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직장인J씨 Feb 18. 2024

이별 후 X 년이 지났다.

그녀의 이별은



대한민국에서 남자든 여자든 사람으로 살고 있으면 꼭 한 번은 듣는 질문이 있다.


"여자친구는 있어요?"

"남자친구는 있어요?"


여기서 없다고 하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결혼…!"


잔소리 단골 소재인 결혼. 명절 때마다 잔소리하지 말라고 뉴스에 나오는데도 결혼하라고 붙잡고 늘어지는 어른들이 있다. 하지만 개 같이 싸우다가 이혼하는 사촌들이 늘어나면서 '결혼 뭐 하러 하냐!'라고 호통치는 어른들도 생겼다. 요즘 애들은 다르다, 아이도 안 가지는 딩크족도 있다더라.

그렇게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갑자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말한다.



"결혼은 안 해도 연애는 해야지."



연애 (戀愛)

명사: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 서로 좋아하여 사귐.

유의어 - 로맨스, 사랑, 애련

- 네이버 어학사전.


집안 어른들, 직장 상사들, 오래된 친구들. 심지어 안 지 얼마 안 된 모임 사람들까지.


"지금이 제일 예쁠 때인데 연애 해!"


난 대한민국 33살 여자 사람이다.

나는 오늘도 연애하려고 노력 중이다.











"말 놔도 괜찮죠? 우리 동갑이잖아요."


30살. 고등학교 친구가 연결해 준 소개팅자리. 나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초면에 반말은 어색하긴 하지만 동갑인데 굳이 존댓말을 계속할 필요도 없었다. 파스타를 먹고 가볍게 맥주 한잔하러 가자 해서 근처에 있던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연애 몇 번 해봤어?"


맥주 한잔으로 나올 수 있는 질문인가?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난 난감하게 웃었다. 당황함을 눈치챘는지 K는 호탕하게 말했다. (이름도 기억 안 나니 소개팅남을 K라고 하겠다.)


"어차피 이제 알건 다 아는 나인데 속이고 감추고 할게 뭐 있어."

"그런 게 왜 궁금해?"

"나도 말해줄게!"


난 별론 안 궁금한데 말이야. 호기심 가득한 눈빛에 난 맥주 한모금하고 말했다.


"두 번."

"두 번? 겨우? 아, 뭐 1년 이하는 취급 안 하고 그런 거야?"

"1년 이하까지 해서 넌 몇 번 연애했는데?"

"음, 다섯 번."


입꼬리를 올리고 히죽거리면서 웃는 얼굴이 얄밉다 못해 한 대 쥐어박고 싶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자 이야기, 재테크 이야기. 이야기라고 해도 결국은 그의 자랑이었다.

자랑을 길게도 떠들던 K는 신나 보였다. 나는 대충 맞장구를 쳐주면서 미소를 유지했다. K를 위해서가 아닌 K를 소개해준 고등학교 친구를 봐서였다.


"조심히 들어가. 오늘 수고했어."


헤어지고 돌아서는데 K의 얼굴이 벌써 가물가물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소개팅 자리에서 K가 했던 말 하나가 걸린다.


'겨우라 겨우. 겨우 두 번 밖에?라는 뜻이겠지.'


내 20대에는 두 남자가 전부였다. 이렇게 말하면 뭐 대단한 연애를 한 것 같지만 지극히도 평범하고 별다를 게 없는 연애였다. 단지 조금 특별하다면 '내' 연애였다는 것. '내'가 주인공인 연애였다는 것.

두 번째 남자친구이자 마지막 남자친구 상준이랑 언제 이별했더라.


"내가 너한테 이별하는 법도 알려줘야 해? 연락하지 마."

"미안해. 하지만…."


이별도 서툴었던 우리는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 연락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카톡이 오지 않았고 전화도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에 상준이가 SNS도 끊었다.


그렇게 내 시간 속에서 상준이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게 29살 때였다.


상준이가 없는 시간들이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이별의 아픔은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진상 부리지 않고 조용하고 단단하게 내 일상을 지켰다.


'너보다 더 멋진 남자친구를 만날 거야. 난 만날 수 있어.'


어리석게도 이 문장을 꼭 쥐고 지냈다. 이별의 아픔이 없는 내 모습이 어른스럽게 의젓하다 착각했다. 울렁거리는 마음에 나는 얼른 생각을 멈추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샀다.

그때 울리는 전화 벨소리. 소개팅을 주선해 준 고등학교 친구였다.


"어땠어? 괜찮았어?"


소개팅을 할수록 느끼는 건데 당사자보다 주선자들이 더 신나 하는 것 같다.


"괜찮은 분이기는 한데…. 나랑은 안 맞네."


이렇게 서른 살 12월 마지막 소개팅이 끝이 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