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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trainer
Oct 13. 2024
오늘처럼 궂은비가 내리는 밤이면 예전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노인요양시설에 다니며 봉사할 때 알게 된 윤 씨 할머니 생각이 문득 난다. 시설에 들어온 지 6개월이 된 할머니는 좀처럼 말이 없으며 구성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한다. 그런 할머니에게 특이한 버릇이 하나 있는데, 평소엔 조용히 지내다 비 내리는 밤이 되면 술을 마시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옆방 식구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며 고생한다고 했다. 수녀님은 내게 윤 할머니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며 할머니와 친해지길 부탁했다.
수녀님 말에 의하면 16살 때 가난한 집에 시집온 할머니는 10년 만에 사고로 남편을 잃고 광주리 장사를 하여 어린 세 아들을 대학까지 가르친 대단한 분이셨다. 대학을 나온 아들들도 다 잘 되어 큰 아들은 이름만 대면 다 알 정도로 유명한 대학교수, 둘째 아들은 대기업 임원, 셋째 아들은 농협 간부였다. 그러나 아들이 잘 되면 남의 자식 된다는 옛말처럼 큰 아들 둘째 아들은 처가와 자기 일에 파묻혀 살아 멀어졌고, 셋째 아들은 함께 살았으나 어릴 적의 잘못 퍼진 소문을 듣고 엄마를 오해하여 술만 마시면 엄마를 폭행했다 한다. 잦은 폭행에 참다못한 이웃들이 아들을 경찰에 신고했는데 할머니는 진술을 회피하며 침묵했단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이웃들이 이곳을 추천하여 들어왔다고 했다.
난 할머니와 친해지려 자주 찾아가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는 처음엔 내게도 경계의 빛을 띠며 거리를 두었지만 우린 자주 만나며 조금씩 친해져 갔다. 내가 할머니가 좋아하는 포도와 귤을 사 가면 맛있게 드시며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했는데 아들에 대해선 물어봐도 말을 하지 않으셨다. 온갖 고생을 하며 키운 아들에게 외면받고 얻어맞는 참담함을 견딜 수 없어 마시지 않던 술을 빌어 울분을 토해내면서도, 아들에게 해가 될까 봐 철저히 침묵하는 모습을 보며 부모가 자식 생각하는 것과 자식이 부모 생각하는 것은 천지차이란 걸 알았다.
"자식들 잘 키워 노면 뭐 하노? 두 놈은 늘근 애미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 놈은 지 애미 패지를 않나? 쯧쯧, 생각허면 헐수록 불쌍한 저 늘그니..." 밤새 지르는 고함 때문에 잠을 못 잔다는 옆방 할머니가 했던 말이다. 이후에도 아들들은 찾아오지 않았고 할머니는 끝내 맺힌 응어리를 풀지 못한 채 3년을 계시다 생을 마감하셨다. 벌써 30년이 흐른 지난 일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 요즘, 주변에 그 할머니처럼 말 못 할 속울음을 하며 사는 이는 없는지 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