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이 Dec 18. 2024

1938년의 쌍두마차가 생각한 "페미니즘"

조선일보 익명의 문단 비평의 치졸함  


1938년 3월 8일, 조선일보에 올라온 "문단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의 단평. 

글쓴이는 "쌍두마차"라는 익명의 필명.  

당시 단평은, 단평은 1935~1940년 무렵까지, 4개 신문의 학예면과 문예종합지(신동아, 문학, 人文評論, 西海公論, 批判, 청색지 등)에 실렸는데 신랄한 비평이 목적이었으나, 지나친 비난, 욕설로 인해, 記名비평이 많아졌다. 단평란 이름은 대부분 好戰的, 전투적이거나 戰爭機物의 이름이 많은데, 일제하 전쟁 당사국이나 다름없었던 당시의 조선의 위기상황과 관련된다.  고 합니다.   

1960년대 이전에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신문지상에 오른 것은 딱 두 번입니다.  

하나는 1937년 마를린 디트리히 특집기사에서 마릴린 디트리히를 발굴한 감독 조셉폰 스텐버그를 언급하며, 페미니즘 감독이라고 칭한 기사. 다른 하나가 이 논평인데요.  


이 논평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요약하면,   30년대 문인 or 기자 "쌍두마차"가 가진   "페미니즘"의 개념이란 좀 묘한데,  

전차에서 자리에 앉아있는 신사가,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이 페미니즘입니다. 

그리고 제 힘의 일부를 부인을 위하여 나누어 줬다고 생각하는 미덕, 일종의 신사도의 미풍양속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선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성으로서는 굴종의 표시이니,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   

쌍두마차는 이 논리를 논단의 문제로 옮겨갑니다. 

그나마 전차에서는, 자리 양보를 받는 여성들이 점차 줄어가고 있는데, 

문단에서는, 여전히 덥석덥석 남자문인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문인들이 많다는 것. 

일부 남자 문인들이 고상한 척 연민으로 함량 미달의 여성문인들에게 "여류문인"이라는 이름을 붙여 등단의 기회를 주고, 후대한다는 지적. 

그리고 이 자리를 덥석 물어가는 여성 문인들이 뻔뻔하다는 비평입니다.  

이것이 익명으로 하는 실랄한 문단 비평이라니..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로 신문을 검색하다 우연히 걸린 내용이 하필 이런 내용인가?  

참으로 치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보다도,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지금 기준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60년대 기사를 좀 더. 찾아봤습니다.  

60년대에 도래하여, 페미니즘과 여성인권이 세계적으로 언급될 때에 발맞춰 우리나라 신문에서도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라는 용어가 종종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지금 기준으로 봤을 때는 좀 어리둥절하긴 합니다.  

흥미로운 기사. 1962년 경향신문.  

통학 뻐스에서, 자리를 여학생에게 기회가 되는대로 양보한다는,

"페미니스트"라고 하기에는 뭐 하지만, 반쯤 페미니스트로 생각하는  연세대 상과 CCY군.

일단 CCY군은, 페미니스트를 "여성 숭배자"라고 설명했습니다.  

1960년대 대학생 CCY군의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은, 1930년대 문인 쌍두마차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네요

결국, 권리란, 남성이 먼저 앉은 버스 좌석 같은 것이고 , 여성에 계 호혜적으로 나눠주는 선의의 개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달라진 것은, "고마운 줄은 알아야지". 

 남성의 권리를 나누어 받아, 이렇게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남성에게  고마움을 표할 줄을 아는 "에티켓"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이 150명의 여자 공무원을 백악관에 채용했기 때문에 파격이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1964년의 기사.   


1965년 경향신문은, 잡지 여원의 기사를 한 꼭지 소개하는데,

 "일그러진 페미니스트", 차라리 폭군적이 남성들에게 매력을 느낀다 는 7인이 여류들의 대담 내용. 


1967년   조선일보 기사. 

1930년대 조선일보 여자기자들의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당시 송진우 사장이 자신의 인력거를 

여기자 취재용으로 제공했다고  무척도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하는 장면.     



생각해 보면, 80년대 90년대 초까지도, 우리나라에서 유독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신사도"처럼, 남자들이 여자들을 에스코트해준다던가, 여자에게 자상하게 잘 대해주는(?) 경우에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성주의(女性主義, 영어: feminism 페미니즘)는 여성을 포함하여 성별 등의 정치ㆍ경제ㆍ사회 문화적인 평등을 지향하는 사상 혹은 활동이라고 한다는데.   

결국, 모든 종류의 인권운동과  마찬가지로, 평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운동입니다.   

흑인 인권운동, 장애인 인권운동이던, 성소수자 인권운동이건, 

기존의 권리를 가진 사람들은 권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의 입장을 알 수 없습니다.

밥 안 굶어본 사람은 밥 굶어본 사람 마음을 모르듯, 권리에 대한 결핍을 모르면, 차별을 당해보지 못하면, 역지사지는 안되기 마련이니.    

남자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여자가 생각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요.  

그래서

20대 남성들은, 페미는 무조건 나쁘다는 입장인 것 같고.  

페미니즘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급진 페미니스트와는 선을 긋는다고 이야기하는데,

급진 페미니스트와 일반 페미니스트의 구분은 어떻게 할까요?   

힙합에서 "진짜" 논란만큼이나 

예술에서 "순수" 논란만큼이나.  

진짜 순수한 "페미니즘" 이란  무엇일까?  그보다는

왜? 남자들은 대체 왜 페미니즘에 순수성을 요구하는가? 

비폭력을 요구하는가? 

그 당위성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남성이 원하는 순수한 페미니즘은 "죽은 페미니즘" 아닌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