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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Sep 08. 2024

모퉁이의 작은 카페

애플 유자티와 휘낭시에

집에서 나와 찬찬히 10분 정도 걸으면 건물 1층에 자리한 어느 작은 카페 앞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인테리어의 카운터와 쇼케이스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주문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언제나 상큼한 아이스 애플 유자티와 무화과 크림치즈 휘낭시에. 작은 평수에 성글게 배치된 테이블은 입소문을 타고 늘어난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마저도 매력적인 이곳은 바로 내가 애정하는 동네 카페다.



제법 낯을 가리는 나와 텐션까지 딱 맞는 공간은 드문 법이어서 이곳을 발견하고는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카페를 자주 찾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단연 뛰어난 음료와 베이커리의 맛. 더불어 카페 전체에 흐르는 덤덤하고도 자신 있는 톤 앤 매너와 남매 사장님의 차분한 친절함까지. 내가 동네에 찾아온 지인들을 데리고 꼭 방문하는 유일한 장소일만하다. 가끔 휘낭시에를 포장해서 누구와 나눠먹기라도 하면 다들 칭찬일색인 것이다.



그럼에도 유난히 이곳을 향한 발길이 뜸했던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러 건너편 세탁소에 들르는 길이면 나도 모르게 카페 쪽으로 눈길이 간다. 주택가의 자그마한 카페에 지나지 않는 공간에 테이블마다 사람들로 가득한 광경을 목도할 때면 내밀하게 나만 알던 아지트를 빼앗겨버린 느낌이랄까. 언제부터인가 옷도 사람도 유독 편한 것을 찾는 나는 공간에도 그 기준을 적용하게 되었나 보다.



사람이 많지 않고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 거리가 먼 곳이 좋다. 소리부터 냄새까지 바깥으로부터의 다양한 자극에 민감한 편이라 나에게 주어진 영역에 최대한 집중하고 싶어서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날이면 음악을 들으며 미뤄둔 글을 쓰거나 책을 읽어볼 요량으로 전력을 다해 카페를 탐색하고는 한다. 때때로 찾아오는 감기에 지독하게 걸려버린 요즘은 회사 일에 치여 그마저도 누릴 수 없는 호사가 되어버렸지만.



거실에서 뒹굴거리다 카페 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 나는 갑자기 차가운 애플 유자티와 무화과 크림치즈 휘낭시에를 주문했다. 심한 감기 탓에 맛을 음미할 겨를은 없었지만 얼음이 가득 들어간 핑크빛 음료 한 잔으로 작은 기분 하나 내어보는 것이었다. 부디 이번 추석 연휴에는 일에서 벗어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를. 이리저리 구겨진 마음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하다.



이번 연휴에는 아무 생각없이 책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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