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형 구조
중앙은행이라 함은 통화정책 관할 당국을 학문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예컨대, 한국의 중앙은행은 “한국은행”이라 불리며, 한국은행법에 따라 1950년에 설립된 후 운영되어 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앙은행은 연방준비제도 Federal Reserve System라고 하며, 연방준비법 Federal Reserve Act에 의하여 1913년 설립, 운영되고 있습니다. (https://www.federalreservehistory.org/essays/federal-reserve-history)
한국은행은 단일한 기관으로서 통화정책을 관장합니다. 통화정책 결정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라는 협의체에서 결정하게 되어, 기획재정부 및 은행협회의 의견을 어느 정도는 반영하지만, 책임은 한국은행이 집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미국 연방준비위원회는 13개의 서로 독립적인 기관이 합동으로 통화정책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워싱턴디씨에 있는 연방준비이사회 Federal Reserve Board of Governors와 나머지 12개의 지역별 연방준비은행 (12 Federal Reserve Banks)이 연방준비제도를 이루고 있는데, 연방준비제도의 이사들 (워싱턴디씨, Governors, 7명)과 나머지 12명의 지역별 연방준비은행장 (President of Federal Reserve Banks)들이 연방 공개시장 운영위원회 (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FOMC)에 참가합니다. FOMC가 1년에 8번, 혹은 분기별로 2번씩, 통화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FOMC 결정에 대한 뉴스를 접하실 수 있습니다. 요즘은 FOMC 결정 후 이루어지는 기자회견을 유튜브 생중계로 보실 수도 있습니다 (연방준비제도 유튜브 채널에서 매 FOMC 결정이 있는 날 (1월 마지막주 수요일과 그로부터 매 6주마다의 수요일) 2시 30분. 미국의 통화정책이 원-달러 환율과 주가 등에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FOMC의 통화정책은 이틀 간의 FOMC 토론 후 표결로써 정하는데, 이 표결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앞서 언급한 참가자 총 19명 중에 오직 12명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워싱턴디씨의 7명, 뉴욕 연방준비은행장, 이 8명은 항상 투표에 참가하고, 나머지 11명의 지역 연방준비은행장들 중에 4명이 매 년 돌아가면서 표결에 참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매 년 초 올해는 누가 표결에 참가하는지와 해당 지역 연방준비은행장의 성향에 대하여 자세한 분석 기사를 찾으실 수 있습니다. 올해 새로 투표에 참가하게 된 지역연방준비은행장이 인플레이션 목표 (2 퍼센트) 달성을 고용지표 (실업률 등)의 목표 달성보다 우선하는 경우, “매파 성향”(hawkish)이라고 하며, 반대의 경우 “비둘기파 성향”(dovish)라고 합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각 성향이 미국의 통화정책을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참고로, 2024년의 경우, 클리블랜드 Cleveland, 리치먼드 Richmond, 애틀란타 Atlanta, 샌프란시스코 San Francisco의 연방준비은행장들이 나머지 4명으로써 표결에 참가하게 되고, 2025년은 시카고 Chicago, 보스턴, Boston, 세인 루이스 St. Louis, 캔자스 씨티Kansas City의 연방준비은행장들이 표결에 참가하게 됩니다. (https://www.federalreserve.gov/monetarypolicy/fomc.htm)
왜 이렇게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 놓았는가,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분권화된 구조를 유지해야 할 것인지에 관하여 논의가 있습니다. (The Power and Independence of the Federal Reserve, Peter Conti-Brown, 2016) 아주 간단히 유래를 짚어보자면, 이는 미국의 국민정서 (공화주의 이념과 독점에 대한 반감), 그리고 1907년의 금융공황에서 비롯됩니다. 먼저, 미국의 국민정서는 미국 정부 수립의 철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공화주의 이념에 입각하여 수립되었다 보는 것이 학계 정설인 것으로 보입니다 (J.G.A. Pocock, The Machiavellian Moment, 1975). 이때 공화주의는 “군주국에서 군주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군주제와 대비되는 공화주의가 아닙니다. 되려 개인주의, 자유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반면, 공화주의는 개인을 공동체의 일부로서 인식하고 개인에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알맞은 덕성을 키울 것”을 강조합니다. 그 행동강령으로 비윤리적인 행동을 멀리할 것과 금전적 이득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삼갈 것을 포함합니다. 또 한편, 미국사회는 과거 영국 식민지배에 대한 반감으로, 어떤 한 기관이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 혹은 독점적 지위에 있는 것에 반감이 큽니다. 