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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Jul 14. 2024

건달 농사

게으른 텃밭지기의 농사법

나는 건달 농사꾼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솔직히 말하면 농사에 대해 잘 모른다. 어설프게 농사 흉내는 내고 있지만 손바닥만 한 텃밭도 버거울 때가 있다. 텃밭은 하고 싶은데 바빠서 자주 돌보지 못할 때는 감자나 고구마를 심는다. 감자나 고구마는 지지대를 세울 필요도 없고 모종을 심고 난 후 물만 몇 번 주면 그다음부터는 혼자 알아서 잘 자란다.


어떤 해에는 감자를 심고 어떤 해에는 고구마를 심는데 특별한 기준은 없다. 4월에 뭔가를 심고 싶은데 자주 못 들여다볼 것 같으면 감자를 심고, 고구마를 심고 싶으면 5월까지 기다렸다 심는다. 올해는 씨감자 한통(5kg, 16,000원)을 사서 원주집과 인제텃밭에 나눠 심었다.


보통은 감자눈 있는 부위를 잘라서 심는데 올해 씨감자는 작아서 그런지 칼로 자르지 말고 그냥 한 덩이씩 심으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순이 많이 올라왔다. 올라온 순을 한 두 개씩만 남기고 뽑아낸 것(순지르기) 말고는 특별히 한 게 없다. 두 곳 모두 감자씨를 묻어두고 물만 몇 번 주고 풀도 뽑지 않았다.


동네 어르신이 풀 뽑으라고 했을 때도 텃밭 둘레에 난 풀만 뽑고 감자밭 풀은 그냥뒀다. 감자곁에 뿌리를 내린 잡초가 뽑히면서 감자를 들고 나올게 분명했다.  그 결과 인제의 텃밭은 풀밭인지 감자밭인지 분간할 수 없을만큼 풀이 자라버렸다.


원주집은 해가 잘 들지 않는 곳에 텃밭이 있어서 감자 줄기가 가늘고 긴 연두색으로 자랐고 인제 텃밭은 해가 잘 들어서 감자 줄기와 이파리가 초록색으로 짱짱하게 잘 자랐다. 심기는 인제 텃밭에 먼저 심고 남은 것을 일주일 뒤에 원주집 텃밭에 갔다 심었는데 캘 때는 원주집 감자를 2주 먼저 캤다.


원주집에서 캔 건 자잘하고 양도 적었는데 인제에서 캔 건 큼직한 것도 있고 양도 꽤 많다. 잡초를 뽑아줬으면 수확량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으나 건들건들 사진이나 찍으며 주변만 어슬렁댔던 건달농사꾼에겐 감지덕지한 여름걷이다. 농사는 빈둥거리며 지었어도 수확한 감자를 나누는 일에는 이제 부지런을 좀 떨어야겠다.



* 건달농사 : 빈둥빈둥 놀면서 실속 없이 짓는 농사.



[원주텃밭]



[인제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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