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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썬 Feb 17. 2024

브런치 작가, 나는 한 번에 될 줄 알았지......

국문과 출신의 브런치 작가 신청 실패담

몇 시간 공을 들여 브런치 계정을 만들고 처음 글을 썼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24년 1월 마지막 날인데

새해 들어서도 당최 달라진 게 없는 내 모습이 한심했고 뭐라도 좀 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본 온라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공무원이 떠올랐다.

글쓰기는 나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생활비에 보태고 싶지만

나는 지금 휴직 중인 공기업 직원이다.

'공'자가 붙으면 본업 외의 수익 활동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미국 비자는 F2 비자로, 잘못하면 쫓겨날 판이다.


사실 아르바이트가 아니더라도 할 것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24살 이후 인생의 90% 이상은 회사가 중심이었던 나는 내가 뭘 해야할 지 찾는 게 어려웠다.  

 

15년 넘게 할당된 업무를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은 가족의 희생을 담보로 커져만 갔다.

그러다 나를 포함한 가족들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 인생에 '나'도 '가족'도 없을 것 같은 위기감이 들어 갑작스럽게 육아 휴직을 결정했다.


그런데 막상 휴직을 하고 보니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육아, 살림, 요리, 재테크......

결혼한 지 10년 이상이 되었건만 그 어떤 것도 쉽지 않았다.


회사에다 쏟은 것만큼의 열정을 쏟으면 괜찮다고?

그것도 넘치면 큰 일 난다는 것을 육아를 통해 배웠다.

아이는 나의 넘치는 그릇된 방향의 열정에 반항하기 시작했다.

할머니와 있었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모습들을 보였고,

내가 아이를 망칠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상담도 받고 고민한 끝에 아이가 좋아하는 걸 찾아주었다.

아이는 남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다. 노래 부르는 것도.

그래서 뮤지컬에 도전하게 했고, 무대에서 2편이나 공연하게 되었다.

내로라하는 성인 뮤지컬 배우들과 말이다.


연습과 공연을 다니는 긴 시간 동안,

다행히 아이와 나는 부딪치는 일이 적었다.

나도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아이도 운전도 못하는 엄마가 서울 한복판에 차를 가지고 다니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고마움을 느꼈던 같다.


그러다가 일 년 전, 미국에 왔다.

남편이 반 년 정도 먼저 들어와서 박사 과정을 시작했고,

나와 아이가 따라 들어온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은 대학 중심 소도시로 매우 평온한 편이다.

범죄자가 난무해서 총 든 경찰을 매일 보고,

한국처럼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고 화장실을 가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이 동네는 그게 아니었다.


또 인근에 한국인이 모여사니

마트나 가야 미국인과 그나마 대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쁘지 않았다.

마트 외의 외출을 자제하고 자발적 가 된 느낌도 꽤 괜찮았다.

난 내가 스스로 고립되고 있는 거니까.


무엇보다 집안의 고요한 적막이 좋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마음껏 유튜브도 봤다.


하지만 이것도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니 위기감이 몰려왔다.

아 나 이러다가 그냥 한국 가는 거 아냐? 하는.


물론 미국에 와서 얻은 것은 많다.

제일 큰 것은 가족의 건강과 화목.

좁은 집에서 같이 몸 비비며 있는 시간이 많으니 대화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개인의 성장 측면에서 볼 때 '쉼' 밖에 한 게 없었다.

아! 하나 더 있다. 요리에 대한 자신감 함양?


자발적 싸로 '쉼'을 충분히 하고 나니

'뭐라도 좀' 하고 싶어졌다.


그래, 나도 글쓰기를 해보는 거야!

작가라는 칭호도 붙여주네?

그래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나는 대학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다.

누군가 나에게 글 잘 쓰겠다고 말하면 부인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내심 어느 정도는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3년 전까지는 매일 보고서를 쓰고 봤으니까.


그 자신감으로 보고서와 비슷한 형식으로 재테크 관련 글을 한 편 썼다.

그래도 뭔가 하나는 하고 해야 할 것 같아서

관련 유튜브 영상을 하나 보고 다른 플랫폼의 글 URL을 붙여 넣고 작가 신청을 했다.


기다렸다.

합격 메일이 오기를.

그래도 국문과 출신인데 설마......


그런데 어라? 왜 메일이 안 오지?

남들은 하루 만에 메일이 온다던데 이거 시차 때문에 안 오나도 싶었다.


그런데 어제 새벽에 온 메일은 탈락 메일이었다.

시간도 몇 시간은 걸린 분석보고서 형식의 글이었는데.

참고자료 캡처도 많이 했는데!!!


새벽 3시 반에 그 메일을 보고 옆에서 자고 있던 아이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엄마 떨어졌대. 슬퍼."


놀랍게도 자고 있던 아이가 대답했다.

"엄마 또 도전하면 돼. 너무 슬퍼하지 마."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다. 나는 어쨌든 잘 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글쓰기의 방향을 수정될 필요가 있었다.


사실 작가 신청을 하고 남편에게 얘기했을 때

남편이 글을 보여달라고 했다.

보고 난 후 반응은

"에이~ 난 또 소설 같은 거 연재하는 줄 알았지."였다.


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

분석보고서 같아도 내 나름의 의견이 있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이제 그냥 온전한 내 얘기를 쓸 것이다.

어설픈 전문가 흉내 내지 않고,

내 사는 얘기. 내 생각들을.

그게 브런치를 보는 사람들이 궁금해할 얘기인 것 같다.


아이도 내가 다시 신청해서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엄청 기뻐할 것이다.

그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 지금, 빨리 아이를 데리러 가고 싶은 마음이다.



(추가)

월요일 오후 1시(한국  기준 오전 3시)에 다시 신청했고, 화요일 오후 9시(한국 오전 11시)에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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