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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Mar 13. 2024

제주에서 차 한잔 어때요

1박 2일 제주 1

퇴근을 하고 가장 편한 자세로 눕는다. 가만 보니 얼마 전 심폐소생술 교육에서 배운 '회복자세'와 흡사하다. 매일이 응급상황인 모양이다. 사르르 눈 녹은 날씨에 마음이 들뜬 나머지 휴대폰을 들어 항공권 검색을 시작한다. 유럽을 다녀온 후로 기회만 되면 떠날 생각부터 하니 (재정적으로) 큰일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항공 마일리지라는 좋은 핑곗거리가 있다.



제주에 다녀오기로 한다. 고작 2일 동안 무엇을 하겠냐마는. 직장인에게는 평범한 것도 곧잘 특별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가령 평일에 여유롭게 차를 한 잔 한다든가, 차를 한 잔 한다든가. 꼭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다.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특별하다. 짧아서 아쉬운 만큼 여행 기분은 제대로 내야 하니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제주가 딱일 것 같았다.



그럼에도 누군가 왜 부산이나 여수가 아닌 제주냐고 반문한다면 제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국적인 곳이라 답하겠다. 혼자여도 이상하지 않은, 철저히 여행자일 수 있는 그런. 그래서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종종 제주를 찾는다.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표현보다는 나와의 시간을 갖는다고 해두자.



과연 몇 권을 읽고 갈 수 있을까?



맥시멀리스트에 보부상인 내가 이번에는 백팩 하나만 가져가보기로 한다. 일상의 고단함을 가장한 짐이라도 덜어볼 요량으로 말이다. 캐리어 대신 사두기만 하고 읽지 못한 책 세 권을 챙겼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예술과 풍경 그리고 쇼펜하우어 소품집. 묵직해진 가방의 무게만큼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을 보니 챙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위탁수화물이 없어서 비행기 탑승까지 무척 수월했다.



내 걱정만큼이나 커다랗고 새까만 캐리어를 가지고 다녀야 마음이 놓였던 나인데. 걱정과 욕심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모든 것이 수월하게 흘러간다. 위탁수화물이 없는 나는 공항에 도착한 후 바로 출국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보안검색대에서도 특별히 지연될 일이 없었다. 비행기 탑승까지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제주의 정오. 햇살은 나긋하고, 바람은 시원시원하다. 렌터카의 앞 좌석 창문을 모두 내려본다. 나는 반짝거리는 바다를 감싸고 있는 해맞이해안로를 달리는 중이다. 마침 오디오에서는 클라라 슈만의 피아노 삼중주 G단조 작품번호 17번 3악장이 흘러나오고 있다. 건반과 현의 선율이 뒤섞여 바람에 나풀거린다. 완벽한 조합이다.



해맞이해안로에서 바라보는 반짝거리는 바다



9개월 만의 제주다. 친구와 함께 두 밤을 지냈던 일이 작년 6월이었으니. 나는 지금 차를 한 잔 하러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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