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현암사
"예전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리게 하는 거라네. 나는 미래의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거지. 난 지금보다 한층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는 대신에 외로운 지금의 나를 견디고 싶은 거야. 자유와 독립과 자기 자신으로 충만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하는 거겠지." p.50
<마음>은 1914년 4월부터 8월까지 <아사히 신문>에 연재한 소설이다.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선생님과 유서> 3부로 구성되어 있다. 하에 해당하는 <선생님의 유서>가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 연재할 작가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속 스토리를 끌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110회 연재를 끝으로 소제목 3개의 단편이 묶여 나쓰메 소세키를 대표하는 장편소설이 되었다.
몇 년 전에 문예와 문학동네 출판사 책으로 읽어서 이번에는 현암사로 읽었다. 이미 스토리를 알고 있어서 하에 해당하는 <선생님과 유서>를 먼저 읽고 상과 중을 읽었다. 상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칩거하는 선생님에 대한 인물 소개와 그 이유가 띄엄띄엄 소개되는 추리소설의 형식이라면, 중에서는 졸업한 주인공이 고향으로 내려가 병든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내용이다.
하에서는 그동안 미스터리한 선생님의 행보가 유서를 통해 드러난다.
선생님을 가마쿠라 해변에서 만나는 첫 장면에서 동성애 코드가 읽히기도 하는데 지적 수준이 높게 생각되는 사람에게 느끼는 동경과 질투의 감정은 동성간에 더 많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가라는데 나는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표절작가' 프레임을 다름 아닌 박경리 선생님이 씌워놓았기 때문이다. 혹시 여기도 표절? 일본의 문인이나 소설 속 주인공의 자살에 대한 뼈 때리는 선생님의 말씀에 어디 하나 빈틈이 없다. 어쨌든 나쓰메 소세키는 자살하지 않고 병사했으니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일본의 역사는 칼의 역사일 뿐이고
그 본질은 뼛속 깊이 야만입니다.
일본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소중한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문명을 가장한 야만국입니다.
메이지 유신의 제1 목표는 봉건체제 해체 즉 근대화에 있다. 근대 산업국가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 신조는 전체 속에 일부였던 개인을 끄집어냈고 개인의 행복이나 중산층의 삶보다는 개인의 불행을 다룬 소설이 찐 소설로 인정을 받았던 것도 한 특징이라고 하겠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 대표적인데 음울하다 못해 읽는 이를 침잠하게 만드는 소설이 일본에서는 최고의 소설로 뽑힌다. 이런 것들을 깨고 나온 소설이 미즈무라미나에 작가의 <어머니의 유산>이나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등이 해당한다.
그러니 넓은 마음을 가지고 읽어보시기를...
책 표지에 있는 문장이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예전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리게 하는 거라네.
<마음>을 대표하는 한 문장을 꼽으라면 나 또한 이 문장이다. 인간의 이중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 같다. 인간은 결국 자기모순에 빠지는 나약한 존재일 뿐일까?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인물은 도쿄대를 나온 수제지만 인간에 대한 혐오로 은둔형 외톨이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믿고 의지했던 숙부에게 유산을 사기당하기 때문이다. 이 혐오는 숙부 한 사람이 아닌 인간 전체로 확산한다. 때가 묻기 전에 선생은 스스로 모든 인간은 선하다고 믿었다. 이런 유아기적인 사고는 바로 사기를 당하면서 깨지게 되는데 숙부의 입장도 살펴보자.
고등학교 대학교를 반드시 도쿄에서 다니겠다고 선언한 선생의 입장과 큰 형님의 집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숙부의 입장에서 과연 무엇이 최선이었을까? 소설에서도 나와 있듯이 선생의 집은 선생이 물려받고 관리해야 하는 자산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빈 집으로 둘 수 없어서 본인집과 형님집을 오며 가며 살고 있는 숙부의 처지에서 빨리 결혼해서 집을 관리하라는 말이 무엇이 나쁜가? 결혼 상대로 숙부의 딸을 추천해서?
지금 돌이켜보면 오히려 남들이 부러워하는 쪽이었을 거야. 왜냐하면 나는 매달 정해진 송금 외에 책값과 그때그때 필요한 돈을 보내달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충분히 쓸 수 있었기 때문이지. p.155
정말 배신을 당했다면 경제적으로 궁핍해야 하는데 소설을 계속 읽다 보면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먹고사는데 지장도 없었고 평생 일을 안 하고 살 정도이니 정말 사기를 당한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사업에 정치를 하는 숙부였으니 어느 정도 세상 때가 묻어있는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동안 한쪽눈으로 보던 선생의 잘못이지 숙부의 잘못은 아니라고 본다. 어쨌든 유산문제가 터지면서 선생은 드디어 두 눈을 뜰 수 있었다.
