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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람 Feb 21. 2024

Années folles! 광란의 시대 파리

마르지엘라의 수장 존 갈리아노가 영감을 받은 1920-30년대 밤의 파리

Vogue 메종 마르지엘라

이번 2024 메종 마르지엘라 아티즈널 컬렉션에 새로운 장르를 선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장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관절 인형의 얼굴 재현한 듯한 모델들의 메이크업과 섬뜩하고도 극단적인 코르셋, 속옷과 에로틱한 레이스 드레스와 뒤틀린 듯한 코트까지, 의상과 메이크업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파격적인 시도가 엿보였다. 거기에 더불어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아래 1920-30년대 파리의 술집을 재현해 낸 듯한 무대와 그 위를 위태롭게 걷는 모델의 모습이 더 해졌을 땐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하기도 했다.  


‘천재 악동의 귀한 ‘이라며 다시 패션계의 찬사를 받은 존 갈리아노. 한편 그의 이번 컬렉션 영감의 원천에는 ‘파리의 눈‘이라 불리던 사진작가 브라사이(Brassaï)의 《밤의 파리》가 있었다.


《paris de nuit》Brassaï
밤은 우리의 고정관념에 그려진 낮 시간으로부터 자유를 준다.
_Brassaï

1933년 브라사이가 펴낸  《밤의 파리》는  1920-30년대, 밝은 낯 파리의  화려함 속 가려진 어두운 밤의 파리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집이다. 그는 ‘밤’이라는 시간대를 통해 파리의 신비로운 분위기 속 황폐한 도시의 민낯과 하류층의 애환을 속속들이 드러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가로 떠올랐다.


‘Les Années folles’ 광란의 시대의 서막


《paris de nuit》Brassaï

브라사이가 담았던 1920-30년대는 프랑스는 문화 예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아주 의의 있는 시대였다. 당시 프랑스는 1918년 세계 제1차 대전 이후 이제 막 자유를 되찾았었던 시기이자 과거의 전쟁의 참호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기였다. 프랑스는 19세기 요새였던 티에리 벽을 철거했고 도시는 아르데코 건축으로 변했다. 또 거리에는 자동차가 활보하기 시작했으며, 가전제품은 일상생활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들은 낡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특히 예술 쪽에서 변화의 의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들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겠다는 의지로  과거의 전통 양식을 과감히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에 강하게 사로잡혀있었다. 그게 설령 도덕이나 윤리적 양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초현실적이거나 당시로선 예술이라 인정할 수 없을 만큼 천박하고 대중적인 적인 작품일지라도 말이다. 이렇듯 예술가들의 고양된 에너지 덕분이었을까?  파리에는 피카소, 달리, 헤밍웨이, 제조이스, 베이커 등 전 세계 많은 작가들과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프랑스는 전래 없는 예술적 황금기를 맞이했다.


반면에, 젊은이들은 전쟁에 대한 공포를 즐거움을 통해 승화시키고 싶어 했다.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문란하다 싶을 정도로 성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참고로 당시에는 재즈 역시 성행을 하고 있었고 미국에서는 금주령이 내려진 상황이었던 터라 많은 미국인들이 파리로 오기도 했다. 이렇게 20년대 파리에는 유흥문화가 주류를 이루게 됐고, 파리에는  ’Les Années folles‘ 광란의 시대가 도래했다.


《paris de nuit》Brassaï

파리가 이렇듯 화려하기만 했다면 브라사이의 사진집이 그렇게까지 각광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면엔 ‘밤’처럼 짙은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진실들이 존재했다.

먼저 프랑스는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여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허물어진 티에리의 벽대신 세워진 수많은 7층짜리 주택건물들은 모두 저임금 블루칼라 노동자들에 의해 지어진 건물들이었다. 가난한 시민들과 알제리 출신의 이민자들은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며 허덕이고 있었고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을 수 없었다. 유흥문화 역시 상류층이 주로 즐기던 문화였으며 그들의 즐거움과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 하류층 여성들은 매춘에 몸을 담아야 했다. 브라사이는 이러한 여성들을 주목하며 아무도 모르는 ‘밤’에 일어난 일을 밝은 ‘대낮’으로 끌고 와 조명시켰다. 프랑스는 정말 말 그대로 미쳐있었고 사람들 도덕과 윤리는 마비되었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극우와 극좌의 세력이 격렬한 갈등을 빚었다. 1924년에는 국회 선거에서 극우 세력이 큰 승리를 거두며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더욱 증폭되었는데 특히 식민지 출신 이민자들은 정치적인 억압을 경험해야 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소외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배타되었으며 일상적인 도시 골목에서 차별을 겪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도시 전반에는 정치적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으며 시민들의 불안과 불확실성은 점점 거대해져 사회적 갈등을 촉발하게 했다.


광란의 시대에 종말


《paris de nuit》Brassaï

1931년 세계 경제 대공황이 파리에 도달했다. 1921년부터 1931년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9년이라는 시간만의 황금기이자 광란의 시대가 끝이 났다. 인구는 1921년 최고치를 이루었던 280만 명에서 10만 명 가까이 가까이 감소했고 실업률을 더욱 증폭되었다.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활보하고 있었고 많은 상점과 레스토랑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중 파리에만 200여 개 가까이 되던 유흥업소들의 대부분이 문을 닫게 되면서 즐거움을 즐길 공간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한편, 예술과 문학의 분위기 역시 긴장과 절망으로 어두워졌지만, 다시 한번 겪게 된 고통과 상실감은 또 다른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대표작으로는

파블로 피카소의 소녀를 통해 당시의 고통과 갈등을 표현한 1938년도 작품  《어린 소녀》와 대공황 동안 파리의 풍경을 현실적으로 묘사한 위트릴로의 1933년도 작품 《몽마르트르의 풍경》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브라사이의 《밤의 파리》는 대공황이 퍼진 시점에 출판되어 유명세와 함께 영국의 권위 있는 사진집이자 문화상인 에머슨상을 거머쥘 수 있었다.


《Montmartre Landscape》Maurice Utrillo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도 불구하고, 파리는 강한 인내와 저항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예술가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창의성을 발휘하여 희망을 전하는 작품을 만들었고 사람들은 힘든 시간을 공유하며 연대했다. 또한, 지역 정부와 시민들은 경제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과 협력을 강화하여 일자리 창출과 경제의 안정을 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다양한 노력을 통해 파리는 대공황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역사에서 패션으로


역사와 배경을 알고 보니 이번 존 갈리아너의 메종 마르지엘라의 아티즈널 컬렉션은 완전히 달리 보이지 않는가. 이번 컬렉션 의상은 오로지 ‘새로움’을 목적으로 한 에로틱 하면서도 괴기스러운 의상이 아니다. 이는 전통적인 ‘아름다움’의 기준과 편견을 공포스러울 만큼 극단적으로 과장해 그 이면을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마치 브라사이가 자신의 사진집  《밤의 파리》를 통해 화려함 속에 가려진 그 시절 파리의 본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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