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기전공을 했었기에 연기를 배울 때도, 아역 아이들을 잠깐 가르칠 때도 사람 관찰을 유심히 했었고 아이들의 경우엔 감정까지도 알려주며 대사를 외우게 해야 했기에 대사에 나오는 인물이 어떤 기분일지 파악해야 해서 관찰력, 공감능력, 감정등이 풍부한 사람이다.
한 사람을 오래 만나본 적 없는 나는 이 사람과의 길고 긴 연애가 신기하기만 했고 본성 파악은 조금 오래 걸렸으나 뭔가 모르게 바뀐 행동들이나 외모, 그리고 거짓말하고 있는 거 하나만은 정확하게 캐치했었다.
거짓말 하나만 걸렸어도 이 사람은 걸렀어야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 자신을 원망한다.
그냥 아빠가 돌아가셔서 장녀의 역할을 해야 했기도 했지만, 그 당시 그 사람과 헤어지기 싫어 내 꿈을 포기하고 함께 부산으로 따라갔던 그날이 마음 한 구석에서 계속 후회된다고 말하고 있다.
ep 16. 그 남자의 답변서
소장을 보내고도 한참을 기다려도 답변서가 오지 않았다.
이래서 이혼소송은 오래 가는 거라고 하나보다.
그렇게 기다리다 지칠 때쯤 우리 측 변호사에게서 답변서 메일이 왔고 나는 그걸 읽어보았다.
웃음이 나왔다.
위자료를 깎아야 한다, 양육비 100만 원은 너무 많으니 50만 원으로 깎아야 한다.
위자료야 뭐 깎는 걸 주장할 순 있어도 양육비를 깎아야 한다라고 하며 반을 깎아버리는 저 인간은 정말.. 육아에 비용이 어느 정도 들어가는지 감히 예상도 못하나 보다.
가장이기 때문에, 가장이라서 경제 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아내는 남들과 비교하기 일쑤였다.
답변서를 읽는 내내 고구마를 먹은 거 같은 느낌이었다. 나도 임신 중기까지 일을 했었고 본인도 경제활동을 했지만 돈이 안 벌릴 때 나의 퇴직금과 실업급여로 본인 일터에 내기도 하고 생활비도 충당하였는데 온전히 본인만 힘들었다는 식의 답변서.
경제 활동을 혼자 하게 되었을 땐 그에 맞게 술도 줄이고 씀씀이도 줄여야 하는데 그는 그렇지 못했었다.
항상 나가서 술을 마셔야 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뭔가 사는 걸로 풀어야 했다. 카드값이 많이 나왔을 때는 내역을 보여달라고 하니 내역을 보여주지 않은 적도 있었다. 자기 스스로 술과 다른 것들에 돈을 썼음을 인정하는 꼴.. 그런 식으로 생활을 하니 당연히 혼자 경제활동을 하면서 힘들 수밖에..
그리고는 아내와 아이에게 다정다감한 아빠였다고 적힌 내용을 보는데 화가 치밀었다.
초반엔 물론 아이에게 잘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피곤하고 스트레스받을 때 아이가 울거나 하면 큰소리를 쳤고 화를 냈다. 본인이 더 아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아빠들은 아이가 울면 뭐 때문에 그러나 먼저 살피고 달래기 일쑤인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돌아오는 말은 “비교하지 마라 난 처음 키워보니 모르지”라는 말뿐.
그는 이런 걸 비교해서 기분이 나빴던 것. 그리고 남들도 다 처음 키우는데 본인만 처음 키우는 줄 아나보다.
다정다감한 사람이 바람은 왜 피우며 아이를 보러는
왜 안오며 11월부터 지금껏 조금의 생활비도 안 주면서 아이는 아픈덴 없냐 잠은 잘 자냐 잘 먹냐 이런 거 하나 물어보지도 않는데 저 ‘다정다감’이란 말은 모순에 불과했다.
게다가 증거 하나 없던 답변서.
다 읽고 나서 나는 또 한 번 다짐해 본다.
답변서의 내용은 모두 사실과 다르다는 걸 입증할 증거들은 아직 나에게 많고 추가로 제출할 증거들도 있으니 철저히 하나하나 다 준비해서 반박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