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두오모, Four Fingers Steak 그리고 마키아벨리
2001년 개봉된 영화 덕분에 피렌체의 두오모에는 한국 남자 반, 일본 여자 반이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나도 첫 해외 여행을 계획하면서 좋아했던 영화 속 장면의 여행지를 찾아가는걸 하나의 포인트로 잡기도 했다. 가령 '비포선라이즈'의 오스트리아의 빈에 나온 커피숍에 간다거나 하는.
냉정과 열정 사이는 내 대학시절 엄청나게 인기를 끌어던 걸로 기억한다. 소설로 남자편, 여자편 나눠져 있기도 했고 영화화도 되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발견하고서 웃는 장면은 지금껏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아무튼 나는 당시 밀라노나 베네치아, 피사의 사탑을 포기하고 피렌체를 선택했다. 베네치아나 피사의 사탑이 정말 궁금했지만 나는 어쨌거나 피렌체의 두오모를 택했다. 혹여나 하는 기대감을 아주 살짝 가지고서 피렌체의 두오모를 방문했다.
* 방문기간: 2010년 1월 19일
기록적인 혹한과 폭설 때문이었을까. 당시 유럽여행하면 엄청난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한 줄서기로 유명했는데 나는 '최후의 만찬' 또한 기다리지 않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는건 당시 관람객, 관광객이 그만큼 없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인 반, 일본인 반이라던가 두오모에 한국인도 일본인도 없었다. 그리고 두오모로 올라가는길은 좁고도 가파랐다.
힘들게 첨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아주 많이 건장한 이탈리아 남성 2명과 친해졌다. 생각지 못했던 만남이었다. 둘은 삼촌과 조카 사이였고, 조카가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서 알제리에 살고 있었던 그 둘은 삼촌이 고국인 이탈리아를 구경시켜주는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 셋은 모두 흡연자였는데 그로인해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그리고 DSLR을 가지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공통점 때문에 다음은 어디로 갈 건지 서로 물어보며 포토스팟을 찾기도 했다.
삼촌인 친구가 다음 방문했던 장소의 입장료를 내주었다. 나는 왜 그러지 생각하며 다음 장소에 같이 가기로 했고 그 장소의 입장료를 내가 내었다. 이게 마음에 들었었나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번갈아가며 입장료를 내주며 다음 장소를 찾아가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게 피렌체를 선택했던 이유는 단지 두오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피렌체에는 마키아벨리의 무덤이 있는데 난 장교로 제대한 직후 했던 여행이었기에, 그리고 집안의 어르신께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꼭 읽어야한다는 말씀이 있었기에 마키아벨리의 무덤에도 꼭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다음으로 마키아벨리의 무덤에 가보고 싶다 했더니 삼촌이었던 친구는 마키아벨리가 누구인지 내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군주론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해 주었더니 자기도 가고 싶다고 해 함께 가게 되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워낙 유명했기에 난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들 알거라 생각했었다. 아무튼 함께 하는 와중에 저녁은 무엇을 먹을 것이며 해 지는 노을은 어디서 찍을 것인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튼 마키아벨리의 무덤에 다녀온 건 참 잘한 일이었던거 같다. 대개의 여행자는 피렌체에서 마키아벨리의 무덤을 방문하지 않을테니 특별한 여행자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그 이후 노을을 찍으러 베드로 언덕을 올라가기로 했다.
베드로 언덕에는 연인들도 있었고, 결혼식 웨딩 사진을 찍는 예비부부들도 있었다. 그만큼 베드로 언덕에서 보는 노을은 아름다웠다. 올라가는 길에는 생각보다 많은 계단이 있어 힘들었지만, 그만큼의 보람이 있는 노을을 만나볼 수 있었다.
삼촌인 친구가 내게 저녁은 무엇을 먹을 것인지 자꾸 물어보았다. 그리고 포핑거스 스테이크라는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내게 추천했다. 그런데 매우 두꺼운 스테이크라 비싸다고 했다. 40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던걸로 기억난다.
당시 내게는 좀 부담스러운 가격이기도 했고 혼자 가기에도 그랬기에 나는 가지않을거 같다고 했었던거 같다. 그런데 저녁 노을까지 함께 한 뒤에 같이 가자고 삼촌인 친구가 내게 제안해 왔다. 그리고 나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크기의, 그리고 맛있었던 Four-Fingers Steak를 와인 큰 한병과 그리고 여러잔의 삼부카도 맛볼 수 있었다. 최고의 경험이었다. 삼부카라는 술은 있는지도 몰랐는데 처음 먹어보았고 내 스타일은 아니란것도 알게 되었다. 아무튼 이런 큰 돈을 식사 한끼에 쓴다는 것도 당시 내게는 놀라움이었다.
Four Fingers Steak를 시켰더니 주방장이 나와서 음식 설명도 직접 해 주고, 주방도 둘러보게 해 주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TV나 드라마에서만 봤던 모습이었다. 아무튼 돈 많이 벌어야 한다.
와인도 맛있었고, 스테이크도 맛있었다. 가게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게 아쉬울 따름이다.
아무튼 삼촌인 그 친구는 부자였다. 미케닉이라고 자신의 직업을 소개했지만 회사 직원이 200명인 회사의 소유주였다. 500유로 지폐가 가득한 지갑을 나는 처음 봤다. 500유로 한장이 100만원이 넘는 시절이었는데.
아무튼 삼부카도 신나게 마시고, 뉴욕에서 놀러왔다는 미국인 여성 두분도 만나 술도 같이 마셨다. 그리고 키가 190이 넘는 조카인 친구와 여성 두분 중 한분이 뭔가 잘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우리는 헤어짐을 결심하게 되었다. 영어를 잘해야한다. 기왕이면 키도 크고.
그이후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두오모에 가서 알제리에서 온 이탈리아 친구 두명을 만났다. 그 이탈리아 친구 둘과 함께 다니며 참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았다. 가끔 여행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 둘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잘지내고 있을거라 믿어본다.
냉정과 열정사이 영화와 소설 덕분에 난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방문하기 전 그 지역에서 촬영한 영화를 보고 가게 되면 여행의 재미가 배가 되지 않을까.
여러분들도 좋은 인연을 만나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나의 다음 여행에서도 좋은 인연이 나타나기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