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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 팔레르모 1 / 비잔틴의 그림자

팔레르모

by 장덕영

유럽과 중동의 권력집단이 돌아가며 한 번씩 차지한 섬, 시칠리아.


섬은 정복당한 치욕을 대가로 그때마다 화려한 문화 트로피를 수여받는다. 일제 때 삼천리강산에 그어놓은 경부선처럼. 국토가 유린당하고 무수한 사람이 죽고 국부와 문화재가 수탈당하는... 여기서 '기딴걸' 논하자는 건 아니고, 하튼 팔레르모는 칼 든 자들의 정복지 물색과정에서 1순위였을 테다.


시칠리아의 재래시장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팔레르모의 발라로 시장은 아랍인에게 먹거리를 공급하며 지금껏 나와바리를 유지하는 아랍전통시장이다. 다음 번 주인 노르만족에게 밀려났어도 시장이 살아 있음은 거기서 뜯어 먹고사는 사람들이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거다. 새로운 권력과 기존의 문화가 함께하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곳이다. 하여 오랫동안 팔레르모를 중심으로 패권이 흥행했고 건설한 덕에 섬의 최대 도시로 변모, 결국은 시칠리아의 수도로 자리한다. 어디든 서울만 최고였던 게 문제다.



시칠리아 일주 여행의 베이스캠프, 카타니아를 떠나 중부고속도로를 두어 시간 달려 북쭉 해안 테르미니에 이르고, 다시 해안선 따라 북서쪽으로 반 시간 더 달려 섬의 수도 팔레르모에 도착한다. 시칠리아 어디라도 그렇지만 특히 팔레르모는 페니키안이 들어온 이후 한니발장군의 카르타고와 로마제국을 거쳐 게르만의 고트족에게까지 짓밟힌다. 아랍인이 점령하면서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 이집트 카이로와 더불어 지중해 3대 거점도시로 성장한다. 결국 비잔틴, 아라비안, 노르만의 빅3 문명이 아직껏 동일 비율로 살아 움직이게 된 이유다.

지중해의 섬 저~구석까지 맥도날드라니...참


Scene 1 Porta Nuova


팔레르모의 구시가지 끝자락에 이르면 해괴하기도 하고 요상하기도 한 돌문이 떠억 버티고 있다. Porta Nuova. 새로운 문 뭐 그런 얘긴가 본데, 팔레르모뿐만 아니라 밀라노와 토리노 등 몇 군데 있다. 이는 도시확장 공사나 재건축 과정에서 기존의 낡은 문을 대체 혹은 새 성벽에 문 하나 짓는다는 그런 의미겠다.

팔레르모의 Porta Nuova 앞뒤 모습


바이킹의 피가 흐르는 노르만왕 기욤 Guillaume이 잉글랜드 점령 후, 언어가 바뀌고 고대영어 Willelm이 불어와 섞이더니, 또 어느 날부턴 정복자 윌리엄 William으로 슬쩍 바뀐다. 변화무쌍한 자기 이름값 좀 하려 그랬는지, 잉글랜드 정복 후 10년도 안 돼 기수를 돌려 시칠리아를 손에 넣는다. 아랍의 팔레르모를 단칼에 베니, 지들이 무슨 십자군 전신인 기독교 회복운동 La Reconquista 차원에서 그리했을까. 아니다. 그냥 정복욕일 거다.

저 문은 신성로마 카를5세가 튀니지 정복과 팔레르모 입성을 기리기 위해 건축했으나 두 차례 증개축, 오늘에 이른다. 기독국가 황제가 세운 개선문에 왜 아랍인이 새겨져 있을까 알아본바, 개선문에 새긴 아랍인들은 군인들이다. 당시 지중해 강자 오스만투르크와 무슬림세력에 대한 기독 국가의 우월성을 상징하려는 정치적 메시지겠다. 곧 승리자의 개선문과 패배자의 굴욕을 동시에 보여준다. 필자가 군인들의 부조를 뜯어 보니, 하나같이 억압받는 표정 힘겨운 자세 팔 잘린 모습이다. 피정복자의 삶이란 이런 건지, 서대문 형무소 독립문 자리에 '니혼진'이 세운 개선문이 있고 상투 잘린 우리 조상이 부조로 조각되었다면...

에구 아서라 ! 살 떨린다. 얼른 이 문을 나서련다.




Scene 2 팔레르모 대성당


대성당 가는 길 안내판이 참 초라하다. 흰색,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길 이름. 길 잃으면 전화하라고 ?


Porta Nuova를 통과하여 서울 명동길에 해당하는 Vittorio Emanuele 길을 따라 5분만 걸어가면 좌측에 거대 성당 하나가 짜자잔 나타난다. 이름하야 팔레르모 대성당이다. 성당 터는 원래 로마신전이 있었고 그걸 부수고 이슬람 모스크가 있던 곳을 또 부숴버리고 지은 곳이니, 자고로 정복자란 자들은 죄다들 도둑놈 우두머리임에 틀림없으렷다. 팔레르모 대성당도 최초 건축 후 정복자들이 바뀔 때마다 증개축하여 건축양식이 혼재한다.


Porta Nuova 인근 팔레르모 대성당 전경과 내부


이때만 해도 아직 로마 방문 전이라, 즉 베드로 대성당 보기 전이니 팔레르모에서 건축예술의 진가를 느꼈을 정도다. 이탈리아를 마치고 나면 이 정도는 곳곳에 있음을 알게 된다. 현재 시칠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막내아들은 이탈리아에서 살고 싶다나. 그건 그의 인생이니 알아서 할 일이고, 필자는 어쨌거나 한반도 땅이 젤 좋더라. 구경이야 또 떠나면 되는 거고.



