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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trainer Feb 03. 2024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갑작스런 후배의 부고 소식에 급히 빈소에 다녀왔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훨씬 알차고 지혜로워 내가 많이 배우던 참 좋은 사람이었다. 예고 없이 찾아든 준비되지 않은 죽음 앞에 황망한 유족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팠다. 나 또한 적잖은 충격을 받아, 하던 공부와 책 읽기를 멈추고 살아온 나의 생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 내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면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가는 걸까? 죽은 후 나는 가족에게 어떤 존재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


돌아보니 아이들이 성장기에 접어들 무렵, 내 하던 일이 어그러져 바닥으로 내려갔고 절망감에 난 긴 시간을 밖에서 방황했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여행한 적도, 맛있는 것을 먹으며 대화한 추억도 없었다. 더 늦기 전 내가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며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지, 기록을 남겨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그간 집을 나와 10년간 공부하며 독서하며 메모한 자료들을 꺼내 쌓으니 2미터가 넘었다.

내가 죽은 후 이 많은 자료들을 그들이 살펴볼 리 없을 터, 즉시 쌓인 자료들을 읽고 찢고 버리고 읽고 찢고 버리고... 그렇게 보름간의 작업을 거쳐 몇 가지 주제로 묶어냈다. 뇌 공부를 하며 얻은 것들을 정리한 뇌과학 자료(Brain Science), 가끔씩 적은 일기를 모은 어느 날의 일기 모음(Daily Diary), 독서하며 뽑아 놓은 글을 묶은 되새기고 싶은 글(Ruminate Writing), 영어 공부하며 적은 것들을 정리한 영어 글귀들(English Writing), 시험 준비하며 외웠던 알아두면 유용한 지식들(Test Information), 깊이 감동받고 변화받은 책 리스트(Book List), 나머지를 묶은 메모들(Etc)이다.


그리고 '미리 쓰는 엔딩 노트'란 제목을 달아, 지나온 내 삶을 짧게 정의하고 가족들에 대한 내 심정을 밝히는 소감을 넣었다. 나의 치부가 들어있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죽음을 앞둔 심정으로 진실하게 묶었기에 가감 없이 틈나는 대로 하나씩 올리려 한다. 내가 갑작스럽게 죽는다면 이것이 내 유언이 될 것이기에. 그리고 운이 좋아 계속하여 삶이 이어진다면, 이후의 삶은 진정 선물로 여기며 겸허하고 진지하게 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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