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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림솔훈 Jun 21. 2024

Wherever you are

취향에 대하여 | 영훈


안녕하세요. 유림입니다!

오늘은 <취향에 대하여> 에세이 시리즈의 마지막, 영훈의 글로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장례식을 떠올려본 적 있으신가요? 나의 마지막을 함께하러 온 사람들과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과 노래를 정할 수 있다면 어떤 노래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너무 울지 말고 다정히, 그리고 아주 늦게 절 보러 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노래는 음, 제가 좋아했던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로 쭉 틀어놓고 싶네요. ㅎㅎ 그래도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은 곡은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 일 것 같습니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이별을 떠올리며, 남은 사람들에게 영훈이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영훈이 담담히 전해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을 노래와 함께 들어보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시작할게요.


º 주제: 취향에 대하여 자유롭게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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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ver you are



노래 듣기



주윤하 - Jazz Painters 앨범


마지막 트랙, <그대 어디에 있더라도>

오늘은 노래를 들으며 글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예전에 어떤 장의사가 항상 어린 왕자 책을 품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정리하는 일과 어린 왕자를 들고 다니기를 반복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러던 그를 시간이 한참 지나 우연히 전혀 다른 장소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그는 더 이상 시체를 정리하지도 어린 왕자를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 사람의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하는 기분은 꽤나 선명해서 나는 그날의 다른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내가 죽을 때는 어떤 식으로 장례를 치르게 될 지도 알 수 없지만 만약 내가 죽고, 죽은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노래를 언제나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고 다닌다.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선선한 가을 공기에 낙엽이 굴러다니는 어느 길을 떠올렸다. 그곳엔 높은 은행나무가 가득하고 벤치가 하나 놓여있고 거기엔 어떤 노인이 앉아있다.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서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 노인을 오래 보다 보면 들려오는 노래가 있다. 고요히 가라앉아야지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 그것은 노인의 허밍이다. 노인의 시간이고 노인이 통과했던 모든 것들이다. 연필깎이. 하모니카 케이스. 물방울과 깃털의 형형한 내려앉음. 실패한 소설. 끝내 안에 남아 있도록 지켜낸 말 같은 것들. 노인은 모든 것을 지나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안식을 마주하고 입을 부드럽게 다문 채 넌지시 콧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노인을 소년의 시절로 데려간다. 소년은 씩씩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소년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노인이 된 소년을 그려보았다. 그 노인은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노인의 얼굴은 소년 때처럼 맑아진다. 그것은 다시 소년의 얼굴. 그리고 소년이 사랑했던 모든 이들의 얼굴을 담고 있다.


삶의 끝에서 이 노래로 응원과 평온과 안녕을 건네고 싶은 이들이 있다. 그들은 보고 있자면 자꾸만 그들의 어린 얼굴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들이다. 얼굴에는 지난 시간들이 깃들어 있다고 길을 걷다 누군가 써놓은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오늘은 더 이상 잘 기억나지 않는 그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의 얼굴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나는 그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내가 아는 건 그의 조금 얕게 패인 볼에는 영안실이 있고, 검은 눈에는 행성 B612가 있다는 것뿐이다. 내가 아는 그와 내가 모르는 그를 지나 그도 언젠가 오랜 이별을 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의 플레이리스트에 조용히 이 노래를 넣어두고 싶다.


from. @ ohnlysol

2022. 04. 25

Wherever you are

영훈 쓰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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