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체대에 입학을 위하여 체대 입시를 같이 준비하던 친구가 있었다. 야자가 끝나면 야간에 실기를 연습하고 또 도서관을 가서 공부를 하고 수능시험 준비와 실기 준비를 병행할 때 가장 가까이 지냈던 친구다.
서로 다른 대학교에 가게 돼서 연락을 하면서 지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고 호주로 갔다는 소식만 들었었다.
친구는 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가 엄했고 엄마를 불쌍하게 느낀다고 종종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성실한 친구였다. 갑자기 연락을 끊고 해외로 갔다고 하니 다들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군대를 서로서로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추억이 되어 잊고 지내고 있었다.
얼마 전에 전화가 왔다.
호주에서 지내던 친구가 병원진료를 받고자 10여 년 만에 한국에 들어왔다는 친구의 전화였다. 연락처가 없었는지 페이스북으로 연락이 와서 연락처를 물어봤다고 하는데 혹시 피싱이 아닌지 의심부터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종종 연락처를 묻고 찾아봤던 친구이기에 연락처를 알려주라고 했고 그렇게 대학교 이후 20년이 흐른 뒤에 나 친구를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대학을 다니던 2003년도에 워킹홀리데이가 유행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로 가게 되었고 청소, 빨래, 공사장 일 등 흔히 힘든 일이란 힘든 일은 다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호주에 시골마을에서 영어도 잘 못한 채로 일을 하는데 그래도 일당이 우리나라에서보다 좀 높다 보니 자연스럽게 참아내면서 일을 했다고 한다.
우리 고향인 대전에서 친구를 만나다가 영상통화로 나는 친구를 보게 되었다. 안부 인사를 묻곤 울먹이는 친구한테서 말없이 몇 십 초간을 얼굴만 봤다.
속상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다쳐서 한국에 온 친구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리고 내가 있는 수원으로 금방 달려와 저녁 식사를 했다. 폭설이 내렸던 지난주에 일이다. 하필이면 폭설이 내려 불편한 날에 우리 집을 오게 되었는데 이십 년 만에 봤지만 고등학교 시절을 같이 보냈던 시간처럼 어색함 없이 부둥켜안고 안부를 다시 확인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간의 고생이 보이는 듯했다. 우리 집에서 내가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고 아이들을 보고 아내와 인사를 했다. 소주를 한 잔씩 기울이다 보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그리고 호주에 있는 친구의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친구의 재수 씨는 한국말을 쓰는 한국사람이었는데 딸들은 영어를 썼다.
한국이 그리웠다며, 연락을 하지 않고 갑자기 호주로 가게 돼서 미안했다며 그동안 지냈던 일들을 이야기해 줬다. 고생을 참 많이 했는데 그렇게 원망하던 아버지가 암 투병 중이셔서 많이 안타깝다고 했다.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서 지내보려고 고민도 해봤는데 한국에서 일을 하는 게 두렵다고 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와야 되다 보니 우리 나이에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았다.
갑자기 오게 되어 미안하다며 호주에서 먹는 꿀과 간식거리를 선물로 줬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아들 방을 내어주며 자고 가라고 했다.
친구에 손에는 A4 용지로 된 기차표가 있었다. 한국에서 기차를 타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내가 해외여행 갈 때 차표를 예매하듯 기차표를 예매해서 왔는데 그냥 신기했다.
20년 전에 말없이 도망치듯 호주로 가게 돼서 어느덧 중년이 되어가는 나이에 몸을 다치고 아버지가 아파서 잠깐 한국으로 돌아온 친구랑 저녁식사를 하는 게 참 신기했다.
각자의 인생에서 치열하게 살며 아이들을 낳고 아빠가 되고, 일을 쉬면 가족들이 살아가는 게 힘든 걸 알기에 지금 하는 일을 내려놓지 못하고 서로 바쁘게 살아온 날들을 추억하다 보니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진짜 짧은데 다시 호주로 돌아가면 또 언제 오게 될지 모른다며 안타까워하는 친구를 다시 보내는 게 너무 아쉬웠다.
누구나 한 번 주어진 삶을 산다. 이것저것 인연을 맺고, 좋은 일과 슬픈 일을 겪고 가장 보통의 하루를 보내는 게 소소한 행복임을 알고 시간을 보낸다. 시간이 참 짧아서 소중한데, 몸이 아파져서 잠시 돌아온 친구를 보며 여러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각자의 길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주어진 시간을 감사히 여기며 열심히 살아온 시간을 공유한 짧은 저녁식사 시간이, 그간에 열심히 잘 살아온 시간에 대해 인정받는 시간인 것 같아 많이 행복했다.
친구 놈이 꾸린 가정과 그의 가족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호주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떨까.
친구 녀석을 또 몇 년의 시간이 지나야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때는 더 나이가 들고 늙어져 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