결국 자신 소유로 되어 있는 재산을 정리하고 고향을 떠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돈에 부족함이 없던 선생은 당시 하숙을 나와 개인이 운영하는 고등하숙집을 찾게 된다. 군인유가족인 부인과 외동딸, 하녀만 있는 집에 들어간 선생은 가장 좋은 방에서 지내게 된다. 처음에 선생은 하숙집 딸의 꽃꽂이와 거문고 소리에 야박한 평가를 내린다. 아가씨를 정말 사랑해서 결혼한 것인지 K에 대한 질투심과 우월감에 아가씨를 선택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아가씨에 대한 호감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친구 K의 등장으로 아가씨에 대한 감정이 더 폭발한 것이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장난감이 동생이나 친구가 관심을 보이면 갑자기 좋아 보이게 되는 현상처럼 말이다. 그래? 네가 관심을 보일만큼 대단한 여성이란 말이지.
거문고 솜씨가 좋은지 아닌지 알 수 없었어. 하지만 복잡한 가락을 뜯지 않는 걸로 보아 솜씨가 그다지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네. 꽃꽂이 정도의 실력일 거라고 생각했지. 꽃이라면 나도 잘 아는데 아가씨의 솜씨는 결코 뛰어난 것이 아니었거든. p.172
인간에 대한 혐오는 다시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향한다. 혹시 자신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아가씨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병이 든 것이다. 남을 믿지 않는다면서 절대적으로 아가씨를 믿는 자신과 그러면서 자신을 믿고 있는 아주머니를 기이하게 여기는 괴리감의 완충재로 선생은 k를 불러들인다.
k는 진종스님의 차남으로 태어나 의사 집안에 양자로 보내진 인물이다. k를 의사로 만들기 위해 도쿄로 보내 공부를 시킨다. 그러나 K는 의사가 될 마음이 없었고 선생과 같은 과에 입학한다. 3년째 되던 해에 k는 양부보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거짓말을 고백한다. 이 사건으로 양가, 본가 모두에게 손절을 당해 궁핍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
절에서 태어난 K는 늘 정진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그 말에는 금욕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성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도를 위해서는 모든 걸 희생해야 한다는 것인데, 욕망을 떠난 사랑자체도 도에는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동시에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금욕적 이상주의를 붕괴하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K는 그저 학문이 자신의 목적이 아니라고 주장하더군. 의지력을 키워 강한 사람이 될 생각이라는 거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어려운 처지에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지. 보통 사람의 눈에는 꼭 괴짜로 보였을 거야. 게다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그의 의지는 조금도 강해지지 않았네. 오히려 신경쇠약에 걸렸을 정도였지. p.197
여기에서 선생은 K의 고집을 꺾기 위해 무릎을 꿇는다. 시간이 지나서 이 무릎이 머리 위에 올린 발이 되었음을 깨닫는 사건이다. 친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손을 내미는 것은 어쩌면 칭찬받을 일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 자신의 온기로 덮여줄 각오로 데려왔다고 했으니 말이다. 숙부에게 돈으로 배신당한 인류애를 친구에게 베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교의 가르침 속에서 자라 의식주의 사치를 부도덕한 일로 여기는 K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편안한 집에서 의식주가 해결된 K는 하숙집 사람들과 어울리며 점점 쾌활해진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수 있다는 K의 사상을 인간답지 않다고 여긴 선생은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이성과의 자리 즉, 아가씨와의 자리를 마련한다. 어느 순간부터 아가씨는 K에게 더 관심을 갖는 것 같다. 내가 먼저였는데 나만 빼고 둘이 함께 있는 게 눈에 거슬린다.
