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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trainer
Aug 28. 2024
노년기 삶에 관한 자료 준비를 하다가 요즘 빈번해지고 있는 고독사 문제를 접하게 됐다. 고독사란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쓸쓸하게 임종을 맞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시신이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1인 가구 중심의 가족 구조의 변화, 경제 문제와 질병 장애로 인한 주변인들과의 단절 등이 고독사의 원인으로 분석되며 그 한가운데엔 생활고가 자리하고 있다. '2022 고독사 실태 조사' 자료에 따르면, 고독사는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고 여자보다 남자가 훨씬 많으며 최근엔 청년 고독사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됐다. 연일 34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며 더위에 강한 체질인 나도 땀을 많이 흘리며 고생한다. 자료를 정리하다 문득 얼마 전 고독사로 삶을 마친 후배 K가 생각나 한참을 서성이며 그를 회상했다. 몇 해 전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내가 일하는 곳에 신입으로 들어온 K, 건장한 체구에 잘생긴 외모를 지닌 그는 이런 거친 곳에서 일하기에 안 어울릴 듯한 귀공자형의 사람이었다. 과묵한 데다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K여서 말을 붙이기 힘들었지만 같이 일하며 그와 조금씩 친해져 갔다.
K는 교육 사업을 하는 부유한 집안의 무녀독남 외아들로 태어나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한다. 그러다 그가 입대했을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숙부와 재산 문제로 다투다 억울하게 빼앗기고 세상을 등지셨다 했다. 졸지에 부모님과 재산을 잃은 충격으로 삶의 의욕을 잃은 그는 집안과의 모든 인연을 끊고 홀로 되어 10여 년을 여기저기 떠돌다 이곳에 일하러 왔다 했다. 10만 명 중에 한 명 꼴로 나타난다는 더위에 매우 민감한 특이체질을 지닌 그는 여름 나기를 무척 힘들어했다. 그래서 가을부터 8개월간 일을 하여 그 돈으로 4개월간 쉬며 여름을 나고, 가을이 되면 다시 일을 시작하는 패턴으로 살았단다.
깊은 상처로 인해 살고자 하는 의욕과 살아야 하는 이유를 잃어버린 채 되는 대로 살아가는 그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그에게 잘해주며 내가 겪었던 바닥 생활을 들려주며 다시 용기 내어 살 것을 권했다. 그가 이곳에서 2년을 지내고 맞은 이듬해는 유난히 더웠다. 6월부터 더워진 날씨에 맥을 못 추던 그는 도무지 여름을 날 자신이 없다며 일을 그만두었다. 떠나기 전날 그가 찾아와 내게 말했다. "형님 때문에 용기 내어 세상에 부딪쳐 보고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어요. 그간 여러모로 고마웠습니다..." 그가 떠나는 게 아쉬웠지만 난 다른 곳에 가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건강하게 잘 살라고 했다.
그리고 바삐 돌아가는 삶에 잊고 살던 3년이 지난 가을, 장례지도사로 일하는 후배를 통해 우연히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무연고 시신 신고가 접수되어 현장에 나가 시신을 수습했는데 유품을 정리하던 중 우리 회사 명함이 있어 알게 되었고 유가족이 끝내 나타나지 않아 장례도 무연고자 장례절차를 통해 처리했다고 한다. 그 소식에 마음이 참 많이 아팠다. 동료들은 전혀 고생을 하지 않고 자라 험한 세상을 견뎌낼 멘털이 없어 그리됐다고 했지만 그보다는 의지하고 살아갈 대상이 없어서였다고 생각한다. 젊은 나이에 쓸쓸히 죽어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곳에 있는 그의 명복을 빈다.
요즘 웰다잉(well dying) 웰엔딩(well ending)이란 말이 많이 오르내린다. 삶을 평온하게 살다가 고통 없이 임종을 맞는 모습은 나이 든 사람들 모두가 꿈꾸는 소원이다. 하지만 그러기란 쉽지 않고 현실에선 대부분 많은 이들이 질병으로 고생하다 생을 마감한다. 누구인들 인생을 잘 살아내고 끝을 잘 마무리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 실패하며 원치 않는 환경에 내몰리며 살다 가는 것이다. 결국은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야 끝을 잘 마칠 수 있게 된다. 어떻게 사는 것이 끝을 잘 마무리하는 것일까? 몇 차례 '미리 쓰는 엔딩 노트'를 기록하며 남은 생은 가볍게 살아가려 마음먹었다. 떠날 땐 모든 걸 내려놓고 가야 하는 우리 인생... 오늘도 조금씩 비워가는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