘을 묻던 시기가 지나고, 집안 살림을 채워 넣으며 신혼 라이프를 즐기던 시기도 지났다. 회사를 다니는 내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 건 여전했고, 곧 당연한 수순이 찾아왔다. 슬슬 아기를 낳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나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던 거다.


  누구도 강요한 적 없으나, 나이가 되면 아기를 낳는다는 결과는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잠을 자면 안 졸린 것만큼이나 당연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내가 엄마가 된다면’이라는 전제로 나름의 육아관을 정립했던 나였다. 그중에서도 어떤 육아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절대 까먹지 않도록 자주 반복해 떠올렸다. '절대로 놀림받지 않는 이름을 붙여줄 거야.' 놀림받을 성씨라면 절대로 결혼도 해선 안된다고 어린이였던 나는 강력히 기억을 새겼다.


  중학생 때는 '우리 부모에게서 채택할 육아 방법과 채택하지 않을 육아 방법'을 토론의 주제로 삼기도 했다. 예를 들어 친구의 엄마가 위생을 끔찍이 신경 쓰며 깨끗한 것만 만지고 먹게 했던 육아 방식은 채택하지 않을 방식이었다. 친구가 잔병치레가 잦았던 건 어려서부터 더러운 것에 노출되지 못해서 일지도 몰랐다. 반면 나의 엄마가 집안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굳이 자식들에게 밝히지 않은 건 채택하고 싶은 육아 방식이었다. 해가 변할수록 집이 좁아졌음에도, 나 자신이 가난해지고 있단 사실을 몰랐다. 집안 형편 때문에 위축되거나 상처 입은 적은 없었고, 그 덕분에 뭐든 시작할 용기가 있었다.


  아기를 낳는 것이 당연한 미래가 아닌 선택의 영역일 수 있다는 사실은 서른이 넘어서야 알았다. 친구들 사이에선 임신하면 얼마나 많은 것을 잃는지를 주제로 한 토론이 이어졌다. 보통 여럿의 대화엔 주로 이야기를 하는 스피커(speaker)가 있고, 리스너(listener)가 있게 마련인데 ‘임신’ 이야기만 나오면 모든 친구들이 스피커로 변했다. 나는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말하면, 출산할 때 회음부를 칼로 찢는다는 사실을 아는지, 아기는 두 시간마다 깬단 사실을 아는지 재차 확인했다.

  그러니 서른이 넘어갈수록 깨달았다. 몇몇 친구들은 결혼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더 많은 친구들은 영영 아기를 낳지 않을 수 있다고. 같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비슷한 미래를 함께 하는 건 아녔다. 오히려 인생을 통틀어 아기를 안 낳는 미래를 생각해본 적 없던 사람은 나뿐이었다.


  서른셋 지금. 나의 친구 중 팔 할은 '결혼은 할 수 있겠지만 아기는 낳지 않겠다'는 단단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친구는 잘못이 없었다. 그저 친구는 단체 카톡방에서 대다수가 생각하는 아기를 낳아서는 안 되는 이유를 조금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었을 뿐. 그러나 출산은 힘들고, 신생아 육아는 지옥이며, 주말은 봉사활동 시간이 되는 건 사실이겠지만, 그게 그렇게 부정적인 일은 아닐 거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그래도 아기는 너무 사랑스럽지 않을까' 했다가, '시부모님이랑 친정부모님이 조금 도와주시면 괜찮지 않을까' 했다가, '그래. 젊을 때 우리 많이 놀아놓자 우리 어디 가볼까' 말을 돌리려 했다가, '이제 제발 그만 이야기해달라'며 사정하게 됐다. 그럼에도 여자 인생에 아기를 낳는 게 왜 최악인지 이어 말하는 걸 멈추지 않자,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폭언을 퍼부었다. 너도 꼭 아기를 낳기를 저주한다고. 맥락상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다. ‘너도’라고 말하기엔 내가 아기가 있거나 곧 아기를 가지려는 계획을 한 것도 아녔고, 나는 아기를 낳는 게 저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니. 하지만 친구의 말에서 나의 불행을 예견한 나는 소금 뿌린 생선처럼 꿈틀대다 이상한 방향으로 튀어 올라 버렸다.


  "야 너 울어?"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전화를 했던 단체 카톡방의 또 다른 친구는 나를 아주 이상하게 여겼다. 내가 당장 임신을 한 건 아닌지 넌지시 떠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임신을 한 건 그로부터 2년 뒤의 일이었다.






<출산과 육아가 두려운 사람을 위한 이야기>

누구보다 아기 낳는 걸 두려워했던 한 사람의 엄살도 미화도 없는 경험담을 담아 차근차근 적어보려고 합니다. 아기를 낳고는 싶지만 막연한 두려움은 떨치지 못한 분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이야기해본달까요.


마치 우울한 글이   같지만 생각보다 가벼운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6개월 아기를 키우고 있는 지금은 많은 친구들이 ‘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말을 하기도 하니까요.



[앞으로 이야기할 것]

1. 나라고 생각했던 정체성을 잃게 될 두려움

2. 경제적 자립을 잃을, 경력 단절의 두려움

3. 겪어본 적 없던 통증을 예정된 시간에 겪게 될 두려움

4. 경제적 부담의 두려움 

5. 육아로 인한 남편과의 불화

6. 건강과 젊음을 잃을지 모른단 두려움

7. 예전처럼 재밌게 놀 수 없다는 두려움

8. 번외 - 남편의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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