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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프란츠 Sep 09. 2024

마네키네코

동네 골목들은 담쟁이덩굴처럼 북악산과 인왕산을 말없이 오르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가보지 못한 골목들이 덩굴손에 푸르게 가려져 숨바꼭질을 한다. 나는 술래가 되어 숨은 골목들을 찾아다닌다. 구불구불한 골목길 끝에서 어떤 풍경을 마주치게 될지 고대하는 순례자 같다.


산책을 할 땐 욕심과 의지를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어떠한 애씀도 필요하진 않다.


산책을 하는 동안 내 마음속 고요함이 흔들리지 게 한다. 사방의 정막에도 가슴이 동요되지 않, 싸늘한 아침 공기를 내 안으로 끌어들이고, 눅눅한 기운을 밖으로 뱉어낸다. 심장박동 소리에 맞춰 발을 내딛다 보면 내 몸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잊혔던 일상에서의 설렘이 뭉글뭉글 솟아난다.


산책은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아야 한다. 걸음발이 지나치게 느리면 지루해질 수 있고 너무 빠르면 성가실 수도 있다.


제도 처음은 느릿하고 한가로운 산책길이었다. 그러다 아침 식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밥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기껏 휴식을 위 나온 산책이었나 발걸음이 빨라지자 든 시선 땅바닥에 처박혔다. 산책이 일상의 도보로 바뀌는 순간였다. 발걸음을 다그치자 다리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간 고요함 흩어지고 긴장이 돌면서 설렘은 시들어버렸다.


눈대중으로 지름길이라 어림짐작했는데  낯선 골목길이었다. 비교적 낮은 고갯길여서 오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고개를 넘어설 때쯤 다섯 마리의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아침 햇살을 끼며 느긋 산책 중이었다. 떼 지어 산책하는 고양이는  생뚱맞았다. 그들도 내가 흥미로웠는지 모든 눈들이 나를 향했고, 갑작스러운 인기척에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아무것도 개의치 않겠다는 듯 꼬리를 길게 하늘로 늘어뜨려 흔들었다. 흔들는 꼬리에서 보드라운 바람이 일랑였다. 두 마리는 몸을 숨길지 말지를 살짝 고민하는 듯 길을 벗어나 비껴갔지만 숨은 것은 아니었다. 한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바닥에 철퍼덕 배를 대고 널브러졌다. 그리고는 날 기다렸다는 듯 야옹거렸다. 다른 녀석들은 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지 의뭉스러운 표정였다.


나는 그런 고양이들을 앞장 세워 조금 더 걸었다. 그리곤 이내 진입이 곤란한 막다른 골목인 걸 알게 되었다. 길 없음이란 표지도 없는 걸 보면 사람의 왕래가 뜸한 곳였다. 발걸음을 멈추어 돌렸다. 아쉬움 같은 여백의 감정이 슬며시 올랐다.


하지만 나와 달리 고양이들은 막힌 골목라도 상관없어 보였다. 담이나 대문 같은 장애물 다소 성가신 과속 방지턱에 불과다. 자신들의 영역에선 막다른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굳이 막힌 걸 뚫으려 애쓰지 않아도 될 것처럼 자유로웠다.


헤르만 헤세는 <밤의 사색>에서 휴식조차 조바심 내며 바쁘게 즐기고 있는 인간은 가능한 많은 것을, 더 많은 쾌락을 얻었지만 삶의 기쁨은 오히려 줄었다고 말했다. 헤세는 그가 사랑했던 고양이들을 통해 조금은 덜 조급하게, 천천히 지친 몸을 추스르는 것이야 말로 삶의 작은 기쁨이란 걸 깨닫지 않았을까.


고양이들의 산책은 게으르고 느릿했다. 무엇이 쫓아오던지 상관이 없다. 그래서 도도하고 오만해 보였다. 인간 두려워하지 않았고 인간에게 애절하지도 않은 그들은, 인간과 독립된 삶을 살면서도 때론 인간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노란 고양이, 초록 고양이, 빨간 고양이, 갈색 고양이 등 다양한 색깔의 것들이 존재했다. 복을 부르는 고양이 '마네키네코'처럼 그들은 어떤 형태의 복이라도 인간에게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습지만 그런 고양이들이 내게 그르렁 기분 좋은 소리를 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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