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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복키 Jul 26. 2024

직업에 귀천이 어딨어!...그런 나는??

밑천이 드러난 그날의 이야기.

구직에 대한 집착일까?

돈에 대한 조급함 때문이었을까?

면전에서 나이로 대차게 까인 그날의 면접에 정신이번쩍 들었다. 덕분에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명확해졌다. 지금 나는 구해지지 않는 직장을 찾을 때가

아닌 돈을 벌어야 할 때라는 결단이 섰다.


"직업으로 월급 받기"
아닌
 " 일단 돈 벌기"


돈을 우선순위에 두게 된 건 남편에게

"있잖아.... “(돈  좀...) 이런 아쉬운 소리를 꺼내기 싫은 이유도 있었다.  

"한 달 만 쉬고 일할게" 당당하기까지 했던 나의 퇴사 후 포부가 점점 무색해져 갈 때쯤,

나는 일 자리도 찾지 못하고, 비상금도점점 떨어져 가는 고개 숙인 쭈글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직업이 아닌 돈을 우선 택하며,  나를 깨어있는 사람으로 포장해 본다.

"직업에 귀천이 어딨어!"




내 입맛에 맞는 아르바이트 공고 하나를 찾았다.

"하루 3시간, 시급 1만원 "

간단하게 경력 이력서를 작성해 지원했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오늘 면접 볼 수 있을까요?"


오후 2시 면접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그래, 일단 돈 벌면서 다른 일 알아보는 거야. 마냥 노는 것보다 나아.

식당 설거지면 어때? 돈 버는 게 중요하지. 괜찮아!"


걸어가는 연신, 나는 괜찮다는 말로 나를 위로한다.

"설거지가 뭐 어때서? 괜찮아. 괜찮아!"

그곳은 하루 3시간과 시급 1만원 외 "#주방 #설거지"의 키워드가 메인인 돈가스 가게였다.


주황빛 창문 선팅지와 체리색 테이블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매장의 흰색 바닥에 군데군데 낀 검은 기름때를 밟으며 들어섰다.

체리색 테이블에서 나의 첫 설거지 아르바이트 면접이 바로 시작되었다.


"나이가 어떻게 돼요?"

"이런 일 해 봤어요?"


60대의 단발 펌이 잘 어울리시는 사장님께서 작은 수첩을 펼치시며 첫 질문을 주셨다.

"마흔 살입니다. 오래전이지만, 대학시절 서빙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습니다"

"40. 경험 있음" 사장님의 수첩에 나의 이력이 메모되었다.


"여기는 학생들 상대로 하는 점심 장사예요. 시간도 짧고, 방학 때면 쉬는 날도 있어서 애기 엄마들도 많이 지원해요. 돈가스가 메인 메뉴고  김치볶음밥, 메밀, 라면이 있는데 설거지만 하는 게 아니라 간단한 조리도 같이 해 줘야 해요. 돈가스 샐러드 드레싱 해주고 메밀면 삶고, 김치볶음밥에 올라가는 프라이 정도만 하면 돼요.

계란 프라이 할 줄 알죠?"


사장님께서 하는 일에 대해 말씀해 주시는 동안

나는 사장님의 뒷 배경인 주방을 곁 눈질로 보고 있었다.

주방에서 조리를 하고 계시는 주방장님을 순식간에 스캔했다. 쓱----

#색이 바랜 구겨진 옷 #거칠고 정리안 된 턱수염 #주방 통로를 가득 메운 큰 체격




순간, 큰 체격의 주방장님과 좁은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하는 내 모습이 상상됐다.

사장님이 눈치 못 챌 정도로 살짝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상상에서 빠져나와 마지막 질문에 대답했다.


"제가 요리 중에 계란 프라이를 제일 못해요.

노른자를 살려야 하는데, 맨날 터트려요.  아무리 해도 터지더라고요. 프라이를 못해서 일을 못 할 것 같아요. 사장님. 죄송합니다..."


말도 안 되는 변명에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죄송했지만 순간 다른 핑곗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사장님이 의자를 테이블 가까이 당기시며 웃으신다.

"손을 보니 일 잘하는 손이에요. 짧고, 야무지게 생겼어. 노른자 터트려도 돼. 내가 가르쳐 줄게"


('아... 이게 아닌데...')


"제가 연습해서 잘하게 되면 연락드릴게요. 볶음밥은 프라이가 이뻐야 먹음직스러운데... 죄송합니다."

어느새 난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하는 지디가 되어 사장님께 거절의 의사를 전하고 있었다.




"직업의 귀천이 어딨어?

열심히 일해서 돈 벌면 그만이지! "

멋진 척, 깨어 있는 척했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정작 난, 직업의 외형적인 모습에 집착하는 사람이었고 귀천이 없다며 부정했지만 내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나는 말과 행동이 모순된, 모순 덩어리였다.


"내가.. 식당에서 설거지를? 기름때 가득한 좁은 곳에서?

정장 차림에 하이힐을 신고 내 책상에 앉아 일하던 내가? 내가!"


허세 가득한 이런 못난 내게

그 순간 계란 프라이와 시선강탈의 주방장님은 그야말로 "완벽한 핑곗거리"였다.


구직 의사가 없다는 기색을 알아차린 사장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나는 그곳을 나왔다.

어중간한 오후 3시의 햇볕을 등지며 집으로 걸어가는 이중적 태도의 내가 참.. …아직도 부끄럽게 느껴진다.


남에게는 관대하고,

나에게는 엄격한 직업 귀천의 룰.

나의 밑천이 드러난 그날의 이야기다.






사진: UnsplashMartino Pietrop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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