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일글
외갓집에 가면 달마시안 개 한 마리가 깜깜한 구석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 어찌나 사나운지, 사람이 다가가면 물 기세로 달려들어 어린아이로서는 절대 다가가면 안 되는-공포의 공간,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도 그저 낮인 걸 알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빛만 들어오는 구석. 사실 공간이라고 하기에도 뭐 한 오픈된 바깥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외갓집인 데다 그 개집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해 그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 사나운 달마시안 개를 다룰 수 있었던 사람은 외삼촌 뿐이었는데, 어느 날 외삼촌이 주인인 걸 알면서도 거세게 짖는 달마시안 개에게 조용히 하라며 다그치고는 나를 불렀다. (개는 자물쇠 걸린 개집 안에 있었다.) 한낮이었지만 그 공간은 장막을 사방에 쳐놓은 것처럼 어두웠는데, 외삼촌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작은 무화과 나무가 있었다. 외삼촌은 잘 익은 무화과를 따다가 먹어보라며 건넸다. 물러터져 손으로 집기만 해도 속살이 보이는 무화과의 물컹거림이 낯설었는데, 왜인지 외삼촌 앞에서 얌전해진 달마시안 개 앞에서 용기가 생겼던 건지-그 용기에 덥썩 무화과를 베어 물었다. (그땐 낯선 음식은 절대 입에도 안 대던 옹고집 스타일 어린아이였다)
가지같은 보라색에 물컹거리기까지 하니 그 맛이 제대로 느껴질리 없었을 텐데, 그것을 뛰어넘는 단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참외씨처럼 보이는(참외를 싫어한다) 무화과 속살은 사실 좀 흉하게까지 느껴졌는데 그 맛은 참외 단맛과는 차원이 달랐다. 졸인 설탕에 향을 입혀 넣어놓은 맛이었다. 무화과 향은 낯선데, 그 달콤한 단맛은 또 익숙해서 무서운 달마시안 개가 노려보고 있어도 아랑곳 않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무화과를 제대로 먹어본 일은 없는데, 가끔 좋아하는 과일이 무어냐고 누군가 물으면 그 무화과의 단맛이 떠오르고는 한다. 가정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은 아니었고, 우리 가족은(물론 나도 포함해서) 낯선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 식탁에는 늘 먹던 제철 과일만 올라오기에 그 이후의 무화과 맛은 존재하지 않지만. 가끔 말린 무화과가 들어있는 빵 같은 걸 사먹기는 하는데, 그 안에 들어있는 무화과는 어쩐지 내가 어렸을 적 먹었던 무화과랑은 다른 종류의 과일 같달까.
“무화과 유통 힘든 이유: 무화과 열매는 원래 꽃을 먹는거라서 먹기 좋게 잘 익은 상태에선 과육이 물러지고 아랫부분 구멍(사실 무화과 껍질처럼 보이는 게 꽃받침에 해당하니까 사실은 윗부분)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잘 익은 무화과 마트에 보내려면 유통과정에서 다 뭉개지고 으깨짐“이라는 게시글을 어디선가 보았다. 그리고 싱싱한 무화과 열매를 먹고 싶다면 전남에서 먹어야 한다고, 전남이 무화과 주요 생산지라고, 잘 익은 무화과는 껍질이랑 구멍이 갈라져 터져나오는데 오히려 그런 걸 팔면 클레임이 들어와 덜 익은 채로 유통된다고, 사실상 꽃이라 후숙은 더이상 안 된다는 댓글까지. 이걸 보니 자꾸만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오르고, 그 기억이 오래 맴돌아 기록해둬야겠다 싶었다. 꿀 무화과를 먹었던 어린시절 그 추억이 오래 쌓인 서사에서 확 피어오른 꽃처럼 느껴졌나.
사진 :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