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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아 Jun 28. 2024

단종의 향기

단종의 향기


아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라졌다. 

참새 방앗간처럼 들르던 올리브영에서 자주 향을 맡아보던 로션의 자리가 비어있다. 애정하던 것이 사라지는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애써 마음을 다잡고 밖으로 나온다.




나는 마음에 드는 물건에게 애정을 주는 순간부터 곧 이른 시간내에 단종되어 내 손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만드는 외로운 취향(?)을 가지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가 나를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바라보기라도 하는 건지 관심을 가지는 순간부터 카운트다운을 세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불길한 예감을 비껴가는 일 없이 높은 확률로 그 물건은 결국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곤 한다.

내 운명의 상대는 항상 시한부의 삶은 살고 있었고, 나는 끝을 알면서도 뛰어드는 한 마리의 불나방이 되어 처절하게 헤어지는 삼류신파극을 여러 편 썼다. 




그저 나의 사업성과 거리가 먼 취향 때문이겠거니 받아들이고 있는데 어느 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짙은 단종의 향기를 맡게 되었다. 

그 향기를 쫓아 나의 단종 레이다가 걸음을 멈춘 곳은 올해 봄꽃 나무들 앞이었다.










나는 사계절 중 긴 겨울을 녹이고 넘치는 생명의 힘을 보여주는 봄을 사랑한다.

늘 내가 느끼는 봄은 집 근처 역 주변에 있는 산수유나무에 섬세한 노란 꽃이 등장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목련꽃이 큼직한 봉우리를 뽐내고 개나리가 하나둘씩 거리에 노란 물감을 풀어놓는다. 엄마가 사랑하는 매화꽃이 그다음에 피고, 사뿐히 지르밟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진달래가 동산을 가득 채운다. 개나리가 푸른 잎사귀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할 즈음 만인의 연인인 벚꽃이 핀다. 벚꽃잎이 바닥을 적시면 엄마가 차애하는 복숭아꽃이, 그리고 폭신한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겹벚꽃이 화려하게 등장한다. 




매년 이런 순서를 철저하게 지키며 봄을 장식했던 꽃들이 올해에는 무언가에 쫓기듯 한 번에 피는 기이한 등장을 했다.

꽃놀이 한 번에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복숭아꽃을 다 같이 볼 수 있는 점은 풍성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지만 사진첩에 꽃 사진을 담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파트 벤치에서 매년 피는 등나무꽃은 늘 5월에 보랏빛 얼굴을 내밀어 줬었는데 4월 중후반부터 아주 이른 방문을 했다. 주변 사람들과도 이런 현상을 더 이상 아름답게만 바라볼 수 없다며 심상치 않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이른 꽃향기들이 평균 기온이 오르며 나타나는 단종의 향기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온난화로 꽃이 일찍 피고 지게 되면 그와 함께하는 곤충들의 활동 시기도 변화하여 생태계 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다. 

특히 꽃가루를 암술로 옮겨 묻히는 지구의 중요한 일꾼인 꿀벌의 수분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거대한 단종으로 가는 과정 중임을 확실하게 느낀 2023년의 봄이다.





봄이 짧음에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순서에 맞게 변화하는 과정을 감상할 수 있는 차근한 그 속도에 있다. 

오늘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에는 어떤 꽃의 봉우리가 환한 표정을 보여줄까 하루 하루 기대하는 즐거움이 너무나 좋았는데, 이제 그런 소소함도 카운트다운 세듯이 허겁지겁 감상해야 하는 걸까. 올봄에 여기저기를 다니며 모아놓은 꽃 사진을 보며 유난히 생각에 잠긴다. 

나의 마음에 들어온 순간부터 사라질 운명을 가진 것을 모으는 기분은 참으로 울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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