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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 Jan 31. 2024

2023년 초여름, 대전


생일을 맞아 도시 밤 산책을 계획했다.

가족 모두 다리가 연결되기 전의 섬에 오래 살았던 터라 도시 밤 산책이라는 자체를 함께하는 일이 어려웠었다. 막배 시간이 저녁이면 끝이 났고, 또 몇 년에 한 번씩 가는 장기 여행 역시 관광의 목적으로 다니기 때문에 여유로운 도시 밤 산책이라는 건 기억에 정말 없었다. 


하지만 산골마을에 이사 온 만큼 드디어 가족 모두 주변 도시 밤 산책이 가능해졌다.

그저 밤에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색다르고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바뀐 한밭수목원 동원을 보고 정말 좋았기 때문에 산책 장소는 한밭수목원 서원과 한빛탑으로 정했다.



차를 열심히 타고 내려걸으려는데 먹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역시나 조금 광장을 걷는데 번개가 쳤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천둥소리와 번개의 번쩍임 때문에 이거 계속 걸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힘들게 차를 타고 왔고 기다려온 날이라 가족 모두 우산을 꼭 쥐고 천천히 걸었다.



안타깝게도 서원은 닫혀있었다.

새롭게 바뀌었을 거라 예상했던 서원이 닫혀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잔잔한 밤 산책이 목표였기 때문에 다시 한빛탑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노을이 거의 진 하늘을 배경으로 비교적 새로운 건물들과 노란 꽃이 가득한 공원의 사람들. 날이 흐리기 때문에 불어오는 선선한 여름 바람이 정말 좋았다.

엑스포다리를 천천히 걸었다. 양쪽으로 보이는 풍경을 하나하나 집중해 가며 보았다. 건너편에 보이는 둔산대교 역시 예뻤다. 



음악 분수가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기쁘게도 엑스포다리를 거의 건너 한빛광장에 들어설 때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음악 분수와 광장은 처음이었다.

한빛탑을 끝으로 광장 넓게 발목까지 적실 수 있는 얕은 물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우비를 입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연인들이 천천히 물을 밟으며 거니는데 먹구름이 들어오는 하늘이지만 그래도 그 차분하면서 빛나는 물결과 조명들이 아름다웠다.



축제를 진행하고 있는지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푸드트럭들이 있고, 음악 분수 주변으로 사람들이 편하게 앉아 간단한 음식들을 먹으며 쉬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식사를 일찍 끝내고 소화시킬 겸 산책을 하려고 했던 차라 먹지는 않았다.

한빛탑 입구에도 꿈돌이와 꿈순이 조형물이 크게 있어 사진을 찍었다.

예전부터 꿈돌이 캐릭터가 귀엽다고는 생각했지만 요즘은 더 대중화되어 여러 굿즈로도 볼 수 있어 기쁘다.

조만간 매장에 가서 구매할 생각이다. 


한빛탑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니 조명에도 꿈돌이와 꿈순이가 있었다.

위에 거울이 있어 사진을 함께 찍을 수 있는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1층과 2층으로 되어있고, 2층이 바로 전망대인 구조였다. 


전체적으로 우주과학관을 보는 느낌의 디자인이었고, 도넛 모양으로 쭉 창문과 의자, 소파가 있어 편히 쉬며 밖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가운데는 화장실과 카페가 있었다.

카페에서 밀크셰이크와 망고요구르트셰이크를 시켜 쉬며 먹었다.



화장실이 좀 특이했다. 문을 여니 바로 화장실이 나오지 않고 탑 모양을 따라 둥근 계단을 좀 내려가야 화장실이 보였다. 독특한 구조라 인상은 깊었지만, 계단이 불편한 분들이 이용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화장실이라 조금 걱정은 됐다. 


좀 여유를 부리며 쉬고 있다 보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생일 케이크를 아직 사지 못했기 때문에 비까지 내리면 차를 타고 빵집을 찾는 것 역시 복잡할 것 같아 혹시 몰라 한빛탑 주변 지도를 찾아보니 근처에 성심당 분점이 있었다.



그래서 가족 모두 우산을 쓰고 분점을 향해 갔다.

그런데 빗줄기가 점점 거세져 우산을 쓰고 있어도 얼굴을 제외하곤 다 젖고 말았다.

좀 어이가 없기도 해서 웃음이 났다. 비가 거세니 앓는 소리를 하다가 그리고 또 웃다가 겨우겨우 분점까지 갔는데 케이크가 없었다. 빵이 거의 없이 다 팔려 빈손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조금은 잔잔해진 빗속에서 다시 엑스포다리를 걷는데 가족 모두 감탄했다. 도시 밤 산책이 이런 거였지! 하고. 어두운 도시에 빛으로 가득한 다리와 건물들이 예뻤다.

섬과 산에서 살아 맑은 밤하늘의 별과 달이 오히려 익숙한 우리 가족에게

색다른 아름다움이 가득한 풍경이라 가족 모두 천천히 감상하며 걸었다. 


주차장에 거의 왔을 때쯤엔 비가 그쳤다.

정원과 가로수 나무가 있어 광장을 걷는 길에도 비에 젖은 풀냄새가 진했고,

사람 한 명 없이 네 명의 발걸음 소리만 들리는 넓은 공간의 잔잔함이 좋았다. 


오히려 비가 내려 사람들이 많이 없어 조용히 도시의 밤 산책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오로지 밤 산책만을 위해 모두가 잠들 그 시간에 차를 타고 오겠지! 




대전엑스포시민광장, 엑스포 과학공원 한빛탑, 한빛스퀘어 카페비노 

noki.and.no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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