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걷고 쓰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근 Jun 18. 2024

장터목 대피소는 잠을 자는 곳이 아닙니다

지리산 2박 3일 여행기 4

"그 에어매트 좀 빼면 안 돼요?"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잠이 깼다. 깜빡 잠들었었나 보다.


"본인은 에어매트 소리가 안 들리나 몰라"


"어디야"


"저기 2층"


이 에어매트로 말하자면 k가 안내해 준 준비물에는 없던 것이다. 4월에 시댁에 갔을 때 시아주버님이 무릎을 주무르길래 무릎 안 좋으시냐고 물었다가 5월에 1박 2일로 지리산 산행을 간다는 대답을 들었다. 나도 6월에 2박 3일로 지리산을 종주할 계획이라고 했더니 알리에서 에어매트를 사서 가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산장 바닥에 에어매트를 깔고 자야 된다고 아는 척하면서 지마켓에서(아직 알리와 친해지지 않아서) b와 s것 까지 3개나 산 것이었다. 구매후기에서 삑삑 소리가 난다는 글을 읽긴 했지만 가볍고 가성비가 좋다는 글에 혹해서 그만 구매 버튼을 눌러버린 것이었다.


산장에 도착해서 짐을 풀어놓고 에어매트에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을 때부터 소리가 신경 쓰였다. 나는 저 에어매트를 깔고 자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종일 배낭을 메고 오르막길을 걸었더니 허리가 너무 아팠다. 에어매트를 깔면 좀 나으려나 싶어서 에어매트 위에 누운 게 잘못이었다. 아니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잘 수 없을 거라며 b가 준 귀마개를 낀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귀마개 덕분이었는지 불 끄자마자 에어매트 소리에 다른 사람이 싫은 소리를 하는 줄도 모르고 곯아떨어졌었나 보다. 산장 바닥이 따뜻해졌다가 식을만하면 또 따뜻해졌다. 따뜻한 공기가2층으로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자면서 몸을 뒤척였던 것 같다.


 "그 에어매트 좀 빼면 안 돼요?"라는 말을 듣기 전에도 아래층에서 한번 에어매트가 시끄럽다고 누군가 말을 했을 때 s가 죄송하다고 말을 했다는데 나는 들은 기억이 없는 걸로 봐서 내가 제일 먼저 잠이 들었던 게 분명했다. 기껏해야 몇십 분이나 잤을까. 그때 깨서는 에어매트 위에서 꼼짝을 안 했다. 애어매트를 빼려면 또 소리가 날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에어매트 위에 누워있는 s와 b는 자는지 어쩐지 미동도 없었다. 어떻게 살아있는 사람이 저렇게 움직이지 않고 잘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초저녁부터 떨어지기 시작하던 빗방울은 제법 굵어졌는지 대피소 지붕을 시끄럽게 두드리고 있었고 바람까지 미친 듯이 불어댔다. 출입문에 두꺼운 암막커튼까지 쳐진 숙소 안은 칠흑 같이 어두웠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고 싶었으나 애어매트 아래 어디에 깔렸는지 더듬거려도 핸드폰은 만져지지 않았다. 에어매트를 빼내려면 한번 더 삑삑하는 소리를 내야만 했다. 이 정도의 시간이면  아까 짜증 냈던 그분들이 잠들었겠다 싶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에어매트에서 바닥으로 몸을 굴려 내려왔다. 이 놈의 에어매트, 내가 원주 가면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든가 해야지.


아래층에서 코 고는 소리가 올라왔다. 아마도 그 순간 깊게 잠든 사람은 코 고는 사람 두어 명뿐인듯했다. 손바닥 만한 환기창 바로 옆에 자는 k자리 쪽으로 가서 창문을 열고 싶었으나 깜깜해서 갈 수가 없었다. 가려면 에어매트 위에 꼼짝않고 누워있는 s를 지나서 가야 하는데 그러면 또 에어매트 스치는 소리가 날 게 분명했다. 참는 수밖에 없었다.


k가 언제 열었는지 찬 공기가 조금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살 것 같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숨은 막히고 화장실도 가고 싶고 허리는 아프고. 어느새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를 하고 있었다. 간절히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화장실에 가려고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핸드폰 불빛 없이는 계단을 내려갈 수가 없었다. 핸드폰 불빛이 있다고 해도 불빛에 다른 사람들이 깰까 봐 내려갈 수 없는 분위기였다. 에어매트 소리로 다른 사람 못 자게 만들더니 이제는 또 화장실 간다고 불 켜고 내려온다고 혼날 것만 같았다.


아래층에서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일어날 때가 됐나 생각했을 때 마침 k가 일어나 숙소 밖에 꽂아둔 핸드폰을 찾아왔다. 이때다 싶어서 나도 일어나서 부스럭거리며 에어매트 아래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밖으로 나오니 안개와 비와 바람에 기온이 어젯밤보다 더 떨어져 있었다. 밖은 춥고 숙소 안은 숨 막히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숙소 앞 충전대 앞에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헤드랜턴을 끼고 비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새벽 3시를 좀 넘긴 시간. 춥고 비 오고, 안개 끼고 바람까지 불었지만 빨리 그 공간에서 벗어나 천왕봉으로 가고 싶었다.


그날 낮에 우리 넷은 서로가 밤에 한잠도 못 잤다고 말했다. 쌔근쌔근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렸던 것으로 봐서 몇 명은 짧게라도 잠을 잔 것 같은데 아무도 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애초에 대피소에서 잠을 자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장터목 대피소는 밤에 잠을 자는 곳이 아니었다. 장터목 대피소는 눈을 감고 그 시간을, 그 공간을, 그 공기를, 어둠 속에서 홀로 견디는 곳이었다.


불끄기 전 평화로운 시간 8:45 / 다음 날 충전대 앞에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릴 때 3:12



매거진의 이전글 백무동에서 장터목 산장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