K가 입에 담은 옛날 사람이란 물론 영웅도 아니고 호걸도 아니네. 영혼을 위해 육체를 혹사하거나 도를 위해 몸을 채찍질했던 이른바 어렵고 고된 수행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지. K는 나에게 자신이 그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모르는 것이 정말 유감스럽다고 분명히 말하더군. p.216
여행을 다녀온 후 k는 아가씨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선생에게 고백하기에 이른다. 사실 다른 건 몰라도 K는 이성에게 관심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하숙집에 데려왔을 수도 있다. 사실 그 자리에서 자신도 아가씨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면 되었을 것을. 끝내 선생은 마음만 졸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선생님과 하숙집 딸 사이에 k가 낀 것인지, 선생님과 K사이에 하숙집 딸이 낀 것인지, 아가씨의 양다리였는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나는 먼저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자는 바보라네"라고 말했네. 이는 둘이서 보슈를 여행할 때 K가 나에게 한 말이야. 나는 그가 쓴 대로, 그와 똑같은 어조로 다시 그에게 돌려주었지. 하지만 결코 복수가 아니었어. 복수 이상의 잔혹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네. 나는 그 한마디로 K앞에 놓인 사랑의 앞길을 막으려고 한 거였다네. p.239
마음이 급해진 선생은 아주머니에게 따님과 결혼승낙을 받아내고 이 소식을 들은 K는 결국 자살한다.
선생님이 유서를 대하는 태도에서 다시 한번 인간에 대한 모순과 환멸을 느끼게 된다. 친구의 죽음보다 친구가 남긴 유서내용을 우선시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던 이유도 아마 타인의 시선을 우선시하는 개인의 밑바닥을 콕 집은 장면이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여자인 아가씨는 사려 깊은 편이었지만 그런 젊은 여자에게 공통적인, 내가 싫어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히지 못할 것도 없었지. 그리고 그렇게 싫어하는 점은 K가 이 집으로 오고 나서 비로소 내 눈에 띄기 시작했네. 나는 그것을 K에 대한 나의 질투로 돌려도 좋은 건지, 아니면 나에 대한 아가씨의 기교라고 간주해야 하는 건지 좀 망설여졌지. p.223
k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이 가장 혐오했던 인간의 이기심이 자신에게도 있다고 자각한 선생님은 아가씨와 결혼 후 경제적인 활동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시대의 낙오자로 살고 있다.
선생님은 자신을 따르는 청년 '나'에게 자신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글로 남긴다. 자신의 호기심 때문에 선생님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지 않을까?
숙부에게 속았던 당시의 나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뼈저리게 느꼈지만,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했을 뿐이지 그래도 자신은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네. 세상 사람들이 어떻든 나만은 훌륭한 인간이라는 신념이 어딘가 있었던 것이지. 그런데 k 때문에 그 신념이 보기 좋게 무너지고 나도 숙부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자각을 하자 갑자기 아찔한 느낌이 들더군. 사람들에게 질린 나는 자신에게도 질려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네. p.264
한 인간의 뼈아픈 참회의 묵시록을 나는 감당할 수 있는가? 인간의 죽음만이 속죄로 마땅한가?
선생의 자살은 천황의 장례식날 순사한 노기대장의 이야기가 발단이었다고 한다. 1877년 메이지 정부에 대한 반란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때 반란군에 군기를 빼앗기고 만다. 이를 사죄하기 위해 35년 만에 부인과 함께 죽은 것이다. 왜 선생은 친구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살을 결심했다고 하면 될 것을 메이지 유신의 정신에 순사하는 것이라며 개인의 죽음을 공적인 죽음에 덧대려는 것일까?
메이지 정신과 유배되는 가장 전근대적인 방법으로 죽음으로써 낡은 유물같은 자신의 삶을 끝내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는 신문에서 노기 대장이 죽기 전에 써서 남긴 글을 읽었네. 세이난 전쟁 때 적에게 깃발을 빼앗긴 이래 사죄하기 위해 죽자, 죽자, 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의미의 구절을 보았을 때 나는 무심코 손가락을 꼽아 노기 씨가 죽을 각오로 살아온 세월을 헤아려 보았지. 세이난 전쟁은 1877년에 일어났으니 1912년까지 35년의 거리가 있네. 노기 씨는 그 35년간 죽자, 죽자, 하면서 죽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야. 나는 그런 사람에게 그때까지 살아온 35년이 고통스러울지, 아니면 배를 찌른 한순간이 더 고통스러울지를 생각했네. p.273
논제 중 하나가 이 책을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은가?였는데 한결같이 구체적인 대상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작품인데도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독서토론을 위한 책으로 남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나의 대답은 결국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비밀을 가진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 글을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추천할만 하지 않을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건 알려고 하지 말자, 모두 각자의 마음일 뿐이니.
결국 마음은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것. 그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기르자. 혐오스러운 자신의 모습이 괴롭다면 여전히 양심은 살아있는 것이니 다음번에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자신과 타인에게 진실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그것이 때때로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소설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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