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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2027.

by 써니소리

2017년 흉선암 수술을 하고 2년 뒤면 완치여부를 판정한다고 했다. 병원에 갔을 때는 특별한 사항은 없다고 했다.


주위에 암으로 투병하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같이 일하던 선배가 흉선암 4기로 진단받아 폐를 절제하고 개복을 통해 수술을 하다 보니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보고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일을 하라고 한다.

좋은 거 많이 먹고 좋은 시간을 최대한 보내고 욕심부리지 말고 스스로를 위해서 살라고 말이다.


그 선배님은 딸이 2명 있는데 같은 곳을 여행 가더라고 각각 한번씩 두 번을 간다고 한다. 각자 딸들에게 아빠와의 추억을 같이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미리미리 스스로 이별을 준비한다고 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가끔 안부를 묻는 전화를 먼저 드리곤 했는데 지난번에는 중환자실로 옮기게 되어 전화를 가족들이 대신 받았었다.

같은 수술을 했지만 나는 3기였고 수술이 잘돼서 아직까지는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다.


암수술을 하고 시간을 보내는 환우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까. 하루하루가 소중하지만 때론 불안하고 두렵고 많은 감정이 있을 텐데.


내가 흉선암이라는 소식을 듣고 네이버 흉선암 카페에는 2000명 정도 회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1만 명이 넘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흉선암은 연구가 덜 되고 희귀 암으로 사람들이 잘 모르던 시기였다.


많은 환자 가족들이 고민을 털어놓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내가 수술을 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신혼부부가 먼저 입원을 했었고 아내가 아이를 임신하고 초음파로 아이를 확인하다가 암을 확인했다고 했다.

약 28cm까지 자라는 동안 알지 못했고 첫 아이를 초음파로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수술을 하면 아이가 위험하고 수술을 하지 않으면 엄마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나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남편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당연히 그때는 엄마를 살리자고 했을 건데 의사분이 말씀하시길 지금 수술을 하면 아이를 다시 가질 수 없을 확률이 높다고 했었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자신보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는 아이걱정에 수술을 미루고 싶어 했다. 아빠의 입장에서는 엄마가 우선이었으나 아이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을 때 많이 복잡했을 것이다.


그렇게 고민하는 부부를 두고 나는 수술을 받았기에 결과를 알 수가 없었다.


참 슬픈 일이다. 암으로 사람이 죽는다는 건

간호를 하는 가족들도. 그리고 자신도.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암을 극복하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응원했었는데

글을 쓰시며 잘 극복해 나가시던 작가님도 하늘에 소중한 별이 되었다.

슬프고 무섭고 힘들 수 있지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오늘도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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