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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상상 Aug 14. 2024

순천만 생태체험선을 타다

드넓은 갯벌과 갈대군락, 철새를 만나는 시간

"완전 럭키비키잖!"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걸그룹 IVE 멤버 장원영의 밈으로 안 좋은 상황도 더 좋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낙관적 사고방식이 담긴 신조어다. 비슷한 말로 '원영적 사고' 혹은 "오히려 좋아."가 있다. 남북이 서로 대치하고, 좌우로는 정치다툼을 벌이고, 각 세대를 비하하는 비속어를 만들어 나이대별로 싸우고, 남녀의 갈라치기를 조장하는 세태 속에서 간만에 긍정적인 유행어가 들려 반갑다.


여기에서 한 발 나아가 운이란 주어진 상황을 마냥 낙관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들과 여행하며 배우게 됐다. 순천만에서 겪은 두 가지 에피소드 덕분이다.


첫번째는 순천만 일일 체험프로그램을 예약할 때의 일이다. 3일 전에 예약해야 체험이 가능한데, 휴가 일정이 빠듯해 당장 2일 뒤에 체험을 못하면 그냥 돌아가야 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2일 후 일정은 이미 막혀있는 상황이었다. 돌아서기는 아쉬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드려봤다. 처음에는 안된다고 해서 포기할까 했는데 잠시 뒤 다시 연락을 주셨다. 담당자가 출장중이 로 연락해보라고 한다. 바로 전화드려보니 염려와는 달리 흔쾌히 체험을 수락하셨다. 아이들과 함께 한 여행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일이다. 안 될 듯한 상황에서도 계속 두드려본 덕분에 갈대밭을 헤치고 말뚝망둥어, 붉은발 말뚝게, 대추귀고둥과 노니며 뜨겁게 갯벌을 느낄 수 있었다.

두번째 이야기, 아이들에게 여행하면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을 물어보니 배를 타보고 싶다고 한다. 검색하다 순천만 생태체험선을 찾아냈는데 문제는 날씨와 조수간만에 따른 수위 등, 승선이 가능한 조건들이 까다롭다는 것. 전 날 확인해보니 마지막 배인 1시 40분 배를 탈 수는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승선이 가능한지 매표소 앞에서 한 번 더 확인 전화를 걸어보니 최소 인원인 성인 6명이 모집되지 않으면 배가 못 뜰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폭염 때문인지 하필 순천만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조바심이 났다. 마침 아이가 아빠와 화장실에 간 사이 주차장에서 어르신들 네 분이 화장실쪽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흥겨운 분위기였다. 그분들은 멀뚱히 서있는 내게 매표소 위치를 물어보셨다.

 "매표소와 입구는 저 쪽인 것 같아요. 그런데 혹시 괜찮으시면 함께 배 타러 안가실래요? 최소 인원이 6명 필요하다고 해서요."

평소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거는걸 꺼려했었는데, 그 날은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제안을 건넸다. 여기까지 왔는데 아이들을 실망시킬 순 없지, 그래서 아줌마는 용감한가보다. 그분들은 흔쾌히 제안에 수락하고는 이따 탑승장에서 만나자며 유유히 습지 탐방을 떠나셨다. 더운 날씨였지만 푸른 갈대 군락을 보니 가슴이 탁 트였다. 맨발로 땅밟기를 할 수 있는 어싱존과 원두막, 무료로 빌려주는 양산은 덤이다.


탑승장에서 어르신 일행을 만났다! 겨우 최소 인원을 채워 배를 탈 수 있었다. 아이들이 실망할까봐 못 탈 수도 있다고 미리 말을 해두어서 기쁨은 더 컸다. 처음 배를 타보는 아이들은 조금 무서워하면서도 신기해했다. 생태 해설사님은 눈 앞에 펼쳐지는 풍광을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셨다. 키를 잡은 선장님이 배의 방향을 바꿀 때마다 물살의 흐름과 모터 움직임이 느껴졌다. 우리는 해설사님께 질문을 하기도, 독특하게 생긴 새들을 눈에 담기도 하며 생태체험을 즐겼다. 습지에는 땅 밑에 사는 게, 망둥어, 조개같은 저서생물들과 소금기가 있는 땅에서 다양한 생존 전략을 구사하는 염생 식물들이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의 전 세계 1/3가량이 이 곳에 서식한다고 한다. 인근 농경지 내 전봇대 282개와 비닐하우스를 제거하고 농약을 일절 사용하지 않으며, 논에서 재배한 벼 낟알을 일주일에 8톤씩 흑두루미 먹이로 제공하는 순천시의 노력이 놀랍다.

유유히 헤엄쳐가는 오리와 높은 바위 끝에 서서 몸을 말리고 있는 왜가리가 반갑다. 갑판 위에 서서 배 뒤로 거칠게 일렁이는 물보라를 보며 잠시 멍하니 쉴 수 있는 시간도 주어졌다. 바쁜 일상을 벗어나 휴가를 온 보람이 있다. S자 모양으로 굽이치는 습지의 곡선이 여름 하늘에 뜬 뭉게구름과 어우러져 너무 아름다웠다. 이 장관 속에 살아 숨쉬는 다양한 생태종들을 잠시라도 만나고 갈 수 있어 보람을 느꼈다.

생태체험선 탑승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최소 탑승인원을 채워주신 어르신 일행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좋은 제안을 해줘서 고맙다며 오히려 감사 인사를 받았다. 여행을 통해, 평소 안 해본 것들에 한 발만 더 개척정신을 가지고 도전해본다면 이룰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더 많았을 것인가 생각해본다.

Destiny is not a matter of chance; it is a matter of choice. It is not a thing to be waited for, it is a thing to be achieved.   
                         - William Jennings Bryan

운명은 우연이 아닌 선택이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는것이다.
                        -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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