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화 Jun 20. 2024

독백, 나의 회고록. 13.

지킬박사와 하이드.


밝을 ㅇ. 빛날 ㅇ.

밝은데 빛나기까지 하라니. 나의 이름은 너무 지나친 곳이 있어.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기억도 없었을 어렸을 때부터 낯가림이 심했다고 했다. 타고난 기질이 소심하고 내성적이긴 했지만 특히나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면 맹수의 표적이 된 사냥감처럼 얼어붙어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명확히 말할 수 없는 공포가 있었다.



아직도 가끔 날카롭게 시리며 한편으론 열띤 기억으로 남는 조각 하나.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학급신문을 나눠주던 선생님이 맨 앞자리에 앉은 나를 불렀다. 신문 부수가 부족하니 옆 반에 가서 신문을 받아오라고 하셨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입만 뻐끔거리다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교실문을 나섰다. 옆 반으로 가는 복도가 너무나도 어둡고 길게 느껴졌다. 눈앞에 있는 이 문을 열어야 하는데.


무서웠다.


이 문을 여는 순간 쏟아질 시선들이 날카롭게 나의 몸을 사정없이 찌를 것 같았다. 문이 점점 크고 무겁게 느껴졌다. 열면 안 돼. 어디선가 그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문을 열 수 없었고 그렇기에 저 문도 열 수 없었다. 복도는 그런 나를 점점 집어삼킬 것 같았다. 두려워진 내가 열 수 있는 건 그 문밖에 없었다.

화장실 안에서 나는 몇 번이나 나를 다독였다. 괜찮아. 할 수 있어. 그저 문을 열고 신문을 달라고 하면 돼.


그럼 돼.


몇 번을 그렇게 되뇌었지만 나는 끝내 문을 열지 못했고 빈손으로 나의 교실문을 열었다.

쭈뼛쭈뼛 들어가는 나를 나무라는 선생님의 목소리만을 기억한다. 시선이 무서웠던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으니까. 그저 선생님의 말만을 고개를 숙이며 들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시선이 여지없이 날카롭게 나를 찔렀다. 너는 그런 것도 못 하니?


나는 그런 것도 못 했다.


자리에 앉는 순간 긴장이 풀렸는지 온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열띤 정신을 가다듬으며 까무룩 책상 위에 엎드렸던 것 같다. 그때부터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나의 상태를 보던 반 친구가 선생님께 내가 열이 난다고 말했던 것이 어렴풋이 들렸던 것도 같다.



사람에 대한 혼란과 남겨진 열띤 상흔을 감기처럼 앓고 살다 보니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 나는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살기 위해서.


익숙했던 환경, 친구들, 사람들과 갑자기 동떨어져 홀로 남은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낯선 환경은 거센 물살처럼 나를 몰아붙여 숨차 오르게 했다. 열심히 눈을 굴리며 숨 쉴 방법을 찾던 나는 드디어 버튼을 찾았다.


달칵.


스위치가 바뀌며, 나는 지금까지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들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는 동기들의 좋은 모습들을 흉내 냈다. 인기가 많은 친구의 유쾌한 농담이나 털털한 행동을 따라 했다. 점점 사람들과 잘 어울리게 되었다. 나를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늘었다. 나는 더욱 활발해지고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전히 시선은 두려웠지만 마냥 굳어있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었어?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들이었다. 아니, 이건 나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나는 내가 낯설었고 가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익숙한 나와 내가 모르는 낯선 나의 차이가 명확하게 느껴질수록 괴리감은 반동처럼 크게 찾아왔다. 나는 지금 분명 웃고 있는데 내 안 어딘가 금이 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아직은 이것만이 나의 숨구멍이자 놓을 수 없는 동아줄이니까. 내 손으로 쓴 가면은 그 맨살을 드러내지 못한 채 한 겹 한 겹 두꺼워졌다. 아니야. 이것조차 나의 모습인 거야. 내가 노력하고 받아들인 나. 그런 나는 가쁜 숨을 내쉰다. 언제쯤, 이 숨이 편해질까.



왜 내 이름을 이렇게 지었어. 사람은 이름을 따라 산다던데, 가벼운 투정을 부렸던 적이 있다. 그러면 왜 예쁘기만 한데!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럼 그저 웃으며 삼켰다. 물론 좋은 뜻이지만 만약 내 이름이


밝고 빛나지 않았다면.



빛이 밝을수록 어둠이 짙게 드리우는 것처럼. 밝고 빛나는 나와 어둡고 깊은 내가 있다.

그사이에 놓여있는, 굳건히 닫혀있는, 낡은 문 하나.

여전히 나는 눈앞에 있는 문을 열지 못한 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하염없이 서성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나는 언젠간 이 문을 열 수 있을까.

두 아이는 그렇게 만날 수 있을까.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 나온 구절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비록 심한 이중생활을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위선자였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나의 양면은 둘 다 매우 진지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독백, 나의 회고록. 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