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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May 05. 2024

잘 내려오는 일

등산 일기 1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내려올 산을 무엇하러 올라갈까 싶을 테지만. 나에게 등산은 오히려 ‘잘 내려오는 일‘에 가깝다. 산속에서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는 시간은 바로 내려올 때니까. 종주와 같은 장시간 산행에서 중등산화나 스틱과 같은 장비를 갖춰야 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허세가 아니라 안전 때문이다. 안전하게 내려오는 것이 중요하다.



4년 전, 산이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등산화를 신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실내 활동이 제한되면서 사람들은 밖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섰고 그 덕분에 산은 젊어졌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산으로 모여든 것이다. 그렇게 흘러 들어간 사람들 중 한 명이 나다. 팬데믹은 명백한 위기이면서 한편으로는 기회였을지도. 대수롭지 않았던 것들이 그 반대의 경우가 되는 기회말이다.



많은 것들이 자리를 잃고 다시 찾기를 반복하다 4년이 흘렀다. 예전보다는 드물지만 나는 여전히 산에 간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아는 동생과 함께 계양산에 다녀왔다. 계양산은 인천 계양구에 위치한 해발 395m의 인천에서 마니산 다음으로 높은 곳. 둘레길을 포함해 3가지 코스가 있지만, 어김없이 정상으로 가는 계단길에 들어섰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팠지만 이 느낌이 싫지 않다.



계양산처럼 생활권에 인접한 곳은 산책 겸 반려견과 함께 나온 등산객을 만날 수 있다. 이날도 강아지 한 마리가 견주와 함께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총총걸음으로 우리를 앞서던 강아지가 갑자기 뒤를 돌아본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 손짓을 했더니 나에게 조르르 달려온다. 반면 친구의 신호에는 반응이 없어 괜히 우쭐해진다. 동네 산은 이러한 매력이 있다.



계양산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



들머리에서 2시간이 지나서야(온전히 나 때문) 정상에 도착했다. 계양산이 처음인 친구를 위해 정상석 앞에서 사진을 남겨주었다.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날벌레가 많아 바로 내려가기로 한다.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던 풍광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산에서 잘 내려오는 일에는 ‘잘 먹는 것’ 또한 포함된다. 등산은 칼로리 소모가 높은 편이라 행동식 등으로 충분한 보충을 해주어야 한다. 오늘 같은 날씨에는 시원한 물냉면이 제격이겠다.



계양산 공영주차장에서 차로 15분 정도 가면 내가 자주 찾는 냉면집이 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행복이라는 것이 별게 아니다. 지금의 고군분투가 언제든 잘 내려오기 위한 내공을 쌓는 일이라 생각하면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산에서는 잘 먹고 틈틈이 쉬어가는 체력 안배가 중요하니까. 조금 늦거나 돌아가도 괜찮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정상은 늘 그곳에 있다.



근육통이 일주일을 갔다. 등산도 습관 같아서, 오래 손을 놓았더니 온몸이 기억을 전부 상실한 듯하다. 2021년 10월 10일, 친구와 함께 장장 9시간의 한라산 등반을 성공했던 그날의 성취까지도. 몰아치는 비바람에 홀딱 젖은 채 찍었던 정상목 옆에서의 사진만이 그때의 감정을 대변해 준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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