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가치를 전하는 초록노동자입니다. 이십 년 차 식물연구원이 보는 식물, 자연, 환경에 대한 시선과 경험을 공유합니다.
지난주, 외부에서 사십 명의 손님들이 찾아오셨다. 오전 열한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1부는 세 분이 발표하는 세미나를, 2부는 야외 생태복원한 곳의 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나는 실무자여서 부드러운 진행을 위해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빴다.
아침에는 쌀쌀해서 외투를 입고 출근했는데, 세미나를 마치고 오후 세 시쯤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뜨거웠다. 낮 최고기온이 이십 팔도라고 한다. 벌써 여름이 되는 건가. 답답했던 구두를 벗고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모자를 쓰고 휴대용 마이크를 챙겼다. 느티나무와 버드나무를 왜 심었는지, 습지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등등 한 귀로는 옛날이야기를 듣고, 속도가 뒤처지는 사람들을 인솔하며 바쁘게 걸었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느리게 주변을 관찰하고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예전에는 논이었어요, 여기는 철도였고요.' 지금은 숲이 된 곳의 안쪽에 서서 유기물이 포슬포슬한 땅을 밟고 산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슬쩍 정보를 전한다. 깜짝 놀란다. 그럴 때 한 마디 덧붙인다. '이렇게 만들어주는 게 저의 역할이에요.'
깨달음과 변화는 천천히 찾아온다. 많은 정보를 전해주지 않아도 된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급하게 이동하며 정보를 전달하는 해설보다는, 비슷한 속도로 걸으며 여러 사람의 눈을 마주치고 정보처럼 보이지 않도록 일상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경험하고 느끼며 깨달아야 변한다.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주입하면 피로해지면서 뇌가 지치고 잠이 온다.
걸으면서 '내 나무'인 버드나무를 만나 안부를 전했다. 꽃이 벌써 지고 잎이 제법 크고 색이 진해졌다. 직장에서 내 나무를 정해놓고 계절마다 관찰하며 소통하면 소소하게 행복하다. 내 나무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든든한 느낌. 그 나무와 함께 십 일 년을 지냈고, 별 일이 없다면 앞으로 십 오 년은 더 함께 할 나무. 나무는 몸속에 차곡차곡 탄소를 쌓고 산소를 내뿜어 자연에 기여하고, 나는 그런 나무를 지키기 위해 연구한다. 어쩌면 우리는 환상의 짝꿍일 수도.
왕벚나무 꽃이 질 때쯤이면 참나무 꽃이 핀다. 연둣빛의 길게 늘어진 참나무 꽃을 처음 본 사람들이 나무를 빙 둘러싸고 연신 사진 찍었다. 나는 참나무 꽃을 찍는 사람들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귀하고 소중한 장면이다. 사람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지나치는 것이다. 알고 나면 이렇게 신기하고 재미있어한다. 자연에는 아름답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현상들이 많다. 그걸 쉬운 언어로 전달하는 게 나의 역할이다.
이번 주 수요일에는 중학교 이 학년 학생들 스물세 명을 만난다. 아들과 같은 나이. 사춘기 푹 빠진 아이들에게 어떻게 생태의 세계를 맛보게 할 수 있을까. 조금은 무섭다. 꿈쩍도 안 하면 어쩌지,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진 않을까. 걱정되어 아들에게 상담했다. '그런 애들도 있겠지. 안 그런 애들도 있어. 엄마 하던 대로 해.' 무뚝뚝한 톤으로 이렇게 얘기해 줘서 고마웠다. 눈이 초롱초롱한 몇 명을 위해 노력하는 거야, 스스로 토닥이며.
흰 꽃잎을 활짝 퍼뜨려 봄을 맞이하는 '봄맞이꽃'을 만났다. 나도 가슴을 활짝 펴고 나의 소명인 생태 가치를 널리 퍼뜨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