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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준비제도 이전의 두 중앙집중형 중앙은행들

두 번의 실패

by 나이 많은 학생

미국에 중앙은행을 세우려는 시도가 두 번 있었습니다. 1790년, 그 유명한 알렉산더 해밀턴의 제안에 의하여, 당시 금융 중심지였던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 “미국은행 the Bank of the U.S.”이 설립되었습니다. “첫 번째 미국 은행 (the First Bank of U.S.)”이라고 검색하시면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실 수 있고, 은행 건물 역시 보실 수 있습니다. 오래된 건축물인 만큼,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습니다. 이 중앙은행은 미국이 갓 독립한 뒤 미국 연방 정부가 돈을 빌려 써야 하는 상황에 대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미국 재무부가 채권을 발행하지 않았고, 더불어 달러 대신 금이나 은으로 주조한 동전을 화폐로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밀턴은 ‘정부의 은행’으로서 중앙은행을 설립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의 중앙은행들은 물가를 안정시키거나 금융위기로부터 한 나라의 경제를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법, 연방준비제도법 참조). 따라서 알렉산더 해밀턴이 제안한 미국의 중앙은행은 지금의 중앙은행들과는 전혀 다른 목적이었습니다. 더불어 첫째 미국은행은 통화를 발행하지도 유통시키지도 않았으므로 통화정책다운 정책을 집행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미국의 첫 정부 채권은 그린백 (Greenbacks)이라 하여, 1860년대 남북전쟁 (Civil War) 시기에 발행되고, 이것이 곧 달러화의 시작이 됩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의 제안에 대하여, 연방으로 권력이 집중될 것을 우려한 토마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등이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위헌소지가 있다는 것과 미국 대중의 비용으로 연방정부 및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한 기관을 만든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이는 제임스 해밀턴이 첫 번째 미국은행을 제안할 때, 연방정부뿐만 아니라 은행 등 금융기관들 역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재의 중앙은행도 비슷한 상황인데, 다만 금융기관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로 한정되고, 일종의 벌칙이자율(“할인율” (discount rate)이라고 불립니다)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타협의 산물로, 의회에서는 첫 번째 미국은행에 20년의 허가증을 발급하는데, 20년 뒤 1811년에 이 은행은 의회로부터 재허가를 받는 데에 실패합니다. 이로써 첫 번째 중앙은행 실험은 끝났습니다. 두 번째 중앙은행 실험은 둘째 미국은행 (“the Second Bank of the U.S.”)이라는 이름으로, 1816년에 20년 허가를 받고 1817년 운영을 시작합니다. 첫 번째 중앙은행 실험에 반대했던 제임스 매디슨이 되려 두 번째 중앙은행 실험을 주도합니다. 그러나 1830년대가 되고 허가갱신이 논의되기 시작하자, 다시금 중앙은행이라는 기관 자체에 반대하는 세력이 힘을 얻습니다. 결국 두 번째 중앙은행도 재허가를 받는 데에 실패합니다.


1770년대 독립전쟁 전까지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로, 농업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1870년대 이후 미국이 2차 산업혁명으로 기술개발을 선도하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농업의존도는 높았습니다. 농장주들은 지역 은행에서 차입하여 농사를 짓는 데에 필요한 투자를 하였습니다. 당시 화폐는 금이나 은 동전이었으므로, 그것들을 단위로 하여 대출계약을 할 것임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때, 금이나 은의 미국 내 유통물량이 줄어들면 상품가격이 상대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일어나고, 농산물을 아무리 팔아도 대출계약 상의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빚을 갚지 못하면 담보로 잡혔던 땅을 넘기게 됩니다. 따라서 농업종사자들은 은행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지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1870년대부터 1890년대 사이에 엄청난 디플레이션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The_Great_Deflation#:~:text=The%20Great%20Deflation%20or%20the,history%20of%20the%20United%20States.)

빌린 돈은 그대로 있는데, 농작물 가격이 하락하면서, 농작물 판매로는 은행 빚을 갚을 충분한 매출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농장주들은 빚을 탕감해 달라, 은행들은 안 된다, 분쟁이 있었습니다. 이후 농장주들은 금융가들을 백안시하게 되고, 은행들의 연합이라고 볼 수도 있는 중앙은행 설립에 대해서도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정서 역시 배경에서 작용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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