Scene 3 노르만궁


Porta Nuova로 돌아와 다시 통과하여 좌회전해서 내려가면 바로 좌측에 또한번 짜자잔 하고 궁전이 나타나니 이름하야 노르만궁이라고. 시칠리아 주의회 청사로 사용하기에 결과적으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궁이면서 의회건물이다. 겉보기엔 그저 평범해 스쳐 지나치기 쉬운데 그러면 경기도 오산에 이르게 된다. 화려함의 극치가 저 안에 존재한다는 걸 들어가 보기 전엔 모른다.


노르만궁 전경, 안쪽 중앙정원

이 궁전도 첨엔 페니키아 요새였다가 아랍인이 새롭게 터를 닦고 노르만족이 들어와 강탈 혹은 접수한 후 증개축한 거다. 겉은 평범한 호텔급인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완존 딴세상이다. 그러니 돈 내고 들어가게 된다. 이런 삼삼한 건물을 시칠리아 지역의회 청사로 쓰고 있으니, 우리 같음 벌써 때려 부수고 재건축해도 수십 번은 했을 테다.



노르만궁에 들어가면 왕실전용 채플인 팔라티나 예배당이 우리나라식 2층에 있고 그 위층엔 실제 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수많은 방들이 있다. 아래 안내판을 보면 팔라티나 예배당은 1층처럼 표기되어 있는데 쫌 상식이 있어야 한다. 여느 유럽국가처럼 바닥은 지상층 piano terra, 그 위층 곧 우리나라 2층은 primo piano, 우리나라 3층은 secondo piano가 된다.

층 안내 표지판. 보다시피 수평층이 우리나라식 1층



Scene 4 팔라티나 예배당


근간은 아랍 기술자들의 작품으로 화려함에 아라베스크의 정교함까지, 후에 비잔틴 모자이크가 더해지면서 몬레알레 대성당, 체팔루 대성당과 더불어 시칠리아 모자이크업계의 빅3로 뽑힌다. 한번 가서 보길 바란다. 관람 후 입다물고 나오는 자는 결코 볼 수 없으리라. 내부 전체가 황금으로 칠한 듯, 그 화려함에 미쳐 태양왕 루이14세가 샘 나서 베르사유궁을 따라했다는 생각이 언뜻 스친다.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

Παντοκράτωρ Pantokrátor - 전능하신 분. 동방정교의 중앙 돔과 제단 앱스(Apse 뒤로 움푹 들어간 반원형 공간) 쪽으로 그리스도 황금 성화가 있으며, 주변 사방천지는 성서 인물들로 가득하다. 분명히 말하건대, 이 안에 서 있으면 종교와 인종에 상관없이 겸허해지거나 숙연해진다, 오직 이 하나만으로도. 필자는 저 벽화 아래서 한 시간 넘게 한 자리에 가만 있던 기억이 있다. 아무런 생각도 움직임도 없고 오직 올려다보기만.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이쯤에서 쫌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종교를 갖든,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든, 신학을 공부하든, 울부짖든.


팔라티나 예배당 360도 영상


판토크라토르 형식은 보통 그리스신화의 제우스 이미지 혹은 로마황제의 초상에서 많이 카피한다. 권위와 존엄을 머금은 근엄한 표정의 로마황제처럼 그려준다. 수염은 아무래도 남성 심볼이란 생각에, 풍성하고 긴 머리 수염 난 얼굴로 그리스도를 표현한다. 근데 참 그렇다. 그리스도는 분명 중동사람인데 기독교 로마가 유럽인처럼 그려내고, 부처는 깨달음에 정진하는라 빼짝 여윈 모습인데 절에 가면 늘 풍만한 자태로 앉아 계시니. 뭐든 인간 중심이니 보기 좋자고 하려는 걸까. 중요치 않으니 그만하고.


팔라티나 예배당 천장과 벽

아랍의 벌집구조 노르만의 건축양식 비잔틴의 모자이크와 돔이 얹어진 혼합구조다. 보통 이 정도 '끕'이면 외관이 베드로 성당쯤 되야 말이 되는데, 사무용 건축물 같은 외관의 내부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온통 황금칠. 내래이션을 할 수 없다. 보면 그걸로 끝이다. 말은 외려 추잡하다. 단체관광팀의 가이드 설명이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여기선 차라리 "자, 이제부턴 그냥 봐라보기만 하는 시간입니다"만 했어도 잘한 거다.



삼삼한 아라베스크 문양, 터프한 바이킹 양식, 아찔한 비잔틴의 건축이 도시 전체에 기본으로 깔고 간다. 원래 있던 비잔틴문화에 아랍이 올라타고, 노르만이 그들을 밀어내 자기들 양식을 더하고, 다시 비잔틴이 또 켜켜이 쌓아 올라간다. 그 모든 게 그대로 지금껏 존재한다. 뭐 존재하는 게 있어야 본질도 생각해 볼 거 아닌가.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싸르트르 말처럼. 글 엔딩이 좀 엉뚱하다.

이제 정신없던 복합문화공간을 떠나 한적한 옆동네로 떠나련다. ( --> 팔레르모2)


*비잔틴과 동로마 395-1453 / 동로마는 동서분열한 395년부터 로마 스스로 일컫던 역사적 명칭이고, 비잔틴은 동로마 멸망 이후 서양 역사가들이 수도 비잔티움을 기리는 의미에서 붙여준 별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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