이는 요즘에도 마찬가지여서, 1982년 미국에서 시장지배력을 행사하던 AT&T가 반독점소송에서 패소한 후 여러 기업으로 쪼개졌고, 구글도 2023년 겨울 현재 반(反) 독점 소송 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공화주의 및 반(反) 독점정서를 고려하면 “금전적 이득에 대한 관심을 한곳에 집중시켜 금융시장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앙집중형 중앙은행의 존재는 그 자체로 반(反) 미국적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하여 1791년과 1811년 각각 중앙은행을 수립하였으나 20년 동안 운영 후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1830년대 이후로 미국에는 중앙은행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미국은 거래 화폐로 금이나 은 동전을 사용했고, 달러화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개별 은행이 발행한 교환권 등이 유통되기는 하였으나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는 없었습니다. (달러화의 시조인 그린백 Greenback (“녹색의 뒷면”) 은 남북전쟁 중인 1860년대 전비를 조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실제로 뒷면이 녹색입니다. 디자인은 지금과는 전혀 달라서, 예컨대 미국의 상징인 독수리 문양의 국새가 없었습니다. 여담으로 달러화에 찍힌 미국의 국새 the Great Seal of the U.S. 는, 기본 틀은 1782년에 제정된 것이지만, 1883년에 유명한 보석상 티파니가 다시 디자인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 1800년대 미국의 은행들은 부지기수로, 주기적으로 망했습니다. 한 은행이 망하면 불안감이 급속히 전염되어, 금융위기 또한 주기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1907년 금융공황이라고 부르는 엄청난 규모의 금융위기가 터집니다. 이때 뉴욕증권거래소 주식이 이전 해의 고점에서 50프로 폭락했다고 합니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1907년의 일을 “대공황”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에 제이피 모건 J.P. Morgan이 월스트리트에 자금을 조달하면서 위기를 수습하게 되고, 이런 위기를 겪으면서 미국 의회 및 대중이, 드디어, 금융위기의 파급효과를 저지할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됩니다. 이에 1913년 12월 23일에 우드로 윌슨 (민족자결주의의 그 대통령 맞습니다)이 연방준비제도법 Federal Reserve Act에 서명하고, 드디어 연방준비제도가 탄생하게 됩니다.
(은행이 망하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지금은 수없이 많은 소를 잃고 외양간을 열심히 고쳐온 결과입니다. 미국 중앙은행이 두 번의 실패 끝에 자리 잡은 이유도 소를 여러 마리 잃고 외양간을 고친 결과입니다. 2023년의 실리콘밸리뱅크 위기와 뒤이어 일어난 UBS와 크레딧 스위스 Credit Suisse의 합병을 떠올려 보시면, 중앙은행이 없을 때 어떤 일이 있었을지 약간은 상상이 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뿌리 깊은 반(反) 독점정서 덕분에, 미국의 중앙은행은 “중앙집중형” 은행이 아니라 “분권형” 은행입니다. 더불어 금융위기 시에 금융기관들 (특히 탐욕적인 이미지가 강한 월스트리트)를 세금을 들여 구제해 주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므로, 의회는 중앙은행의 막강한 영향력을 견제, 감시할 장치가 그 내부에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더불어 미국은 지역별로 다른 산업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산업별/지역별 이익을 변호해 줄 내부자들도 필요했습니다. 예컨대, 금융산업은 뉴욕/필라델피아와 시카고 지역, 옥수수 등 농산물 재배는 미국 중부 (아이오와, 네브래스카, 캔자스, 사우스 다코타, 오하이오, 미주리 등), 그리고 목축업은 텍사스 등 남부지역에서 발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3개의 지역별 조직이 연방준비제도라는 시스템을 구성하고, 통화정책의 토론은 총 19명 (워싱턴 7명, 지역별로 12명의 대표자)이 참가하여 지역별 경제상황을 보고하고 지역의 이익을 변호하되, 통화 정책의 결정은 그중 12명(워싱턴 7명, 뉴욕 1명, 나머지에서 돌아가며 4명)만이 투표하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워싱턴의 연방준비위원회는 공공기관이지만 나머지 지역 연방준비은행들은 사적 기업체에 가깝습니다 (private entity). 그래서 워싱턴의 연방준비위원회는 정보공개법 (Freedom of Information Act, FOIA)의 대상이 되지만 나머지 지역 연방준비은행들은 그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워싱턴의 연방준비위원회 위원 7명은 공적이익을 수호하는 사람들이고, 따라서 7명 모두 통화정책 결정에 항상 참가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FOMC의 결정을 실제로 집행하는 기관입니다. 따라서 통화정책 집행의 수단에 대한 전문성을 존중하여 뉴욕 연방준비은행장도 항상 통화정책 투표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