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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 Feb 13. 2024

2023년 초여름, 공주


엄마가 꽃에 빠지셨다.



외할머니께서는 이사를 종종 하셨기 때문에 집은 자주 변했지만 언제나 꽃과 식물은 많이 있었다. 

집 밖과 안에 여러 식물과 꽃이 있는 것 자체로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갈 때마다 달라지는 꽃들에 이번에는 무슨 화분이 생겼을까? 혹은 거대한 선인장이 또 얼마큼 더 자랐을까? 했던 어릴 때의 기억이 있다. 


반면에 외할머니와 달리 어쩌다 화분이 생기면 잘 키울 자신이 없다 하시면서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던 엄마가 어느 순간부터 차를 탈 때 내 눈에 잘 안 보이던 멀리 있는 꽃까지 눈에 들어오시더니 얼마 전 드디어 꽃을 키우기 시작하셨다.



큼직하고 화려한 꽃을 좋아하는 내 취향과 달리 엄마는 초록빛 가득한 도화지에 형형색색의 물감을 점찍어 놓은 듯한 꽃을 좋아하신다. 자연에 전혀 거슬리지 않게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도 가까이 다가가 보면 개성이 뚜렷해지는 그런 꽃을 말이다. 


공주시 미르섬에 그런 꽃밭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꽃이 다 지기 전 눈에 담기 위해 출발했다.



점심은 충청남도 추부면에 있는 깔끔하고 담백한 느낌의 돈가스집에서 먹었다.

일본식 돈가스로 종종 가는 집인데 매번 저녁에 가다가 처음으로 점심에 갔더니 사람이 너무 많았다.

대학로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자리가 있어 맛있게 먹는데 아침밥과 텀이 길지 않아 너무 배불렀다.



약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달린 후 도착한 곳은 ‘유구색동수국정원’이다.

작년에 이어 이번에 두 번째 수국꽃 축제를 하는데 축제일보다 10일 정도 이른 날에 정원을 보게 되었다.

날이 맑아 구름이 크고 아름다웠지만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열기에 6월이 아닌 8월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습도가 높지 않아 다행이었다.



주차를 하고 정원으로 갈 때 유구교로 건너도 됐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징검다리로 건너고 있었다.

우리 가족 역시 징검다리로 건너기 위해 내려왔는데 문제는 내가 계단을 무서워하는 정도로 징검다리도 무서워한다는 점이었다. 분명 넓고 안전할 텐데 꼭 물에 빠질 것 같다는 긴장감이 큰 편이라 한 발 한 발 겨우겨우 앓는 소리를 내며 건넜다.



수국 정원은 굉장히 길게 있었는데 아쉽게도 수국이 많이 피지 않았다.

축제보다 10일 정도 앞서도 꽤 많이 폈을 줄 알았는데 연두색과 붉은색 수국 일부만 펴있고 대부분은 없었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식사 후 길게 늘어진 정원을 걸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정원 입구 부근에 운동기구들이 몇 있었는데 동생이 갑자기 운동을 해서 좀 웃겼다.

다들 사진 찍고 산책하는데 열정적으로 운동하는 모습이 웃겨 영상도 여럿 찍었다.



이어서 이 여행의 본 목적인 미르섬에 도착했다.

주차는 금강신관공원에 주차장이 넓게 있어 편하게 할 수 있었다.

평소 조깅하는 분들이 많이 오는 곳인지 미르섬까지 걸어가는 길에 더운 날씨인데도 운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작은 다리를 건너 미르섬에 도착했다.

입구에 귀여운 공주시 마스코트 조형물이 있었다.

백제의 문화유적이 많아 공주시 이름과 합쳐져 나온 공주 캐릭터와 공주 옆에 든든하고 귀여운 고마곰이 정말 귀여웠다.



꽃이 엄청 가득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많았다. 다 시들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날이 너무 더워 양산을 쓰고 다녔는데 엄마가 정말 행복해 보여서 좋았다.

코스모스의 분홍 계열과 양귀비의 선명한 선홍색, 그리고 완전히 대비되는 색감의 푸른빛 수레국화가 함께 있어 평소에 보지 못한 조화라 더 아름답게 보였다.



한참을 감상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자주 간다는 메타세쿼이아 길을 갔다.

정안천생태공원과 함께 있는 길인데, 공원이 예뻤지만 날이 너무 더워 이미 몸이 지친 상태라 아쉽게도 풍경은 눈에만 담고, 사진으로만 담았다.

그늘 아래만 있어도 바람과 함께 꽤 시원해서 공원을 바라보며 한참 앉아 쉬었다. 



저녁은 종종 찾아가는 보은읍 능이손칼국수로 정했다.

가끔 갈 때마다 식사하는 공간이 점점 쾌적해지더니 이번에 갔을 땐 좌식에서 테이블식으로 전부 바뀌었다.

더운 날씨였지만 밤에는 일교차로 좀 선선했는데 식사하니 속까지 따뜻해졌다. 


날이 참 더워 땀을 빼며 다닌 여행이라 산책만으로도 좀 힘들었지만 엄마가 행복해 보여서 좋았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꽃 여행을 앞으로 좀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꽃을 많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니! 나는 찬성이다.




추부면 메차쿠차, 유구색동수국정원, 미르섬, 공주 메타세쿼이아길(정안천생태공원), 보은군 보은읍 능이손칼국수

noki.and.no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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