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에 생년월일 봤잖아요!
"나이가 많네요. 사십 넘은 거죠?"
원장님의 첫 질문을 받았다. "딱 40입니다 “
"결혼은요?
아이는 있으세요?
결혼 몇 년 차인데 아이가 없으세요?
딩크예요? 아님 앞으로 계획이 있나요?
남편은 무슨 일 하세요?"
나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분이었다.
질문 폭격을 받는 그 순간에도 희망을 붙잡는다.
'면접이 어디야. 혹시 모르잖아. 취업할 수 있어!‘
말하기 불편한 질문에도 성실히 답을 한다.
드디어 속사포 같던 나의 개인사 질문이 끝났다.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 테이블에 놓인 미지근해진 둥굴레차를 마셨다.
그 순간, 원장님은 이력서의 앞뒤장을 넘기며 읽고 계셨다.(설마 지금 처음 읽으시는 건지..)
"뭐 잘하세요?
병원 코디네이터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거예요?"
이제야 진짜 면접 같은 질문에 그간의 나의 업무와 성과에 대해 마구마구 어필한다.
"환자분들을 케어하는 어쩌고 저쩌고, 병원 매출을 위해 어쩌고 저쩌고"
그냥 듣는듯하는 제스처와 딴생각을 하고 있는 눈을 마주하고도 원장님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한번 더 허리를 곧추세우고 입꼬리를 좀 더 올리며 말을 한다.
('날 좀 봐주세요. 제 이야기 듣고 있으시죠??’)
말을 하면서도 '나 참... 용쓴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질문의 대답을 이어갔다.
"저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잘해 낼 수 있습니다."의 말을 끝으로 한번 더 어필 멘트를 던진다. “맡겨만 주시면 잘할 수 있습니다”
이어 원장님께선 함께 일을 할 경우 내가 해야 할 업무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그간 해 왔던 업무였기에 자신 있게 그리고 책임감 있게 잘할 수 있다고 다시 한번 나의 마음을 전했다. 20여분의 면접 시간 지났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턱을 괴던 원장님이 미간을 찡그린다.
"저희 병원에 직원이 2명이 있는데, 20대예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직원들 간 소통이 잘 될지
그 부분이 좀 걱정이네요"
원장님의 고민 상담인가??
'그럼 왜 면접을 오라 한 거지? 이력서에 생년월일 봤을 거 아냐!' 속으로 이런 말이 그냥 튀어나왔다.
‘오늘 면접의 핵심 내용을 이제야 말하시는구나!’
원장의 말투와 표정 그리고 몸짓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우리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원장이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뭐라 말하기도 싫었지만, 난 또 성실히 답을 했다.
"이전 병원에서도 선생님들과 다소 나이차가 있었지만 잘 지냈습니다. 그리고 퇴사 한 지금도 연락할 정도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원장의 눈은 시계를 가리켰다.
"생각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말과 함께 그렇게 나이로 시작한 면접은 나이로 끝이 났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연락은 없을 것이란 걸 알면서도 등신처럼
웃으며 45도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이토록 '허탈한' 감정은 40은 되어야 알 수 있구나!
내가 있는데, 내가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건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나 또한 처음 느껴보는 요상한 이 감정에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4층이었던 그곳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터덜 터덜 내려오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탓을 쌓는다.
‘나이 많은 내 탓!
취업할 수 있다고 대책 없이 직장 그만둔 내 탓!!'
그리고 반성한다. 그 짧은 찰나에 복기도 해 본다.
'내가 잘할 수 있다고 너무 들이댄 건가'
'내가 뭐가 문제였을까'
'나는... 무능한 인간인가....'
1층 출입문을 열며 1월 찬 바람에 정신이 차려졌다.
'나 40 대구나.
그리고 이런 게 40 대구나.
이게 현실이구나!'
일단 집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